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과 중추국가의 책임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폴란드를 찾았던 윤 대통령이 소수의 참모만 대동하고 수도 키이우를 찾았다. 전쟁 지역인 만큼 안전을 위해 이날 방문은 전용기가 아닌 열차를 이용했고, 극비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키이우 인근의 부차시 학살 현장과 민간인 주거 지역에 미사일 공격이 집중된 이르핀시를 돌아보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양 정상은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안보협력과 인도·재정 및 재건 지원을 포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함께 추진키로 했다. 한국이 1억5000만 달러(약 1910억원)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최대한 신속히 실행하고, 세계은행과 협력해 재정 지원을 하는 게 골자다. 한국은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군수물자 지원을 지난해보다 큰 규모로 진행하고, 우크라이나의 재건 지원을 위한 양국의 적극 협력에도 의견을 모았다. 협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민주주의와 인도적 가치,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한국의 지원이 핵심이다.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외교 행보였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70여 년 전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한다”는 윤 대통령의 언급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남의 일만은 아니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를 역전하고, 포성이 멎은 이후엔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역경을 극복해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 입장에선 보답의 의미도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이미 국내 기업이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의 확장 공사와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듯, 2000조원 안팎일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한국 기업이 대거 참여한다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번 ‘전장 방문’이 향후에라도 정부의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불가라는 입장을 선회하는 계기가 돼선 안 되겠다. 정부의 살상 무기 지원은 또 다른 악순환을 낳을 수 있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터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과 인도적 배려가 중요하지만 향후 한·러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국제정치다. 외교엔 늘 신중함과 치밀함, 균형감각을 의미하는 프루던스(prudence) 개념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지원에는 적극 나서면서도 러시아를 완전하고 영원한 적으로 고착화시키지는 않을 그런 프루던스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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