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도 구형되면 싸게 파는데…홀로 이 법칙 거스르는 '칩'

이희권 2023. 7.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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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신주시 TSMC 본사 앞에 걸린 대만 국기가 이 회사 사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형 그랜저 출시 직전, 구형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그랜저는 수백만원씩 할인 판매에 들어간다. 갤럭시S23 시리즈가 출시되면 구형 모델인 갤럭시S22의 판매 가격이 급락한다. 당연한 시장의 이치다. 그런데 최첨단의 극치로 불리는 반도체, 그 중에서도 머리카락 굵기 10만 분의 1 수준을 다투는 7나노(㎚·10억 분의 1m) 공정 이하 칩만큼은 이 같은 법칙을 홀로 거스르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 대만 TSMC의 칩 제작 가격이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는 내년부터 생산 가격을 5% 안팎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인상 소식이다.

이번 가격 인상은 난이도 높은 선단 공정에 한해 적용될 전망이다. 앞서 TSMC는 지난 4월에도 가격을 이미 10% 이상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도 파운드리 서비스 평균 가격을 전년보다 6% 올린다는 계획을 고객사에 미리 공지했다.

반도체 웨이퍼의 모습. 뉴스1


반도체 제품은 공정이 미세할수록 첨단이고 가격도 비싸진다. 뒤집어 말하면, 시간이 지나 최신 공정이 등장하고 기존 공정이 레거시(구형) 공정이 되면 칩 제작 가격이 낮아진다. 차량용 반도체 등 굳이 최신 공정을 이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칩들이 레거시 공정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최근 7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에서는 이 같은 당연한 법칙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인포메이션네트워크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TSMC의 N2(2나노급) 공정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1개당 2만4570달러(약 3100만원) 수준으로 생산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올해 3나노 공정보다 25% 인상된 가격이다.

김주원 기자


문제는 최신 공정이 등장했음에도 앞선 공정의 생산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양산 6년차를 맞은 7나노 공정 생산가격의 경우 2020년 웨이퍼 1개당 1만720달러(약 1350만원)에 책정됐던 가격표는 2025년을 맞아도 여전히 9240달러(약 1170만원) 수준으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향후 수년간 파운드리 업계의 격전지로 꼽히는 3나노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양산에 돌입한 TSMC의 N3(3나노급) 라인의 경우 개당 1만9865달러(약 2510만원)를 받고 있지만 2025년에도 1만8445달러(약 2330만원)로 가격 하락은 사실상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조 과정이 극도로 정교하고 제작 단가가 비싼 최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떨이 세일’이란 없는 셈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이 가장 뜨거운 영역은 5나노 이하 첨단 미세공정 기술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TSMC가 3나노 양산에 성공한 가운데 미국의 인텔이 올해 말 3나노, 내년 2나노 양산 계획을 발표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주도하고 주요 대기업이 참여한 반도체 연합 라피더스는 오는 2027년 2나노 양산을 목표로 최근에야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일본 반도체기업 라피더스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7나노 이하의 공정에서는 칩 사용처가 대부분 모바일 프로세서와 그래픽반도체(GPU) 등으로 제한적이고 고객사 역시 대형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로 한정적이다. 업계에서는 애플과 엔비디아, 퀄컴 등 주요 팹리스 고객사들이 변함없이 TSMC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TSMC가 굳이 삼성을 의식해 서비스 가격을 무리해 낮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올해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0.1%, 삼성전자가 12.4%였다.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7나노 이하에서는 TSMC의 점유율이 90%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30년 이상의 업력을 갖춘 TSMC와 출범한 지 이제 7년을 맞은 삼성 파운드리를 비교하면 아직은 TSMC의 독주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초도 양산에 돌입한 가운데, 양산에 참여했던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주역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최근 2025년 2나노 공정 양산에 돌입한다고 밝혔지만 반도체 설계자산(IP) 확보와 수율, 첨단 패키징, 생산 능력 등 열세를 뒤집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삼성의 추격 시계가 올해와 내년이 아닌, 2025년 2나노 공정 싸움에 맞춰져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는 우선 반도체 생태계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장기적으로 함께 추격에 나설 ‘우군’을 만드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오는 20일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TSMC는 엔비디아 등 고객사의 인공지능(AI) 칩 수주가 몰리며 이번에도 실적 추정치를 상회할 것이 유력하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결국 당분간은 TSMC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라면서 “삼성 역시 무리수를 두며 저가 수주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첨단 공정 수율과 패키징, 생산 물량, 서비스 전반에서 조급해할 것 없이 차근차근 원하는 시기가 올 때까지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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