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콜라값 위협하는 수단 내전…물가폭등과 전쟁의 상관관계
알렉산더 정복전쟁에서 탄생한 초인플레
우크라 전쟁·지구온난화 겹치며 점차 심화
코카콜라 등 탄산음료의 주요 재료 중 하나인 '아라비아검(Gum arabic)'이 수단 내전 장기화로 공급차질이 심화하면서 전 세계 음료업체들이 비상이 걸렸습니다. 연중 가장 수요가 높은 여름철에 탄산음료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나오기 때문인데요. 가뜩이나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물가 급등 여파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한층 악화할 전망입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전 세계 곡물가가 치솟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 차단으로 기름값까지 폭등하면서 극빈국들의 기아 현상은 더욱 극심해지는데요. 특히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결국 전쟁이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고 물류 유통로가 다시 안전성을 확보해야 진정되는 만큼 뾰족한 돌파구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제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현상도 고대부터 전쟁에서 처음 비롯됐다고 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인과관계처럼 따라다닌 전쟁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뉴스부터 살펴보죠. 11일(현지시간) 중동 현지 매체인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 4월 재개된 아프리카 수단 내전이 3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현지 아라비아검 생산과 유통에 큰 차질이 발생했습니다. 아라비아검이란 중동의 아카시아에서 추출되는 진액을 뜻합니다. 특별한 냄새나 맛은 없으면서도 설탕에 섞으면 훌륭한 유화제로 작용하기 때문에 음료, 아이스크림 제조에 많이 쓰이는 중요한 재료인데요.
수단 현지의 주요 생산지인 쿠르두판과 다르푸르 지역에서 정부군과 반군간 전투가 이어져 수확이 불가능해졌고, 이를 항구까지 운반하던 차량들도 포탄에 맞거나 화물을 약탈당하는 피해가 커지면서 유통로가 아예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현지에서는 아라비아검 거래 자체가 자취를 감춰버려 각 마을에서 보유한 물량들의 판로가 막히면서 가격까지 폭락하는 상황입니다. AFP통신에 따르면 현지에서 지난달 아라비아검 1톤(t)당 가격은 32만수단파운드(약 69만원)에서 11만9000수단파운드(약 25만원)까지 하락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반대로 여름철 수요에 대비해 아라비아검을 대량 매입하려 하는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물량을 구하지 못하게 되면서 비상이 걸렸죠. 알자지라는 "글로벌 음료 제조업체들이 현재 3∼6개월 분량의 아라비아검을 비축하고 있다"며 "아직은 제품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비축분이 소진되기 시작하면 탄산음료 품귀 현상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 수급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탄산음료 가격까지 폭등할 경우, 전 세계 경제에 큰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History)1 : 알렉산더 정복 전쟁으로 사상 처음 시작된 '초인플레이션'이처럼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고대부터 계속 이어져 왔는데요. 역사 기록상 최초의 초인플레이션으로 기록된 것은 흔히 알렉산더 대왕이라 부르는 마케도니아 국왕, 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 때 일이라고 합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의 피터 테민(Peter temin) 교수는 2002년 발표한 '고대 바빌론의 가격행태(Price Behavior in Ancient Babylon)'라는 논문에서 기원전 464년부터 서기 72년까지 당시 중동지역 중심 도시인 바빌론에서 발견된 점토판의 물가 기록들을 토대로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3세의 사망 전후 20년간 세계사 최초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었다고 주장했는데요.
그 기간 바빌론의 주요 식량 작물인 밀 가격이 20년간 10배 이상 오르내리며 심각한 가격급등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테민 교수는 이러한 밀 가격 급등의 원인이 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르시아 정복 전쟁과 엄청난 양의 귀금속 약탈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죠.
기원전 334년부터 10년간 이어진 페르시아 원정을 통해 알렉산드로스 3세는 페르시아 제국이 보유했던 막대한 금과 은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 왕궁에서만 무려 3000톤(t)이 넘는 금을 약탈했는데요. 알렉산드로스 3세는 페르시아제국에서 약탈한 귀금속들을 나귀 1만5000여마리를 동원해 육로로 마케도니아로 계속 이동시켰습니다. 바빌론은 이 수송로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였죠.
그의 정복 전쟁 전후 이 귀금속들은 금화나 은화로 바뀌어 유통되기 시작했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게 됩니다. 전쟁으로 식량작물을 재배할 농경지는 대부분 파괴됐고, 페르시아제국 왕궁과 신전에 보관됐던 귀금속들이 시중에 풀리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셈이죠. 마케도니아란 국가 자체도 화폐 사용량이 미비하고 경제학의 기본 개념조차 없는 주로 약탈경제에 의존하던 국가였던 만큼, 이러한 대규모 귀금속 약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진 못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생산량이 미약하고 화폐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고대국가에서는 전쟁이 곧바로 인플레이션과 연결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지만, 이후 이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나 정책적 검토가 이뤄지진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남게 됐는데요. 현대국가로 넘어오면서 경제문제가 국가의 존속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연구가 활발해지게 됐습니다.
◆역사(History)2 : 나치독일을 출현시킨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살인적 인플레근대 이후로 넘어와 발생한 가장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한 것은 1차대전 직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발생한 초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1차대전 패망 직후 1921년부터 1924년 말까지 이어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뜻하는데요.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1921년부터 1320억마르크를 금으로 내야 하는, 막대한 규모의 전쟁배상금을 갚아나가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독일 정부의 1년 세입이 60억 마르크 수준이었으니 22년간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갚을 수 있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패전으로 이미 경제가 파탄된 상황에서 1차 배상금이 지불되자마자 독일 경제는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는데요. 독일 정부는 여기에 대응하고자 막대한 양의 화폐를 찍어내기 시작했고, 이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1921년 6월 1달러당 90마르크 수준에 머물던 환율이 다음 해인 1922년 초에 1달러당 7400마르크까지 급락합니다. 1923년 11월에 1달러는 4조2105억마르크라는 천문학적 단위까지 떨어지죠. 전쟁 직후 5마르크 수준이던 베를린의 식빵 한덩어리 가격은 2000억 마르크까지 치솟습니다. 화폐경제가 완전히 마비된 것이죠.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합니다. 독일 정부는 경제가 완전히 무너져 배상금 지불능력을 상실했다고 선언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를 파견해 독일 서부 주요 공업지대인 루르를 점령하면서 독일 국민의 분노가 더욱 커지게 됐죠.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과거 1870년 보불전쟁 당시 독일이 프랑스에 50억프랑의 전쟁배상금을 요구하고, 알사스-로렌 지역을 점령했던 것을 똑같이 갚아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치 정권의 등장과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지게 되죠.
사실 1920년대 초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초인플레이션은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아니었다는 평가입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침략을 받고 있던 중국에서는 5000만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하는 끔찍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졌지만, 체계적인 기록이나 정책검토가 이뤄지진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진 못했죠.
◆시사점(Implication) : 늘어나는 분쟁지역, 지구온난화에 가팔라지는 물가 상승세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전이 늘어나고 중동지역의 분쟁도 심화하는 등 분쟁지역이 많아지면서 앞으로도 인플레이션은 한동안 세계 경제를 주름지게 할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지구온난화까지 겹쳐 주요 곡창지대의 가뭄, 홍수 피해까지 가중되면서 서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우려되는데요. 어느 정도 물가가 잡혀가고 있다는 미국에서조차 상당히 많은 사람이 물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NBC에 따르면 미국 심리학협회의 조사 결과 미국인 83% 이상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는다고 응답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주요 분쟁지역의 전쟁들이 가급적 신속히 마무리돼 공급망이 되살아나야 인플레이션 위협이 좀 상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디 모든 분쟁지역에서 하루속히 휴전이 이뤄지길 바라봅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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