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의 금융라이트]아일랜드 샌드위치와 디지털세

세종=송승섭 2023. 7. 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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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네덜란드를 끼운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a Dutch Sandwich)로 불리는 조세회피 방식. 사진=호주 ABC 방송

‘아일랜드에 네덜란드를 끼운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a Dutch Sandwich)’를 아시나요. 이상한 음식 이름 같지만 사실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절세 꼼수를 비꼬는 말입니다. 이들 기업이 아일랜드 두 곳과 네덜란드 한 곳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복잡한 세금 제도를 이용해 조세회피를 시도하면서 탄생한 말이죠.

앞으로는 이러한 조세회피가 줄어들 전망입니다. 전 세계가 6년 만에 디지털세에 대한 전반적인 합의에 이르렀거든요. 2026~2027년부터는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걷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세계는 어떻게 조세회피를 끊어낼 방안을 마련했을까요?

과거에는 기업들에게 세금을 매기는 방법이 단순했습니다. 공장이나 본사가 있는 나라에서 수익을 올리면, 해당국의 법에 따라 세금을 냈죠. 다른 나라에 물건을 수출하면 관세를, 현지에 진출해 사업장을 만들면 법인세를 내면 됐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굳이 현지에 사업장을 두지 않아도, 세관을 통과하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득을 올리는 게 가능해졌죠.

이를 악용하는 기업도 생겼습니다. 법인세가 매우 낮은 국가에 본사를 위치시키는 다국적 기업이 등장했습니다. 일종의 조세회피처인 셈입니다. 전 세계에서 돈을 벌어들이지만 사업장에 따라 세금을 매기다 보니, 정작 엉뚱한 나라에 세금이 흘러 들어갔죠. 세율이 낮은만큼 기업들은 막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고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해 기업들의 조세회피금액만 24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전 세계가 공통대응에 나섰습니다. 2012년 주요 20개국(G20)은 정상회의에서 자체 프로젝트를 만들고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에 공조하기 시작했죠. 2015년 OECD는 15개 계획을 세우고 이를 G20 재무장관회의에 제출한 뒤 자체 보고서를 냈습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에는 디지털 기업들이 막대한 부를 거둬들이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습니다. 마침내 2020년 국가별 합의안 도출을 위한 계획이 등장했죠.

매출 있는 곳에 납세, 저세율 과세하면 추가징수

디지털세는 크게 필라 1과 필라 2로 나뉩니다. 필라(Pillar)란 기둥이란 뜻인데 디지털세라는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크게 2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필라 1은 글로벌 기업이 자국뿐 아니라 실제 매출을 올린 타국에도 세금을 내게 하는 제도입니다. 연결매출액 200억유로(약 28조원) 이상, 영업이익률 10% 이상인 다국적기업이 대상입니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여기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필라 1은 다시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뉩니다. ‘어마운트 A(Amount A)’와 ‘어마운트 B(Amount B)’입니다. 어마운트 A는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서 다국적 기업의 소득에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입니다. 과거처럼 사업장이 없어도 세금을 거둘 수 있죠. 올해 말까지 최소 30개국 이상이 동의하고 필라 1 기업 소재국 60% 이상이 서명하면 발효됩니다.

어마운트 B는 가격을 매기는 방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세금을 거두려면 이들 기업이 비용을 얼마나 들여서 가격을 얼마에 책정했는지 알아야겠죠? 그래서 어마운트 B에는 다국적 기업의 국제거래 가격을 어떻게 계산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간 기업과 국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던 분쟁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죠.

필라 2는 나라마다 다른 세율을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자나 사용료와 같은 지급금이 수취국에서 9% 미만의 세율로 과세된다면, 소득이 발생한 나라(원천지국)가 추가세액을 징수할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필라 2는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요, 일정 기준을 충족한 개발도상국에서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세가 한국에 유리할지 불리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세수가 소폭 늘어날 거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필라 1의 경우 수천억원 정도 세수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필라 2로 인해 수천억원의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며 “정부는 이를 결합하면 세수에 소폭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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