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방문 130분전 “노트북 닫아달라, 대통령 신변 걸린 일”

권호, 현일훈 2023. 7. 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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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로 돌아오는 열차 내에서 호우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분들, 노트북 닫아주세요. 아, 그리고 여기 한국 기자가 아닌 분 계신가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한 호텔에 차려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단 앞에 선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14일(이하 현지시간) 한 말이다. 예정대로라면 귀국 준비가 한창일 때였다. 당장 순방 결산 브리핑을 염두에 두고 있던 기자들은 웅성거렸다. 곧이어 한 고위 당국자는 “지금부터는 녹음도, 노트북으로 받아치지도 말아 달라. 지금 내용을 국내의 특정 메신저를 통해 알리는 것도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당혹스러운 분위기 안에서도 기자단이 이를 수긍하자 고위 관계자가 단상에 올랐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이번 일은 아주 특별하게 지금부터 엠바고(보도 유예)를 풀 때까지 철저히 엠바고를 지켜주시고, 절대로 사내에서도 보안이 지켜질 수 있도록 각별히 협조를 구한다”고 했다. 이어 “(바르샤바에서) 2박을 더 하셔야 될 것 같다. 국가원수 신변이 걸려 있는 국가 안보에 대한 문제이니 오늘까지만 외부에 연락 말고 버텨 달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이 처음 알려진 순간이다.

이때가 14일 오후 2시30분. 윤 대통령이 바르샤바대에서 연설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로 출발한 시간이 오후 4시40분이니, 전격적인 방문을 130여 분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당국자들의 당부는 이어졌다. “국제전화 유선전화는 위험하다” “꼭 필요한 한두 사람에게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통신을 해달라” “(15일) 새벽 2시까지가 위험하다” “‘출장 기간이 조금 연장됐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정도로만 얘기해 달라”. 전쟁 중인 국가의 정상과 회담하러 들어가는 경우는 윤 대통령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우리 대표단 구성도 윤 대통령 부부 외에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과 통역 요원, 일부 경호처 관계자로 최소화했다. 대(對)국민 소통 창구인 이도운 대변인도 바르샤바에 남았다. 대통령실 경호처 관계자는 “최고 수준의 보안 등급이라는 의식으로, 각별히 보안을 잘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실제 윤 대통령의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지난 5월 특사 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우크라이나는 언제나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방문은 매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때 초청 의사가 담긴 젤렌스키 대통령의 친서도 전달했다. 같은 달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회의를 계기로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윤 대통령에게 방문해 달라는 의사도 전달했다고 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나토 정상회의에 임박해 외교 채널을 통해 다시 초청이 왔다. 그러나 국가 원수의 신변 안전과 경호 문제가 녹록지 않았고, 중대한 국가 안보 사항들이 얽혀 있었기 때문에 결정은 못 하고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리투아니아로) 출국했다”고 밝혔다. 전격적인 방문은 윤 대통령이 폴란드 순방 중에 최종 결정할 만큼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방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국내 호우 피해 상황을 챙겼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15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화상 회의에 참석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지난해 태풍 힌남노가 내습했을 때 포항, 울산 지역에서 군 장비를 동원했던 사례를 참고해 군·경찰 등 정부의 가용한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방문을 마치고 폴란드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도 참모들과 다시 긴급 상황 점검 회의를 하고, 화상으로 국내 상황을 점검했다.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가 시시각각으로 불어나고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다시 직접 점검에 나섰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16일 폴란드로 복귀한 윤 대통령은 곧바로 중대본을 화상 연결해 집중호우 대처 점검 회의를 주재했다. 윤 대통령은 먼저 “이번 폭우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일부 지역에서 사전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재난 대응의 제1원칙은 위험 지역에 대한 진입 통제와, 물길의 역류나 범람을 빨리 인식해서 선제적으로 대피 조치를 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방자치단체가 현장에서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기상청, 산림청 등 유관기관은 위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파해야 한다”며 범정부 차원의 유기적이고 즉각적인 대응태세를 주문했다. 경찰엔 “지자체와 협력해 저지대 진입 통제를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해달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6일 “국내 수해 상황을 고려해 우크라이나 현지 일정을 몇 가지 줄였다”며 박물관 방문과 정상 내외의 친교 일정 등을 거론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은 한국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집중호우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었다”며 “호우 상황을 하루에 한 번 이상 계속 모니터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17일 오전(한국시간) 귀국하는 대로 즉시 중대본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호우 상황을 챙길 예정이다.

바르샤바=권호 기자, 현일훈 기자 kw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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