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와 인생은 닮은 꼴… 늘 새로운 길 찾을 것”

박구인 2023. 7. 1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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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LPBA 최다 6승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
스롱 피아비가 지난 12일 서울 광진구의 한 파티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큐를 잡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저를 알아보거나 제 시합을 보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당구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더 독한 마음을 가지고 경기에 집중하죠. 당구는 멘탈 스포츠잖아요.”

프로당구계에서 ‘캄보디아 특급’으로 불리는 스롱 피아비(33·블루원리조트). 그는 이달 초 여자프로당구(LPBA) 통산 여섯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여자부 최다 우승이라는 새 역사를 쓰고 LPBA 최강자의 입지를 확고히 한 순간이었다. 스롱은 “우승 횟수가 늘어날수록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게 당구의 묘미다. 갈 수 있을 데까지 계속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2일 서울 광진구 한 파티룸에서 스롱을 만났다. 스롱은 이날 오후 예정된 팬미팅을 앞두고 한껏 들뜬 눈치였다. 당구를 치지 않을 땐 주로 ‘소통’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이다. 스롱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SNS로 소통하면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된다. 좋은 말이나 글을 통해 위로와 힘을 얻고 멘탈을 부여잡곤 한다”며 미소를 보였다.

스롱은 스무 살 때 한국에 왔다. 28세 연상의 남편 김만식씨와 국제결혼 후 이주하면서였다. 남편의 취미였던 당구를 우연히 접했고, 이후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스롱은 “처음부터 당구에 재능을 보였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은 엄청난 노력을 했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는 당구장에 거의 살다시피 하며 연습했다고 한다. 스롱은 “오늘은 잘 맞던 공이 내일은 안 맞는 게 당구다. 절대 쉬운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여름엔 너무 더워서 괴로웠다. 회전은 뭔지, 힘 조절은 어떻게 하는지 정말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단다. 비교적 살기 좋은 한국에 와 보니 모든 게 캄보디아와 비교가 됐다. 가난한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영상을 볼 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이따금씩 힘들었던 고향에서의 기억들도 되살아났다. 어린 시절 스롱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감자나 고구마를 캐고 밀가루를 만들어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럴수록 스롱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당구를 잘 치게 되면 고향에서 어렵게 사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였다. 스롱은 “눈물을 닦고 다시 당구장에 가서 밤새 연습을 했다. 지금 포기하면 누구도 도울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 여기며 꾹 참았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을 위해 장학금과 학용품, 의료용품 등을 전달하고 있다. 한국에서 알게 된 동료나 지인들과 함께 현지에 각종 봉사활동도 다닌다.

늘 곁에서 ‘당구 선생님’이 되어 준 남편은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최고 선수 반열에 오른 요즘도 그의 남편은 매일 밤 ‘흰 종이’와 ‘펜’을 들고 나타나 많은 조언을 해준다고 한다.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종이가 오직 스롱 만을 위한 일종의 ‘작전판’인 셈이다.

“남편은 정말 ‘감독’ 같은 사람이다. 모든 당구 영상을 보고 와서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 상대 플레이를 보고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섬세하게 도와주는 남편의 조언이 잔소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막상 실전에서 큰 도움이 된다.”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당구의 길을 한국에서 걷게 됐다. 2014년부터 꾸준히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며 실력을 키웠고, 2017년에는 프로에 입문했다. 2021년부터는 LPBA로 전향해 프로당구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조금씩 ‘인생의 길’도 보일까.

권현구 기자


스롱은 “당구에는 어려운 길이 있고 편한 길이 있다.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며 “당구와 인생이라는 건 끝이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다르게 쳐 보면서 조금씩 길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진짜 내 꿈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다짐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면서 직접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가끔 긴 시간 당구대를 바라보며 ‘소통’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당구대에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묻곤 한다. 툭 치면 얘(당구대)는 공을 튕겨내며 그 길을 알려준다. 그러면 ‘어? 이런 게 있었네!’하고 깨닫게 된다. 제가 사람들과 소통을 좋아하는 이유다. 소통을 하면 답이 나온다.”

스롱은 스포츠 환경이 열악한 캄보디아의 ‘국민 스타’로 떠올랐다. 올해 동남아시안게임 우승으로 제대로 이름을 알리면서다. 그는 “우승 후 ‘피아비 언니가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이주 노동자들도 늘어났다”며 “단순히 내가 당구를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나로 인해 행복해지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한국에 비해 의료시설과 일자리가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재능이 있어도 아프거나 먹고 살기 바빠서 자신의 꿈에 도전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스롱은 “한국에 와서 느낀 점은 캄보디아인들도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내 당구 한 큐에 아이들의 생명이, 점수 하나에 청년들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직접 노력해서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데뷔 후 스롱은 ‘남을 돕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며 많은 돈을 벌었지만 남을 돕는 데 여기저기 쓰다 보니 남은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젠 곁을 지켜준 가족들도 조금씩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친구나 가족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스롱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아직도 비가 새는 낡은 나무 집에서 지낸다. 지어진 지 40년 가까이 된 것 같다”며 “가끔 집에 가면 모기에게 잔뜩 물리고 더워서 잠도 안 온다. 튼튼한 새 집을 하나 마련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을 위한 선물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남편이 나이가 좀 많아서 노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것 같다. 텃밭을 가꾸며 편안하게 시골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선물할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스롱은 계속해서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캄보디아인들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자신감과 애국심을 심어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내가 이 자리를 좀 더 튼튼하게 지켜낸다면 캄보디아가 한국처럼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매순간 노력하고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스롱은 “돕고 싶은 사람들이 아직 많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전하고 싶다”며 “모두가 힘들지만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롱은 올해 남은 대회에서 최소 세 차례 더 우승하고 싶다는 목표를 남겼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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