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 무비] ⑩ 1%의 탐욕이 빚어낸 99%의 고통…'라스트 홈'(끝)

김동철 2023. 7.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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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영상이 문자를 압도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연합뉴스는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시대에 발맞춰 전북지역 현안과 사건·사고를 톺아보고 이를 영화, 문헌과 접목해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기사를 2주에 한 번씩 10차례에 걸쳐 소개했습니다. 이번 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라스트 홈' 스틸컷 [브리즈픽처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이 나라는 패배자들을 구해주지 않아. 오직 승자들을 위해 세워졌지. 승자의,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한 나라이니까."

2016년 개봉한 영화 '라스트 홈'(원제 99 HOMES·감독 라민 바흐러니)은 주택담보 대출금 연체로 단 2분 만에 집에서 내쫓기게 된 한 남자가 자기 가족을 쫓아낸 부동산 브로커와 손을 잡고 '악마의 거래'를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보금자리를 잃은 서민들의 실화를 담았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건축 일용직인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는 홀어머니, 아들과 함께 사는 평범한 가장이다.

연체 탓에 하루아침에 그가 나고 자란 집이 차입된다. 데니스는 은행에서 당장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해 연체했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법원은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부동산 브로커 릭 커버(마이클 섀넌)와 보안관들은 법원의 명령에 따라 데니스와 그의 가족을 퇴거 조치한다.

갈 곳 없는 데니스 가족은 싸구려 모텔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데니스는 일거리를 알아보지만, 주택시장의 불경기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영화 '라스트 홈' 포스터 [브리즈픽처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다 우연히 릭 커버의 일을 돕게 되고, 릭은 가족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은 데니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릭은 다른 사람의 집을 한 채씩 빼앗을 때마다 네가 살던 집에 한 발씩 가까워진다고 유혹한다. 도덕과 정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잠시 망설이던 데니스는 결국 릭의 손을 잡는다.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으로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되찾으려 한다.

데니스는 릭을 통해 금융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빼앗긴 자에서 뺏는 자로 변모한다.

릭은 연체자들을 집에서 내쫓는 일에 회의에 빠진 데니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미국은 패배자들을 구해주지 않아. 미국은 승자들을 위해 세워진 나라니까. 승자의,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한 나라야. 교회 다녀? 100명 중 한 명만 방주에 타는 거야. 나머지 99명은 가라앉는 거지. 난 가라앉지 않아."

승자독식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원제인 '99 HOMES'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패배자로 분류되는 99명이 어떻게 사는지를 극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거시적 경제 수치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노숙인 사례를 영화가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은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 덕분이다.

제작진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퇴거민들의 다양한 사연을 담았다.

실제 집을 빼앗긴 377명을 만나 수집한 데이터를 기본으로 스토리의 뼈대를 삼고, 실제 주택 퇴거를 집행하는 부동산 브로커, 집을 잃은 이들을 영화에 출연시켰다.

주인공인 앤드류 가필드는 노숙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노숙인 가족들이 사는 모여 사는 모텔촌에서 2주간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고 한다.

강준만 교수 저서 '부동산 약탈 국가' [촬영 : 김동철]

데니스의 상황은 현재 우리 시대 서민의 삶과 맞닿아 있다.

전북지역에서 집 한 채를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4년 가까이 모아야 가능하다고 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주거 실태 조사를 보면 2021년 기준 전북의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수(Price Income Ratio·PIR)'가 3.8배로 조사됐다.

이는 월급을 쓰지 않고 모두 모아서 집을 장만하는 데 3.8년이 걸렸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월 실수령액 300만원의 월급쟁이가 4년 가까이 모아야만 1억4천여만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서울의 PIR은 14.1배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전국 평균 PIR은 6.7배로 나타났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이렇게 비현실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을 '합법적 약탈'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2020년 8월 펴낸 '부동산 약탈 국가'에서 "내 집 마련해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 전세·월세가 뛰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뺏어가는 약탈보다 더 나쁜 약탈"이라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약탈의 피해자들이 '자기 탓'을 하는 것만큼은 그만두길 간곡히 호소했다. 분노해야 마땅한 일에 자기 못난 탓을 하는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으면 '약탈 체제'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약탈의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약탈을 중단하는 법은 없다. 탐욕스러운 부동산 업자 릭 역시 약탈을 멈추지 않는다.

그간 '이슈앤 무비'를 통해 '레이닝 스톤(영국)', '혼자 사는 사람들(한국)', '빌리 엘리어트(영국)', '아버지의 길(세르비아)', '풀타임(프랑스)' 등 각국의 영화를 통해 좁게는 전북, 넓게는 한국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이웃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런데도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영혼을 더럽힌 궁핍과 소외는 여전히 도처에 깔려 있다. 뾰족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삶이 투쟁이 되어버린 시대, 정답은 없지만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이어질 것이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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