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침공시 핵전쟁" 경고한 '푸틴 입'…오바마와 햄버거 먹던 사이[후후월드]

박소영 2023. 7.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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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서방 탓에 3차 세계대전이 가까워지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지난 3월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메드베데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향해 협박성 발언을 가장 많이 하는 러시아 정치인이다. AP=연합뉴스

요즘 ‘푸틴의 입’으로 불리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58)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지난 11일 미국 등 서방을 향해 이렇게 비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리투아니아 빌뉴스 정상회의에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전차·장갑차의 추가 제공을 약속하는 등 군사 지원 확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의 발언은 나토가 러시아를 자극하면 서방과 러시아가 맞붙는 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된다.

메드베데프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향해 가시 돋친 발언을 쏟아내며 러시아에서 가장 큰 강경한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 채널을 개설한 후, 하루 최소 1개씩 강경한 발언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전쟁 이전까지 금기시해온 핵 관련 위협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크림반도 침공하면, 지구 전체 종말인 '최후 심판의 날(핵전쟁)'이 올 것", "핵보유국(러시아)이 재래식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핵전쟁이 촉발될 것", "더 많은 무기 주면 핵으로 인한 종말 시나리오 가능성 커진다" 등 표현도 다채롭다.

우리나라를 겨냥한 발언도 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보도가 나자 그는 "한국이 대가를 치를 것", "한국 국민이 북한에서 최신 러시아산 무기를 보게 되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고 위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치매에 걸린 이상한 할아버지"라고 불렀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향해 "미친 나치 마약 중독자 무리"라고 했다. 메드베데프의 과격 발언에 환호한 사람들이 그의 채널에 몰려들면서 현재 팔로어가 111만명에 달한다.


오바마와 햄버거 먹던 '친서방' 인사

메드베데프의 대통령 시절(2008~2012년)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변신에 깜짝 놀라고 있다. AFP통신·가디언·포린폴리시 등 서방 매체들은 한때 러시아의 개방에 앞장서던 온건파였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010년 6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드베데프는 지난 2008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3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푸틴이 잠시 총리직으로 물러나면서 메드베데프를 후임자로 찍었다. 대통령이 된 그는 경제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힘썼다. 2010년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햄버거 오찬’을 가져 화제가 됐다.

당시 그는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흥미로운 장소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며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메드베데프는 사려 깊고 적극적인 사람"이라며 "21세기 러시아를 훌륭하게 이끌고 있다"고 칭찬했다. 두 정상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양국은 2010년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맺어 전략핵무기 수를 감축하기로 했고, 2012년 러시아가 미국의 지지를 얻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지난 2010년 6월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애플 CEO 스티브 잡스를 만나 아이폰4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AFP에 따르면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서방 문화를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미국 출신 린킨 파크, 영국 출신 딥퍼플 등을 좋아한 록 음악 팬이다. 얼리어답터인 그는 애플 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를 존경했다. 방미했을 때 실리콘밸리에 들러 잡스를 만나 아이폰4를 선물받았다. SNS 사용에도 적극적이라 트위터 본사도 방문해 인증샷을 올렸다.

국민과 소통 공간을 넓히면서 독립 언론에도 관심을 보였다. 러시아 반정부 매체인 노바야가제타, TV채널 도즈디(비) 등과 인터뷰했다. 명문 레닌그라드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교수가 돼 민법 등을 가르쳤던 그는 부패한 관료 조직과 열악한 인권 상황을 혁신하기 위해 사법개혁도 강조했다.


푸틴 신뢰 잃어 정치 기반 약해져

이런 그의 모습은 ‘차르’로 불리는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과 대립하며 서구 문화를 배척하고, 독립 언론은 폐쇄시키고 있다. 그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 등 야권 인사들은 가차 없이 체포했다. 또 10년 넘게 스마트폰도 쓰지 않고 인터넷 문외한으로 알려졌다.

점점 푸틴과 차별화를 두는 메드베데프의 행보에 갈등설이 불거지고, 메드베데프의 대통령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왔다.

메드베데프는 그러나 끝내 푸틴이란 큰 산을 넘지 못했다. 2011년 대통령과 총리직을 맞바꾸는 푸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메드베데프에 대한 신뢰를 잃은 푸틴은 이후 메드베데프의 측근들을 내쳤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왼쪽 두번째)가 지난 2011년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에서 메드베데프의 연설 후 대화하고 있다. 메드베데프는 당시 대통령이었지만 푸틴 총리에게 격식을 차리며 낮은 자세를 보였다. AP=연합뉴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메드베데프는 거친 야생마로 살아온 푸틴을 당해내기 힘들었다. 메드베데프는 구소련 시절이었던 1965년 9월 14일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산층 가정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 때까지 친구와 잘 놀지도 않고 공부에 매진한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반면 메드베데프보다 열세살이 많은 푸틴은 가난한 시절을 겪었다. 그가 자랐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동주택에선 쥐가 나왔다. 1991년 소련 붕괴 무렵엔 택시 운전으로 돈을 벌었다고 고백했다. 푸틴도 레닌그라드대 법대를 졸업했는데, 메드베데프가 학계에 남은 것과 달리 그는 국가보안위원회(KGB)에 들어가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

둘은 1991년 상트페데르부르크 시청에서 처음 만났다. KGB를 그만둔 푸틴은 시청 산하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고, 메드베데프는 아나톨리 소브차크라 시장의 법률 보좌관 역할을 맡다가 대외관계위원회에 들어갔다. 푸틴은 근면하고 차분한 메드베데프를 눈여겨보고 그의 정치 스승이 됐다.

이후 푸틴이 2000년 대통령이 되면서 메드베데프는 보좌관, 비서실장 등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필했다. 그래서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세간에선 그를 ‘푸틴의 꼭두각시’, ‘바지사장’ 등으로 불렀다. 러시아 국민도 모범생 이미지의 메드베데프보다는 남성미를 드러내는 마초 성향의 푸틴을 좋아했다.


살아남기 위해 초강경파 변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가운데)이 지난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군사 퍼레이드 행사에 참석해 지켜보고 있다. 항상 푸틴 옆에 서서 지켜봤지만, 지난 2020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푸틴에게서 멀어졌다. AFP=연합뉴스

메드베데프는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온 후 푸틴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지난 2020년에는 푸틴의 뜻으로 총리직마저 내놨다.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맡았지만 위로 차원에서 준 자리였다고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전했다.

이처럼 러시아 수뇌부에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강경 노선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벤 노블 러시아 정치학과 교수는 "메드베데프는 약해진 정치적 기반을 보완하기 위한 전략으로 거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기존의 강경파보다 훨씬 더 강경한 모습을 보여줘 차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노블 교수는 "메드베데프는 항상 푸틴 등 러시아 고위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상황에 따라 계속 강경파로 남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정책분석센터의 에드워드 루카스 선임고문은 "러시아 수뇌부에서 진보적이기를 원하면 그는 자유주의자가 될 것이고, 강경파가 되기를 원하면 강경파가 될 것"이라며 "만약 푸틴이 우크라이나와 평화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한다면, 메드베데프는 바로 돌아서서 '계속 원했던 아주 훌륭한 결과'라며 기뻐하는 발언을 할 것"이라고 했다.

메드베데프는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한다. 그는 대통령에서 물러난 2012년 11월 AFP에 "나는 그 강에서 한 번 수영했고, 그 강은 두 번도 수영할 수 있는 강이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가 강경 노선을 걷는다고 해도 정치기반이 약하고 2인자 이미지가 강해 재집권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정치 관련 책을 10여권 저술한 J.L. 블랙 작가는 "메드베데프의 강경파 전략은 푸틴이 숙청당하거나 또다른 우파가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 현재의 자기 자리라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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