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아들 줄 모르는 '귀칼' 신드롬, 그 인기 비결은?
[김성호 기자]
▲ <귀멸의 칼날: 남매의 연> 포스터 |
ⓒ BoXoo 엔터테인먼트 |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만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 <귀멸의 칼날>이다. 전 세계 1억5000만 부가 넘게 팔려 일본 만화의 전성시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이 만화엔 여러 가지 특별함이 깃들어 있다.
고토케 코요하루란 필명으로 작업할 뿐 성별도 외모도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신비함이며, 흥행에 이르면 어떻게든 이야기를 질질 늘여가는 여타 작품과 달리 전개를 손상시키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이어가는 강단은 이 만화가 거둔 엄청난 성취의 비결로써 손꼽힌다. 그뿐인가. '만화를 넘어 문학에 비견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잘 쓰인 대사들 또한 이 만화가 가진 특별한 장점이다.
▲ <귀멸의 칼날: 남매의 연> 스틸컷 |
ⓒ BoXoo 엔터테인먼트 |
폭발적 인기 구가하는 애니메이션
이 같은 인기 속에 애니메이션 제작이 이뤄지지 않을 리 없다. 연재 초창기부터 논의된 애니메이션 작업은 2018년 제작돼 이듬해 방영에 이르렀고, 예견된 성공을 거두었다. <귀멸의 칼날> 1기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일본 방영 꼭 나흘 뒤 한국에서도 방영된 이 작품은 작화며 전개, 음악, 원작에 충실한 작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훌륭하단 평가를 받았다. 20분이 조금 넘는 짧은 분량으로 모두 26화가 제작되었는데, 가히 세계 제일이라 해도 좋을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역량이 그대로 녹아든 작품으로 보아도 좋겠다.
기본적으로는 작품이 연재된 만화잡지 '소년 점프' 특유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평가다. 동료들과 협력하고 불굴의 노력을 경주한 뒤 마침내 역경을 딛고 승리하기까지의 드라마가 기본적인 얼개가 된다는 뜻이다.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디즈니의 이야기보다 다소 어른스럽고 협동과 의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선 동양적인 특색도 찾아볼 수 있다.
좀비 연상케 하는 혈귀와 일본적 분위기의 만남
이야기는 탄지로라는 한 소년이 겪은 비극으로부터 출발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어머니 슬하에서 여러 동생들과 함께 살며 소소한 행복을 즐기던 탄지로였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읍내에서 숯을 팔러 홀로 길을 떠난 뒤 돌아오니 온 가족이 살해돼 있다. 온통 피냄새로 가득한 현장에서 오로지 여동생만이 온기가 있는 걸 확인하고 탄지로는 동생을 등에 엎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동생은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고, 어딘지 산 사람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미 혈귀가 되어 있는 것이다.
혈귀는 <귀멸의 칼날>의 설정으로,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요괴다. 좀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지만 다른 혈귀로의 감염이 쉽게 이뤄지진 않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탄지로가 혈귀가 된 동생을 들춰 엎고 혈귀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1기는 원작 만화 53화까지의 이야기로, 혈귀를 쫓아 박멸하는 귀멸대라는 집단에 가입하여 성장하는 과정이 중심이 된다. <저스티스 리그> 식으로 표현하자면 '탄지로 비긴즈' 정도가 되겠다.
▲ 영화 <귀멸의 칼날: 남매의 연> 스틸컷 |
ⓒ BoXoo 엔터테인먼트 |
일본 애니메이션이 거둔 성취, 한국은?
모두 모으면 장편 영화 서너 편 분량일 이 이야기를 보다보면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 거둔 성취가 놀랍게 느껴진다. 그저 일본의 이야기에 갇히지 않고 일본의 전통에 더해 세계 곳곳의 재료를 가져다 독자적인 한 편의 이야기를 빚어낸 솜씨 또한 대단하다. 그렇게 태어난 콘텐츠가 애니가 되고 이야기를 증폭시킬 수 있는 음악이며 영화적 장치와 결합하여 더 많은 수용자가 있는 곳으로 뻗어나간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테즈카 오사무와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에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거듭 걸출한 작가를 갖고야 말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산업규모면에서 아직 애니메이션 시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드라마와 웹툰 등 콘텐츠 산업에서 약진하고 있는 한국에도 <귀멸의 칼날>이 거둔 성공은 눈여겨볼만 하다. 성취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콘텐츠 그 자체, 기존의 만화를 뛰어넘는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소위 K-콘텐츠의 부흥 또한 한국 사회의 번영으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한 이들이 내어놓는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직은 조금 부실하단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한국의 만화와 웹툰 가운데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 문학적인 대사가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될 날이 그리 멀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귀멸의 칼날> 속 대사들 가운데는 오랜 노력으로부터 얻어진 통찰과 그를 표현하는 솜씨가 묻은 것이 적지 않다. 결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 이 같은 성취로부터 마땅한 결과를 쟁취해낸 이 작품의 존재는 오늘의 만화시장에 그 가치를 알아보는 독자며 시청자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더 많은 공력이 들어간 더 좋은 작품이 마침내 마땅한 대접을 받으리라는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새로움을 내어놓는 작가라면 불타오를 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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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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