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수 신변 걸린 일, 노트북 닫아라"…尹 우크라 방문 막전막후
“기자분들, 노트북 닫아주세요. 아, 그리고 여기 한국 기자가 아닌 분 계신가요?”
윤석열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와 폴란드 공식 방문을 함께한 기자단 앞에 선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14일(이하 현지시간) 한 말이다. 이날은 예정대로라면 귀국 준비가 한창이었을 때다. 당초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와 폴란드 공식 방문을 위해 10일부터 15일까지 4박 6일간 순방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안보실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 등이 폴란드 바르샤바에 마련된 현지 프레스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이런 얘기를 한 것이다.
당장 기자들은 웅성거렸다. 순방 결산 브리핑을 염두에 두고 있던 기자들한테 “노트북을 닫으시라”, “한국 기자가 아닌 분 계신가” 같은 얘기가 먼저 들려서다. 브리핑 내용을 노트북으로 받아 쳐서 외부로 연락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곧이어 한 고위 당국자는 “지금부터는 녹음도, 노트북으로 받아치기도 말아달라. 지금 내용을 국내의 특정 메신저를 통해 알리는 것도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당혹스러운 분위기 안에서도 기자단이 이를 수긍하자 고위 관계자가 단상에 올랐다. 그의 첫 마디는 "방문 일정이 마지막 날인데, 또 한 가지 방문 일정이 생겼다는 말씀을 공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이번 일은 아주 특별하게 지금부터 엠바고를 풀 때까지 철저히 엠바고를 지켜주시고, 절대로 사내에서도 보안이 지켜질 수 있도록 각별히 협조를 구하는 말씀을 드린다"고 당부했다.
곧이어 나온 얘기가 ”앞으로 (바르샤바 현지에서) 2박을 더 하셔야 될 것 같다. 국가원수 신변이 걸려 있는 국가 안보에 대한 문제이니 오늘까지만 외부에 연락 말고 버텨달라“였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이 처음 알려진 순간이다.
이 때가 14일 오후 2시 30분. 윤 대통령이 바르샤바대에서 연설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로 출발한 시간이 오후 4시 40분이니, 전격적인 방문을 130여 분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이후에도 당국자들의 당부는 이어졌다.
"국제 전화 유선 전화는 위험하다", "꼭 필요한 한두 사람에게는 우회적인 언어로 통신을 해달라”, “(15일) 새벽 2시까지가 위험하다”, “출장 기간이 조금 연장됐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정도로만 얘기해달라” 같은 말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 중인 국가의 정상과 회담을 하러 들어가는 경우는 윤 대통령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우리 대표단 구성도 윤 대통령 부부 외에 조태용 실장과 김태효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과 통역 요원, 일부 경호처 관계자 등으로 최소화했다. 대(對) 국민 소통 창구인 이도운 대변인도 바르샤바에 남았다.
대통령실 경호처 관계자는 순방 기자단에 “갑작스럽게 대통령 내외분께서 전쟁지역을 들어가시기 때문에 경호 안전상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며 “최고 수준의 보안 등급이라는 의식으로, 각별히 보안을 잘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실제 윤 대통령의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지난 5월 특사 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우크라이나는 언제나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방문은 매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때 초청 의사가 담긴 젤렌스키 대통령의 친서도 전달했다. 같은 달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회의를 계기로 한ㆍ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윤 대통령에게 방문해달라는 의사도 전달했다고 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나토 정상회의에 임박해 외교 채널을 통해 다시 초청이 왔다. 그러나 국가 원수의 신변 안전과 경호 문제가 녹록지 않았고, 중대한 국가 안보 사항들이 얽혀 있었기 때문에 결정은 못하고 (리투아니아로)출국했다"고 밝혔다. 전격적인 실제 방문은 윤 대통령이 폴란드 순방 중에서야 최종적으로 결정할 만큼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다는 의미다.
순방 직전까지 우크라니아 방문 계획과 관련한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은 “별도의 방문 내지 정상회담 계획도 없고, 현재 추진되고 있지도 않다”(6일,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이었다. 조 실장과 김 차장은 바르샤바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찬을 할 때도 우크라이나 방문 가능성을 일축했다.
바르샤바=권호 기자 kw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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