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1위, 휴가 줘도 못썼다…韓 '워라밸' OECD 최하위권
한국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수준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란 분석이 나왔다. 1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제43권 제2호)에 실린 논문 ‘일-생활 균형시간 보장의 유형화’에 나타난 결과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의 적정 노동 시간을 보장하는 수준은 0.11점으로 31개국 가운데 하위 세 번째였다. 가족 시간 보장 역시 0.37점을 기록해 하위권(31개국 중 20위)에 속했다.
연구진은 OECD 회원국의 2021년 자료를 토대로 워라밸 보장 수준을 ‘노동’과 ‘가족’으로 나눠 두 영역에 개인이 할애하는 시간이 얼마나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지 점수 매기는 방식으로 분석했다.
노동시간 보장은 ▶근로시간 ▶맞벌이 비율 ▶기혼여성 고용률 ▶평균임금 등의 15개 지표를 활용해 0~1점 사이 점수로 매겼다. 한국의 노동 시간 주권(선택권) 수준은 0.11점(1점 만점)으로 밑에서 세 번째였다. 미국(0.14점)과 비슷한 수준으로 한국보다 낮은 곳은 그리스(0.02점)와 체코(0.09점)였다. 적정 근로시간을 보장하는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는 노르웨이(0.95), 덴마크(0.95), 네덜란드(0.91) 순이었다.
한국은 연간 근로시간이 1915시간으로, 조사대상 국가 중 1위였다. 31개국의 평균 연간 근로시간은 1601시간이었다. OECD 회원국의 25~54세 전일제 근로자 일주일 노동시간의 평균은 41시간이었고 한국은 43.8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주당 근무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로자 비율 역시 18.9%로 평균(7.4%)을 훌쩍 넘었다.
노혜진 강서대 사회복지학과 조교수는 점수가 낮은 국가일수록 “근로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이 길뿐만 아니라,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나 성별 임금 격차가 높아 전반적으로 적정한 시간을 투입하면서 일-생활 균형을 누리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해석했다.
가족시간은 ▶휴가기간 ▶휴가 사용률 ▶휴가의 소득대체율 ▶모성·부성 관련 휴가 법적 보장 수준 등 11개 지표 기준으로 평가했는데, 한국은 낮은 수준(종합 0.37점)에 속했다. 31개국 중 20번째로 이탈리아(0.35점), 스위스(0.34점)와 비슷하고 미국(0.05점), 호주(0.10점), 뉴질랜드(0.12점)보다 높았다.
연구진은 노동시간과 가족시간 보장 정도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국가를 분류했다. 노동시간과 가족시간에서 모두 점수가 높은 국가(①), 노동시간만 높은 국가(②), 가족시간만 높은 국가(③), 노동시간과 가족시간 모두 낮은 국가(④) 등이다. 한국은 마지막 유형에 속했다. 노동시간은 과도하게 길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짧아서 워라밸 수준이 낮은 국가라는 것이다.
유형①에는 노르웨이·스웨덴·네덜란드 등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유럽 국가가 포함됐다. 유형②에는 에스토니아·폴란드·헝가리 등의 동유럽 국가들이, 유형③에는 프랑스·벨기에·아이슬란드 등이 속했다. 한국과 같은 유형④에는 그리스·미국·이탈리아 등이 있었다.
유형①에서 ④로 갈수록 시간 사용 만족도는 줄어들고, 여가시간 사용량도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여가시간은 258분으로, 포르투갈(241분), 리투아니아(247분)에 이어 짧게 쉬는 국가였다. 여가시간이 가장 긴 국가는 노르웨이(368분)로, 한국보다 1시간50분 더 쉬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혜진 조교수는 “한국은 가족시간과 노동시간 보장 수준이 모두 낮아서 일-생활 균형시간을 보장하는 정도가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보고될 정도로 OECD 국가 중에서 독보적으로 출산율이 낮고, 일과 가족이 양립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짧은 근로시간을 전제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부가 모두 일할 수 있고 저임금 위험이 낮은 노동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며 “짧은 근로시간이 달성된 후에 장기적으로 고민할 부분은 근로시간저축계좌제의 도입, 보편적 직업능력 훈련과 생활 주권, 연결차단권 도입”이라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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