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비명에 아빠는 토사 덮친 집 달려갔다"…영주 산사태 부녀 비극
“조카 애가 비명을 지르니까. 사촌 형님이 구하려 갔다가 그만 둘 다….”
지난 16일 오전 경북 영주시 영주동 영주기독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만난 김모(54)씨는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전날 오전 7시 27분쯤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되면서 숨진 김모(67)씨의 사촌 동생이다. 집에 있던 첫째 딸(25)도 아빠와 함께 변을 당했다. 엄마 정모(58)씨만 가까스로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 기독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빈소에서 만난 유족들은 황망한 사태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 김씨의 친형(71·경기 부천시)은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이게 진짜 일어난 일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힘없이 말했다. 김씨의 둘째 딸(23)도 “입원 중인 엄마가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해 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대학생인 둘째 딸은 사고 당시 대학이 있는 대구에서 지내고 있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
사촌 동생 김씨는 “형수(정씨) 말로는, 형님이 딸을 구하려 했는데 집 안에 흙이 가득 쌓여 문이 안 열렸다고 한다”며 “그러다 순식간에 토사에 휩쓸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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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흙더미 보고도 집 달려갔는데…”
당시 산사태를 목격했다는 숨진 김씨의 친구 박모(67)씨도 유족과 비슷한 취지의 사고 상황을 전했다. 토사가 덮치기 전, 김씨는 낙엽 등 이물질이 쌓인 집 앞 도랑을 정비하며 지인과 대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콸콸콸’ 소리와 함께 산에서 흙탕물과 함께 토사가 쏟아지려 했다고 한다.
박씨는 “그러자 친구가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 집으로 달려갔다”며 “산에서 쏟아진 토사가 창고 하나를 친 뒤, 대각선 아래에 있던 친구 집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는데, 그 쪽이 큰 딸이 자고 있던 방이었다”고 했다. 그는 “친구가 집 문을 열기도 전에 토사에 휩쓸렸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며 “친구랑 있던 지인은 도로 쪽으로 피신해 목숨을 구했는데, 친구는 가족 구하려다 피하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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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자인데…당장 지낼 집도 없고 어떡하나”
사망한 김씨 부녀 유족들은 당장 둘째 딸과 엄마의 생계가 걱정이다. 집은 산사태로 절반이 뜯겨져 나간 상태였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 유족은 “엄마가 지적 장애도 있는데, 딸만 혼자 있어 큰일이다. 긴급 지원이든 지자체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영주시 관계자는 “이번 폭우 관련 종합대책지원반을 꾸려, 피해 입은 시민들에게 지원 가능한 부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날 풍기읍 삼가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집에 있던 원모(58)씨도 토사에 묻혔다가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됐다. 장마전선 영향으로 전국에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경북 영주시에서만 산사태로 집이 매몰, 4명이 숨졌다. 장수면에서는 집에 있던 80대 노부부가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에 매몰, 사망했다.
영주=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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