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고개 숙인 박건우, 논란 딛고 다시 돌아올까
[이준목 기자]
▲ 박건우 |
ⓒ 연합뉴스 |
지난 15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 올스타전’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나눔 올스타의 1회말 공격에서 타석에 선 박건우가 안타를 치고 1루로 출루했다. 마침 1루에는 박건우의 소속팀 사령탑인 강인권 감독이 베이스 코치로 나와 있었다.
박건우는 1루에 도달한 뒤 보호대를 맡기면서 강인권 감독을 향해 돌연 90도 인사를 했다. 강인권 감독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박건우를 격려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박건우와 강인권 감독으로서는 이달 초 벌어진 2군행 논란 이후 이번 올스타전이 공식석상에서의 첫 재회였다. 박건우는 지난 3일 갑작스럽게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우타 외야수인 박건우는 2023시즌 전반기에도 타율 .286, 7홈런, OPS .816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고, 나눔 올스타 외야수로도 선정됐다. 특별한 부상이나 슬럼프도 없었기에 주전 외야수의 갑작스러운 2군행은 의아함을 자아냈다.
이유는 오래가지 않아 밝혀졌다. 박건우가 주축 선수로서 팀플레이와 관련해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고, 강인권 감독이 질책 차원에서 2군행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시즌 WBC 참가 등으로 체력소모가 심했던 박건우는 이전에도 몇차례 “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경기 중 교체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강인권 감독은 "고참 선수는 실력 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덕목도 필요하다. 고참이라도 ‘원팀’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길 바란다. 그런 면에서 박건우에게 아쉬움이 있었다”며 우회적으로 박건우의 태도를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박건우는 두산 베어스 시절인 2021년 6월에도 당시 사령탑인 김태형 감독에게 같은 조치를 받은 바 있다.
같은 선수가 같은 사유로 다른 감독에게 동일한 처분을 받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해당 선수의 직업윤리, 성실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 박건우와 강인권 감독이 나란히 이번 올스타전에 나서게 되면서 징계 2주 만에 소속팀에서보다도 먼저 공식석상에서 만나게 되는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팬들은 두 사람의 재회와 함께 논란에 대한 박건우의 첫 입장 표명에 관심이 쏠렸다.
우려와 달리 분위기는 나쁘지않았다. 올스타전 경기 전 팬 사인회에 먼저 모습을 드러낸 박건우는 "강인권 감독님과 이전에 만나뵙고 말씀을 드렸다“고 고백하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자세한 대화 내용은 밝히지 않은 박건우는 "올스타전은 팬분들이 뽑아주신 자리여서 오늘만큼은 여기서는 즐기다가 갔으면 좋겠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아꼈다.
박건우와 강인권 감독은 올스타전 선수 및 코치 소개, NC 팀 기념 사진 촬영 등에서 나란히 함께 서며 미소를 지었다. 이때만 해도 어색한 공기가 다소 남아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역시 올스타전 본경기에서의 1루 재회였다. 박건우가 안타를 치고 출루하자 베이스 코치인 강인권 감독은 손을 뻗어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격려했고, 박건우의 폴더인사 때는 웃으며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약간 경직되어있던 박건우의 표정에도 비로소 미소가 감돌았다. 박건우는 이날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건재한 타격감을 과시했다.
NC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NC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 시즌 78경기에서 39승 38패 1무(승률 0.506)를 기록, 전체 4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올시즌을 앞두고 양의지(두산 베어스)의 이적 공백을 비롯하여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겹치며 쉽지 않은 시즌이 예상된 것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선전이었다.
다만 6월말부터 전반기 마무리까지 두 차례의 5연패를 비롯하여 극심한 하락세를 겪은게 아쉬웠다. 가뜩이나 팀이 하락세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설상가상 박건우의 워크에씩 논란과 2군행은 팀에 큰 전력손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7월 8~9일 홈에서 열린 최하위 팀 삼성 라이온즈와 시리즈에서는 충격적인 2연속 영봉패라는 수모를 당하며 박건우의 공백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나마 롯데와의 전반기 마지막 2연전에서 타선이 폭발하며 연승으로 다시 5할 승률을 회복하고 마무리한 것이 위안이었다.
후반기에 NC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타선의 핵심인 박건우의 복귀는 필수적이다. 구단과 코칭스태프로서도 ‘팀 기강’과 ‘성적’ 사이에서 박건우 논란을 오래 끌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박건우가 강인권 감독과 이미 대화를 나눴다는 것은 곧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 박건우가 축제의 자리인 올스타전 무대를 이용해 모든 야구 팬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강인권 감독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곧 강 감독만이 아니라 NC 구단과 팬들, 구성원들에게 보여주는 사과이기도 했다.
이제 공은 강인권 감독에게 넘어왔다. 주축 선수의 2군행을 통하여 스타 선수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확실한 메시지도 전달했고 체면도 세웠다. 박건우도 퓨처스리그에서 별다른 부상없이 컨디션을 유지해왔다. 가을야구를 향한 5강 경쟁의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있는 후반기다. 올스타전에서 보여준 사제의 화합은 소속팀에서도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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