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Z여자들] 오전 7시 필라테스 회원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순간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편집자말>
[이수현 기자]
▲ 운동 |
ⓒ 픽사베이 |
'여긴 고수들만 모인 건가....'
혼자 힘든 게 아니라는 기분이 들 때
약간 주눅이 든 채로 수업은 계속되었는데, 근력이 필요한 런지 자세와 사이드 플랭크 자세에서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자세를, 테니스와 러닝으로 단련된 나의 하체는 튼튼히 버텨주었다.
같은 반 회원 중 60대 초반인 엄마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한 분이 계셨는데, 코어 탄력이 필요한 누웠다 일어나는 자세에서 그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계속되는 실패에 약간 좌절하는 듯했으나 그녀의 진가는 밸런스 자세에서 드러났다. 갓 태어난 고라니처럼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 옆에서 눈을 감고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중심을 잡는 그녀는 마치 고행자 같았다.
유연한 사람, 근력이 좋은 사람, 밸런스를 잘 잡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아침 7시 반 여인들이 모두 똑같아지는 구간은 마지막 카운트를 기다리는 통곡의 10초 구간. 선생님의 시계가 유난히 느려지며 "일곱, 여덟, 아홉, 마지막 홀드...!"에서 "아픈 게 아니라 자극이다"라는 명언까지외쳐 질 때, 우리는 똑같은 마음이 된다.
모두가 빠짐없이 '끙끙' 거리다 카운팅이 끝나면 아이돌이 무대를 끝내고 숨을 몰아쉬듯, 우리도 매트 위에서 대자로 털썩, 엔딩 포즈를 취해본다. 같이 버텼다는 마음에 미세한 동지애가 차오른다.
짧은 50분의 시간 동안 각자 조금씩은 특출난 부분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또 결국 모두가 힘들어지는 마의 구간에서는 같이 버티는 동지들 덕에 힘을 받는다. 혼자 힘든 게 아니라는 기분이 들 때, 우리는 확실한 위로를 받는다.
사실은 못난 마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남의 불행에 기대어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하지만 필라테스 반 동료들이 다 같이 힘들어할 때, 친구들과 만나 '불행 배틀'을 하고 온 날에, '역시 나 혼자 힘든 거 아니었구나' 하며 마음 한구석이 은근히 든든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영문과를 나왔지만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 개발자의 길을 걷고 있는 대학 동기 Y가 있다. 문과에서 이과의 영역으로, 인생을 주도적으로 개척해온 그녀가 항상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그런 Y가 요즘 너무 힘들다고 한다. 갑자기 주어진 팀장 업무의 부담감, 감당되지 않는 방대한 업무의 양, 날고 기는 천재형 능력자들 사이에서 느끼는 한계까지. 속앓이하던 고민과 고충을 한 보따리 펼쳐 내보인 저녁이 있었다.
힘들어도 같이 갑시다
인문학도가 갈 수 있는 한정된 직무로 회사에 입사해 같은 업무를 10년간 반복하고 있는 나는 그녀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단순 자료만 만들고, 누군가를 보조하는 일을 하다 끝나는 일주일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도전적인 그녀도 힘든 게 많았구나 생각하며, "나는 회사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기가 힘들어서 맨날 현타와. 그래서 자꾸 밖에서 딴짓하잖아" 하고 내 불행을 슬그머니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러다 시민기자로 나의 첫 기사가 게재되었을 때 Y에게 이런 메시지가 왔다.
"정말 너무 멋있어. 좋아하는 글쓰기로 한 스텝 한 스텝 새로운 시도하는 게. 기대된다 앞으로가."
그러고 보면 연대감이란 것도 불행을 나누는 데서 온다.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에서 동그랗게 모여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불행을 이야기하고 함께 울며 주말을 보낸다. 불행을 나누는 일이 곧 행복감을 준다는 모순을 눈치채기도 전에 우리는 회복되어 또 월요일을 맞는다.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연대하며 행진하거나, 같은 '빡침'을 공유하는 팀원끼리 모여서 팀장을 욕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연대감은 서로의 불행을 확인하는 데서 오고 그 불행 대잔치가 행복의 시작이다. - <작고 기특한 불행>, 오지윤
지난주 갖은 업무로 힘들었던 날, 퇴근 후 연기 자욱한 돼지갈빗집에서 나의 한숨을 가리며 SNS에 '모든 노동자들 오늘도 고생했다'라는 문구를 올렸다. 그 위로는 나와 모두에게 던지는 위로였고.
그날따라 유난히 하트(좋아요)가 많이 날아온 건, '인생의 고됨'에 대해 함께 욕하고 싶은 같은 편들의 연대 아니었을까. 우리 힘들어도 같이 갑시다. 오늘 하루도 모두 고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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