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나온 北 총정치국장…제재당한 정경택

장희준 2023. 7. 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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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정경택 총정치국장 등 4명 독자제재
사상 감시하는 국가보위상에서 '초고속 승진'
박광호 前선전부장 제재…"고위직 겨냥 경고"

인민군 총정치국장. 북녘땅에 불시착한 재벌가의 딸과 인민군 장교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다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 잘 알려진 직책이다. 드라마 속 리정혁 대위(배우 현빈)의 아버지가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듯 실제 북한 군부 내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 정부는 북한의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북한 전·현직 고위 관리들을 겨냥해 독자제재를 단행했다.

16일 외교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4일 정경택 총정치국장과 박광호 전 노동당 선전선동부장 등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관여한 관리 4명, 관련 기관 3곳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0월 첫 제재를 시작으로 10차례에 걸쳐 개인 49명, 기관 50곳을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지난 정부에선 찾아볼 수 없던 조치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장인물 중 하나인 리충렬 북한 총정치국장. [이미지출처=tvN]

정경택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다. 출신 지역은 자강도, 나이는 50~60대 안팎으로 추정된다는 것 정도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하며 초고속으로 총정치국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정경택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7년 10월 당 전원회의에서 '국가보위상'에 임명됐을 때부터다. 2016년 5월 당대회 당시만 해도 중앙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정경택이 국가보위상에 임명되는 동시에 중앙위원회 위원을 건너뛰고 그보다 높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됐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 정치 서열 : 당 중앙위원회 → 당 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 → 위원 → 상무위원)

올해 2월 북한 건군절 75주년 기념연회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딸 주애. 김주애 뒤편에 선 4명 가운데 빨간색 원 안의 인물이 정경택 총정치국장이다.

정치국은 북한 체제를 이끌어 가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설치되는 사실상의 최고 권력기구다. 위원은 이사 격에 해당하는 임원 직책으로, 그 뒤를 잇는 후보위원에 정경택이 이름을 올린 것이다. 당시 함께 보선된 인물이 김정은의 '하나뿐인 여동생' 김여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경택의 파격 승진을 가늠할 수 있다.

아울러 당시 정경택에게 주어진 국가보위상이라는 보직은 최고지도자를 제외한 모든 간부와 주민들의 사상 동향을 감시하는 방첩기관의 수장이다. 결은 다르지만, 우리 국가정보원장과 비슷한 직책이다. 그가 지휘한 국가보위성의 임무는 반체제 인물 색출과 정치범 수용소 관리, 정보 공작 등으로 김씨 일가의 세습을 보위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경택은 '실세'로 떠오른 지 5년 만인 지난해 5월 당 전원회의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승진했다. 김정은 체제 이후 숙청과 복귀가 반복됐던 '회전문 인사'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특히 반체제 인사를 잡아내는 치안 담당자가 총정치국장까지 단번에 올라선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군부 내 기강해이가 인선의 배경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왼쪽부터) 정경택 인민군 총정치국장, 박광호 전 선전선동부장

박광호는 정경택이 국가보위상에 오른 2017년 10월 선전선동부장에 임명됐던 인물이다. 그 역시 별다른 이력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2012년 봄 태양절(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기념하는 훈장을 받았다는 점에서 당국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2018년 3월에는 김정은이 은밀하게 중국을 찾았을 때 곁에서 수행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박광호가 이끈 선전선동부는 조직지도부와 함께 북한 체제를 보위하는 노동당의 양대 축을 형성한다. 주민들의 사상 교육을 중심으로 당의 영도적 역할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김여정의 현 직책이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다. 김정일이 대학을 졸업한 뒤 당 조직 생활을 시작한 곳이 선전선동부, 이곳에서 과장·부부장·부장을 거쳤다는 점에서 조직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박광호는 4년 전부터 자취를 감췄다. 2019년 2월 돌연 선전선동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정치국 위원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다만 지난해 4월 방영된 '김정은 숭배'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점으로 미뤄볼 때 숙청보다는 은퇴에 무게가 실린다. 1940년대 후반 태어난 것으로 파악된 그는 7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이다.

"北 고위직도 제재 가한다는 분명한 경고"

국무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이번 독자제재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13일(현지시간)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개회의가 또다시 '빈손'으로 끝난 직후 발표됐다.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국은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고 공세에 나섰지만, 중국·러시아는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을 거론하며 역내 안보 불안의 원인을 미국 탓으로 돌렸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워싱턴 선언'을 겨냥해 "(북한에 대한) 핵 결전의 플랫폼"이라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북한의 손꼽히는 실세와 이미 은퇴한 인물에 대한 제재 조치는 실효성 측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응하는 방법은 확장억제 등 군사적 조치도 있지만, 경제적 압박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지난 정부 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북한이 계속해서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한다면 고위직에 대해서도 망설이지 않고 분명한 제재를 가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왔다"며 "북한이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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