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안전한 곳 있겠나' 망설인 아내, 눈앞서 집째 휩쓸려 갔다"
“산에서 쓰나미가 밀려오는 줄 알았다니까. 큰 바위랑 뿌리째 뽑힌 나무랑 흙이랑 파도처럼 쾅쾅 소리를 내면서 내려오는데. 아이고, 집이고 차고 통째로 그냥 휩쓸려서 떠내려가더라고. 저기 아랫집에는 김씨랑 아들이랑 자고 있었는데… 아들만 겨우 찾았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주민 김익겸(68)씨는 15일 새벽 산사태 당시 본 풍경을 ‘쓰나미’, ‘전쟁터’ 등으로 묘사했다. 다른 주민들도 “무슨 포격이 떨어진 것처럼 ‘콰광’하는 소리가 1분 정도씩 너댓번 반복됐다. 집 밖을 보니 흙탕물이 마을을 관통하면서 집들을 쓸어갔다”고 말했다.
“집과 함께 떠내려가…쓰나미 같은 산사태”
집의 형체라도 남은 곳들은 그나마 피해가 덜한 곳이었다. 주민들은 “집이 거의 흔적도 없이 떠내려간 곳도 있다”며 나무조각과 돌들이 쌓인 곳을 가리켰다. 8년 전 귀농한 주민 장모(68)씨는 “그 집에 나랑 비슷한 시기에 이사 와서 기름집을 하던 김씨가 아들이랑 같이 있었는데 집이 산사태에 휩쓸리면서 두 사람 다 떠내려갔다”며 “아들은 다리를 다친 상태에서도 기적적으로 스티로폼인지를 타고 가다 농업용 비닐 같은 걸 붙잡아서 구조됐는데, 김씨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순식간에 휩쓸린 아내…“몇초 만에 눈앞서 사라져”
산사태 지점과 수십 미터 떨어진 마을회관과 교회 등에 대피해 있는 주민들은 실종된 이웃과 물에 잠긴 집 걱정에 밤새 마음을 졸였다. 15일 밤늦은 시각 교회 안에선 “아이고 아이고”와 같은 통곡 소리가 건물 밖까지 새어 나왔고, 방 한쪽에는 아내 윤모(62)씨가 산사태에 휩쓸리는 장면을 불과 몇 미터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모(63)씨가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옆에는 소식을 듣고 수원에서 급히 내려온 아들이 붉게 충혈된 눈을 연신 닦으며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씨는 “비가 많이 오니 어딘가 대피하자는 생각으로 밖에 나와 있었다. 내가 얼른 나오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내는 무서웠나 보다. ‘집보다 안전한 곳이 있겠냐’며 고민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내가 보고 있는 사이 아내가 있는 곳을 산사태가 덮쳤다. 몇초도 안돼서 건물과 함께 쓸려 내려갔다. 눈으로 보고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2년 전 귀농한 이씨 부부의 농사를 도우려 주말에 벌방리를 찾은 지인 한모(62)씨도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는 빗줄기가 갈수록 거세지자 차량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다 차와 함께 산사태에 휩쓸렸다. 교회에서 만난 그는 “몇 바퀸 지를 구르며 내려가다 차가 어디 구덩이 같은데 처박히며 멈췄다. 차안에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이대로 그냥 죽는구나 했는데, 차 뒤쪽에 구멍 같은 게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차가 구르는 동안 창문이 깨져 겨우 사람 한명 빠져나갈 틈이 생긴 것이다. 한씨는 구멍을 비집고 나와 탈출했다.
“수색 난항” 소식에 눈물 흘린 주민들
윤정민ㆍ김홍범ㆍ이영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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