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폭우 참사 반복되는데…'침수방지법'은 국회서 잠잔다

김다영 2023. 7. 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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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미호강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방문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 13일부터 나흘째 쏟아진 폭우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43명(오전 11시 기준 공식집계)에 달한 가운데, 10여 건이 넘는 침수방지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수해로 30여 명의 인명피해 발생한 뒤 정치권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잠자는 동안 또 다시 같은 피해가 발생하면서 “사실상 인재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도시침수 및 하천범람 대책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총 14건의 법안이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홍수 피해는 크게 도시침수로 인한 피해와 하천범람으로 인한 피해로 나뉘는데, 올해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충북 청주 미호강 범람에 따른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는 제방 유실로 인한 하천 범람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9월 이같은 하천 범람으로 인한 수해를 막기 위해 ‘하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사건, 9월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폭우로 경북 포항의 냉천이 범람하면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7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법안이 발의됐다. 2020년부터 재정분권 시행으로 지방하천 정비사업이 국고보조사업에서 제외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족을 호소해 왔다. 이에 홍수에 대한 안전 확보가 시급한 지방하천에 한해 ‘국가지원 지방하천’으로 지정하고, 국가가 직접 하천공사를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지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면 환경부장관이 해당 하천의 공사를 국비로 시행하고, 유지·보수만 지자체가 맡게 된다. 이로 인한 예산은 2023~2027년 약 2092억~2454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두 차례나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됐지만, 기획재정부가 재정분권 취지에 역행한다고 반대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미호강은 현재 국가하천 구간과 지방하천 구간이 나뉘어져 있는데, 이번 사고가 발생한 구역은 국가하천 구간이고 상류 구간이 지방하천 구간이다. 하지만 하천범람 특성상 상류구간 관리가 중요한 만큼, 임 의원 개정안처럼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고 정치권은 보고 있다. “해당 법이 통과돼 지방하천과 국가하천을 국가가 통합적으로 공사·관리했다면 이번 수해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다.

전국 곳곳에 홍수경보가 발령되는 등 물 폭탄이 쏟아져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1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 침수 사고현장에서 소방과 경찰, 군이 합동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은 이외에도 여럿이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2021년 9월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법’을 발의했다. 환경부가 ‘도시침수방지대책종합계획’을 수립하면, 이를 토대로 지자체가 공사를 추진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행안부가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시행 중인 도시 하천에 대한 침수피해방지대책과 중복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수진(비례) 의원은 지난해 12월 환경부장관이 하천 유역별로 10년 단위의 하천 연속성 확보를 위한 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의 하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올해 4월 25일 환노위에서 가결됐으나, 처리를 기다리는 다른 법안들에 순서가 밀려 아직 법사위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 신재민 기자


이 밖에도 행안부와 지자체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소하천 정보체계’를 연계 구축해 운영하도록 하는 ‘소하천 정비법 개정안’(강기윤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 지하공간 소유자가 침수방지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유지·관리하도록 하는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안’ (김정호 민주당 의원) 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진척이 없다. 여권 관계자는 “부처 간 밥그릇 싸움과 여야 간 불협화음 속에서 중요한 재해 관련 법안 논의가 꽉 막힌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재옥(왼쪽 두번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산사태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정치권은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지도부는 16일 오전 궁평2지하차도 현장을 방문해 “앞으로도 폭우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 대비에도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수해 피해가 가장 심각한 경북지역을 방문해 “정부 차원에서 예상하지 못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까지도 대응해야 한다. 정부 조치에 부담이 안되는 시점을 택해 조속히 당정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5박 7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이날 돌아오는 김기현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북핵 위협으로부터 안전보장과 재외동포 지위향상 등을 위해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되지만, 본국의 폭우 피해 소식으로 마음이 무겁다”며 항공편을 앞당겨 귀국길에 올랐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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