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제6회 중앙학생시조암송경연대회]부산부터 여수까지…전국 초·중·고 학생 217명 모인 시조 축제
"거침없이 쓰세요. 각자 상상력을 발휘해서 생각과 느낌을 생생하게 표현해 보세요. 새로우면서도 놀라움이 깃든 작품이 탄생하길 기대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4년 만에 대면 행사로 열린 중앙학생시조백일장. 단상에 올라선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정환 이사장은 백일장 참가를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200명이 넘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개회사를 겸한 기조강연에서다. 학생들에게 시조의 규칙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거침없이 쓰라"고 거듭 강조했다. 학생들의 표정이 한층 신중해졌다. 15일 하루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제6회 중앙학생시조암송경연대회의 모습이다.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지만 백일장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발길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전국에서 모두 217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멀리 부산·여수 등지에서 KTX 새벽 열차를 타고 올라온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어머니 손을 잡고 온 가족이 올라온 경우도 상당수여서, 백일장이 열린 조계사 공연장의 좌석의 부족할 정도였다. 일부 학부모는 공연장 입장이 허용되는 개회식이 열리는 동안 뒤편에 서서 지켜봐야 했다.
올해 백일장과 암송대회에는 전국의 114개 초·중·고에서 605명이 응모했다. 예심을 진행한 결과 초·중·고생 358명과 홈스쿨링 학생 2명 등 총 360명이 본심에 진출했다. 360명의 절반이 넘는 217명이 본심 경연장을 찾은 것이다.
오전 11시 백일장이 시작됐다. 이정환 이사장의 간략한 강연에 이어 시조시인협회 정용국 감사가 백일장 시제(試題)를 발표했다. 초등부는 '나의 꿈'과 '약속', 중등부는 '벌'과 지구', 고등부는 '오늘'과 '소금'이었다.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하나같이 골똘히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시제에서 연상되는 단어를 하나씩 답안지에 적으며 작품에 써먹을 시어를 골라내는 학생도 보였다.
점심시간 직후 바이올린 연주자 이재훈의 공연으로 오후 순서가 시작됐다.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크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로즈마린' 연주를 들으며 긴장을 푸는 시간이었다.
이어 시조암송대회가 시작되자 언제나 그렇듯 공연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암송대회는 시조시인협회가 선정해 사전에 공개한 시조 50편 가운데 무작위로 세 편씩을 외우는 예심, 두 편씩을 외우는 본심으로 나눠 진행됐다. 참가자는 1번부터 50번까지 번호가 적힌 50개의 공 가운데 하나를 뽑아 그 번호에 해당하는 시조를 암송해야 한다. 암송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권갑하 시인이 "고저장단에 신경 써 강약을 조절해 암송해 감정 표현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천천히 정확하게 외워야 한다"고 당부해, 한 단어라도 틀리면 탈락하는 긴장감 넘치는 경연이다. 장려상을 받은 진주 주약초등학교 1학년 김지명 양의 암송 순서가 이날 암송 경연의 하이라이트였다. 말할 때 발음이 분명치 않을 정도로 앳된 김 양은 예심·본심에서 주어진 시조 다섯 편을 한 글자로 틀리지 않고 암송해 심사위원들과 객석의 탄성을 자아냈다.
오후 4시,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 교육부장관상인 대상 시상에 나선 교육부 김연석 책임교육정책관은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에 너무 빠져있다고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은데, 이런 디지털 시대에 시조를 쓰기 위해 여기 모인 학생들의 마음이 감사하고 소중하다"고 했다. "암송 경연에서 학생들이 시조를 암송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뿌듯하고 대견스러웠다"며 "수상하지 못한 학생들도 문학의 꿈을 계속해서 키워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중앙일보 최훈 주필은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는 수학자가 되기 전 시인을 꿈꿨고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단테의 서사시 신곡을 외우다시피 할 만큼 읽었다"며 "깨우침의 원천인 문학에 깊이 빠져 본 경험은 뛰어난 창조력의 샘이 될 것"이라고 덕담했다.
이날 행사에는 시조시인 김양희, 한국시조시인협회하순희·염창권·우은숙 부이사장, 이송희 시조미학 주간 등이 참석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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