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한파 누그러지면 HBM 진검승부 펼쳐진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 대한 성장 전망이 잇따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이른바 ‘메모리 한파’가 걷히면 가장 먼저 본격적인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16일 반도체·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HBM과 DDR5 등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기술 트렌드 및 업체별 개발·양산 계획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과 SK하이닉스가 올해 각각 최대 14조7070억원(NH투자증권), 11조2280억원(IBK투자증권)의 영업적자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가운데 HBM이 주요한 미래 활로로 꼽히고 있다.
지난 12일 SK하이닉스가 주요 기관 투자가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연 비공개 테크 세미나가 발단이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SK하이닉스와 경쟁사 간 기술 경쟁력 비교 등 다소 민감한 내용도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내고 “SK하이닉스는 AMD 등 고객사와 오랜 기간 협업해 HBM 시장을 선점했다”고 평가했다.
HBM은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메모리 반도체로, AI 연산을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 PU)에 탑재된다. 업계는 AI 시장 확대로 HBM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세계 HBM 시장은 올해 20억4186만 달러에서 2028년 63억2150만 달러(약 8조5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특히 가격이 기존 DDR4보다 높게는 6~7배여서 불황을 맞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엔 수익성 개선의 돌파구로도 꼽힌다. 최근엔 AI 열풍으로 값이 더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HBM 판매 물량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안팎이지만 매출 비중은 10% 정도”라고 말했다. 황민성 연구원도 “(HBM의) 물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출 증가와 손익 개선이 빨라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세계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이 각각 53%, 38%, 9%의 점유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업체마다 진단과 전망에 차이가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사장은 최근 임직원 소통 행사에서 “삼성 HBM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50% 이상”이라며 “HBM3(4세대 HBM), HBM3P(5세대)가 내년에는 이익 증가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체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HBM2(2세대)와 HBM2E(3세대)에서 삼성전자가 앞서나가자, SK하이닉스는 HBM3(4세대)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현재는 HBM3을 대량 생산하면서 우위에 선 분위기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H100’에도 제품을 탑재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간 사이에 주입하는 MR-MUF 공법이 기술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메모리부터 로직 파운드리, 패키지 기술을 모두 보유한 강점을 살려 최첨단 로직 반도체와 HBM 같은 고성능 메모리를 하나로 연결한 2.5차원, 3차원 패키지 제품을 선보일 방침이다. 또 충남 천안사업장의 HBM 생산 능력을 내년 말까지 두 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일부에서는 아직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안팎으로 크지 않다며 과도한 경쟁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는 서로 치고받기보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출시하며 산업 전체를 발전시켜왔다”며 “시장 판세는 또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경·고석현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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