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상처 무시' 연쇄살인범 드라마 에미상 후보 논란

엽기적인 연쇄살인범 다룬 넷플릭스 ‘다머’
에미상 13개 부문 후보…유족 “더 큰 상처”

미국의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의 범행 행각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다머-괴물:제프리 다머 이야기’(이하 ‘다머’)가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그러자 “유족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1960년생의 다머는 1978년부터 1991년에 이르기까지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일대에서 17명을 살해했다. 피해자는 주로 흑인과 유색인종인 젊은 남성이었다.

게다가 다머는 온갖 엽기적인 방법으로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하거나, 식인과 시간(屍姦) 등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미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한 자산가가 그의 범행 장소가 된 아파트를 통째로 매입해 철거해버릴 정도였다. 체포 후 종신형을 선고받은 다머는 수감 중이던 1994년 다른 재소자에게 구타당해 숨졌다.

‘다머’는 다머의 일생을 10년의 간격에 걸쳐 10부작으로 그려낸 드라마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나른한 분위기로 살인마의 이상심리와 살인 행각을 여과 없이 사실적으로 담으며 호평과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다머-괴물:제프리 다머 이야기’ [이미지 출처=넷플릭스 제공]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크게 흥행했고, 올해 에미상에서 다머를 연기한 에번 피터스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13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됐다. 에미상은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과 함께 ‘미국 연예계의 그랜드슬램’으로 꼽히는 권위 있는 상이다.

그러자 15일(현지시간) 다머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들을 대리했던 변호사 토마스 제이컵슨이 매체에 성명을 보내 “넷플릭스 드라마 '다머'가 에미상 13개 후보에 오른 것은 살인범을 미화하고 유족에게 트라우마를 줄 수 있다”고 비난했다고 미국 연예매체 피플이 보도했다. 제이컵슨 변호사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당시 8명의 피해자 유족을 대리해 관련 소송을 진행했다.

제이컵슨 변호사는 “‘다머’ 같은 프로그램에 에미상을 수여하는 것은 사회의 폭력과 범죄를 미화하고, 이에 둔감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미상 13개 후보에 오르는 등 사건과 관련한 화제가 이어지는 것은 이 괴물의 행동과 동기를 미화하고, 유족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다머-괴물:제프리 다머 이야기’ [이미지 출처=넷플릭스 제공]

‘다머’에 대해 유족 측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피해자 토니 휴즈의 어머니 셜리 휴즈는 지난해 영국 일간 가디언에 “어떻게 우리 이름을 사용해서 그런 내용을 내보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희생자 애롤 린지의 여동생인 리타 이스벨은 드라마에서 묘사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나를 괴롭혔던 당시의 모든 감정이 되살아났다”고 밝혔다. 실제로 드라마에는 법정에서 발언하다가 격분해서 다머에게 달려드는 이스벨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제이컵슨 변호사는 “드라마의 모든 초점이 살인자에게 맞춰져 있고 아무도 희생자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이 프로그램은 사전에 유족의 참여나 동의를 얻지도 않았으며, 이는 가뜩이나 상처받은 유족들을 더 힘들게 했다”고 지적했다. 린지의 사촌 에릭 페리도 “이 드라마가 제작된다고 미리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머’의 제작자 라이언 머피는 “피해자 가족과 친구 20명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반박했다.

한편 피플은 “넷플릭스 측은 이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승우 기자 loonytun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