[김병기 ‘필향만리’] 禮 與其奢也 寧儉(예 여기사야 영검)

2023. 7. 1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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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임방(林放)이라는 사람이 예(禮)의 근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질문이 참 크군요!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합니다(禮 與其奢也 寧儉)”라고 답했다. 예의 본질은 화려한 수식이 아니라, 검소하더라도 내적 가치를 실행하는 데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호화분묘를 찾는 성묫길에 다투는 형제도 많고, 진수성찬으로 차린 제사상 머리에서 고성이 오가는 자매도 허다하다.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 후 몇 개월 만에 이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호사스런 식당에서 회동한 후에 서로 다툼으로써 모임이 깨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다 형식만 사치스럽게 갖추었을 뿐, 예의 근본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與:더불어 여, 奢:사치 사, 寧:차라리 녕, 儉:검 소할 검. 예는 사치스럽기보다 검소해야 한다. 30x74㎝

예의 근본, 즉 내적 가치는 진심이다. 진심이 결여된 예는 무의미하다. 검소를 핑계로 진심을 담지 않은 소홀한 예도 문제지만, 예를 구실삼아 사치스런 형식에만 치중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부모님을 ‘최고 시설’의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것을 예를 다한 효행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부모님으로부터 손도 마음도 떼지 않는 진심이 예의 본질이다. 온기 없는 화려한 형식의 ‘행사’를 과시하며, 사진발 잘 받는 웃음의 포즈를 취하기보다 가난하지만 맞잡은 손과 토닥이는 등을 타고 뜨거운 온기가 흐르도록 하는 게 진정한 예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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