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나훈아 임영웅 여기 다 있지" 60·70 홀린 'USB 트로트'
주머니에 넣거나 허리에 차고 다 같이 들어
나훈아, 신곡 '새벽' USB 앨범으로 발매
"나훈아도 듣고, 임영웅이도 듣고, 여기에 다 있지…기자 아저씨도 한번 들어봐"
12일 서울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70대 노인은 "여기 가수들 다 들어가 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자신의 '효도 라디오'를 들어 보이며 발길을 재촉했다. 그는 "이 라디오는 내가 요 근처에서 샀다. 노래도 듣고 산책도 하고, 즐겁다"라고 덧붙였다.
노인들 사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효도 라디오'는 건전지 1~2개로 작동하며, 크기는 보통 성인 손바닥만 하다. 휴대가 간편해 주머니에 넣거나, 허리에 차고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여기에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라디오에 꽂으면 바로 원하는 트로트를 들을 수 있다. 1980년대 이동식 음악 재생 장치였던 카세트가 USB를 꽂으면 바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재생 장치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USB를 통해 트로트를 듣기 때문에 일부 노인들 사이에서는 'USB 트로트'로도 불린다.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고, 음악 앱(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기가 어려운 60·70세대가 많이 이용한다. 가격대는 라디오 기능과 USB 용량에 따라 1만원대부터 3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주 고객은 역시 노인들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10일 컴백한 '트로트 황제' 나훈아 씨는 자신의 신곡 '새벽' 앨범을 CD와 함께 이번에는 USB에 담아 발매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나훈아 USB'를 효도 라디오에 꽂으면 바로 신곡을 들을 수 있는 셈이다.
노인들 반응은 긍정적이다. 낙원상가 인근에서 만난 박창규(76) 씨는 "(효도 라디오를) 자식이나 손주들이 사줄 때도 있고, 용돈 모아서 내가 살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마 다들 이런 것 하나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며 "그냥 온종일 틀어놓고 라디오도 듣고 노래도 듣고 그런다"라고 덧붙였다. 나훈아 신곡이 USB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좋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80대 노인 김영해 씨 역시 "그 틀어놓으면 자기만 듣는 게 아니라, 다 들을 수 있으니까 분위기도 좋다"며 "나훈아 남진도 많이 듣고, 장윤정도 듣고, 신나는 노래는 다 듣는다"고 말했다.
음악 앱 이용이 어려운 노인들 사이에서 인기지만, 효도 라디오에는 저작권 침해 논란이라는 어두운 면도 있다. USB에 담긴 트로트가 불법 복제 음원일 수 있고, 아예 효도 라디오에 트로트를 넣어 판매하는 경우, 이 역시 저작권 침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트로트 업계에서는 효도 라디오로 인한 불법 음원 복제로 음반 산업 타격이 심하다며 원성을 쏟아낸 바 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효도 라디오 판매상들을 단속한 바 있다. 당시 불법 복제된 음악이 담긴 메모리칩만 2만여점을 압수했다.
종로 인근에서 만난 판매상은 "예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는 사용료 징수 규정에 따라 USB 음악저작물 사용료를 징수한다. USB에 음악을 담아 판매하는 제작사가 USB에 담긴 곡 수, USB 개수 등을 계산해 협회에 지불한다.
음저협 관계자는 "USB를 통해 앨범을 발매하던 초기에는 불법 유통 우려나, 시장 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현재는 관련 규정에 따라 음반 출시와 승인이 진행되며, 시장 질서가 잘 잡혔다고 판단하고 있다. USB 매체 이용도 증가하고 있기에 다양한 형태의 징수와 함께 창작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60·70 세대에서 효도 라디오를 많이 이용하는 것에 대해, 그들의 소비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흥진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시니어산업학과 교수는 "제품에는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목적 가치가 있다. 무조건 복잡하다고 좋은 게 아니고 반대로 꼭 시니어라고 단순한 것만 찾지도 않는다. 용도나 사용 가치에 따라 다 다르다"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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