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케타민 등 신종마약 극성…무직 청년들 ‘운반책’으로

강찬호 2023. 7. 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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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의 전쟁’ 나선 관세청 수사관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이 20명 이하인 나라에 부여되는 ‘마약청정국’ 지위를 2015년 상실했다. 지금은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좀비 거리’가 남의 일이 아니란 얘기가 나올 만큼 요주의 ‘마약 소비국’이 됐다. 지난해 마약투약자는 국민의 1%인 52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치료비용으로 연간 1조9000억원이 들어간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1~4월 단속된 마약사범은 5587명으로 전년 동기(4307명)보다 29.7%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적발될 마약사범 수는 역대 최다(1만2387명)였던 지난해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0~20대 마약사범이 2035명으로 36.4%에 달해 2017년 대비 4배 급증했다.

「 투약자 52만명, 10~20대 급증
수사인력·포상금 두 배로 늘려
코로나 풀리며 ‘여행객’ 경보령
검거 도중 부상당하는 일 많아

밀수 신고 포상금 최대 3억원

마약 단속의 최전선인 관세청은 지난 2월 2일 윤태식 청장(당시)이 직접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수사 인력을 47명에서 126명으로 증원하고, 수사 부서도 2개 과에서 3개 과로 확대했다. 밀수 신고 포상금도 최대 1억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올렸다. 지난 7년간 마약 밀수입 457건(4206억원)을 해결해 지난해 ‘올해의 우수 수사팀’에 선정된 권영규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1과 수사관으로부터 단속 상황을 들어봤다.

“2006년에는 1주에 한 건 적발하기도 힘들었고, 최종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요즘은 하루에 2건씩 적발될 만큼 마약 밀수가 급증했고 최종 목적지도 대개 국내다. 분량이 1㎏을 넘어가는 대형 마약이 한 달에 1건 이상 나온다. 필로폰과 대마에 이어 ‘엑스터시’로 불리는 MDMA(메틸렌디옥시메탐페타민)와 케타민 등 신종 마약이 급증하고 있다. MDMA와 케타민을 같이 흡입하면 ‘사이키델릭’이라는, 극단적인 쾌감이 엄습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합성 대마를 많이 한다. ‘야바’라는 마약도 유행이다. 필로폰에 카페인을 섞은 소형 알약인데 먹으면 피곤이 가신다.”

국제우편·특송화물이 메인 루트

지난 한해 적발된 마약의 유통 경로는 국제우편(361㎏)과 특송화물(226㎏) 및 여행자(36㎏) 순이다. 권 수사관은 “코로나 입국 규제가 해제되며 캐리어나 속옷에 마약을 숨겨 들여오는 여행자가 급증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배와 허벅지에 필로폰을 두르고 테이프로 감은 뒤 두꺼운 옷차림으로 입국한 말레이시아인을 검거했다. “겉으로 봐선 모른다. 하지만 항공권 구매 일자를 보니 다급하게 예약한 사람이더라. 이런 단서를 통해 적발해낸다”

국제우편과 특송화물에 은닉된 마약은 판독경력관 81명이 X-레이 판별을 통해 걸러낸다. 2023년 4월 남아공발 인천행 항공편에서 내린 승객의 가방이 X-레이 판독에 걸렸다. 경력관은 즉시 현장의 단속반에 알렸고, 단속반원은 짐 주인을 검사대로 인도했다. 여기서 다시 X-레이 검사를 하니 마약 음영이 뚜렷했다. 단속반이 가방을 쨌다. 검정 테이프로 감싼 필로폰 8㎏이 쏟아져 나왔다.

이유식으로 둔갑한 신종마약

권 수사관의 말이다. “일자리 없이 노는 청년들이 1회당 수백만원씩 받고 태국 등지에서 마약을 운반해온다. SNS가 발달해 운반책 모집이 식은 죽 먹기다. 내가 적발한 케이스는 올 초 2~3개월 동안 태국에 6~7번이나 드나든 청년들이었다. 1명당 운반한 분량이 2㎏이 넘더라.”

2021년, 미국 마약 당국은 케타민이 든 ‘이유식’이 미국에서 부산으로 들어갔다는 정보를 관세청에 알려줬다. 추적에 나선 권 수사관은 미국 마약 업계에서 ‘여왕벌’로 불리는 한인 여성이 공급책임을 알아냈다. ‘여왕벌’은 경남 김해에 사는 이모에게 국제탁송으로 ‘이유식’ 박스를 보낸 뒤 용돈을 주고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택배 센터에 박스를 맡겨 달라”고 했다.

여왕벌 이모의 뒤를 따라붙은 수사팀은 이모가 고속버스 터미널 Y택배 센터에 박스를 맡기는 모습을 확인하고 잠복에 들어갔다. 3시간 뒤 모자를 눌러 쓴 20대 남성이 센터로 들어섰다. 박스를 넘겨받고 터미널을 나서는 남성을 수사팀이 덮쳤다.

박스에선 ‘이유식’으로 위장된 액상 케타민 7.9㎏이 쏟아졌다. 수사팀은 남성을 추궁해 ‘여왕벌’의 인적 정보를 확보하고, 인터폴에 적색 수배했다. “액상 케타민은 겉보기엔 물과 똑같다. 그러나 병뚜껑을 열고 햇볕에 쬐면 물은 증발하고 가루만 가라앉는다. 이게 바로 케타민이다.”

인천 연수구엔 러시아나 중 앙아시아 출신 외국인 밀집 거주 구역이 있다. 이 구역엔 대마가 자주 반입된다. 권 수사관 팀은 지난해 연수구행 국제우편물에 대마가 든 사실을 포착, 검거 작전에 돌입했다. 우편물의 종착지는 연수구의 한 단독주택. 우편집배원의 협조를 얻어 문제의 집에 “국제소포가 왔다”고 전화를 거니 “근처 ○○편의점에 맡겨 달라”고 대답했다.

러시아 UFC 선수 출신 마약범

수사팀은 편의점 앞에 잠복했다. 서너 시간 뒤 차를 타고 나타난 외국인이 물건을 넘겨받는 순간 덮쳤다. 외국인은 거세게 저항했다. “남자 수사관 4명이 덮쳤는데도 워낙 힘이 좋아 수갑 채우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한 수사관은 입이 찢어지고, 넘어지기도 했다. 알고 보니 러시아 출신 UFC 선수였더라.”

지난해 2월 관세청이 라오스발 대마초 9㎏과 케타민 2㎏을 적발한 사건도 국제우편을 추적한 결과다. 우편물의 목적지 인근에 잠복한 수사팀의 인기척을 느낀 피의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으로 도주했다. 수사관들은 골목 주변에 주차한 오토바이마다 배기구에 손을 대봤다. 한 오토바이 배기구가 뜨끈뜨끈했다. 방금 범인이 탔다 내린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 앞의 집을 급습한 수사팀은 피의자 체포에 성공했다.

일반 시민들의 도움 결정적

2021년 11월 관세청 수사팀은 태국발 국제우편으로 반입된 필로폰 9g을 경남 양산으로 배달하던 태국인을 추적했다. 낌새를 눈치챈 태국인은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수로에 들어가 숨었다. 수사팀은 인근에서 시합하던 축구회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동네 지리에 훤한 회원들은 수로를 이 잡듯 뒤진 끝에 피의자를 붙잡았다.

지난해 6월 미국에서 국제우편으로 들어온 대마 540g이 무인택배함에 들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관세청 수사팀은 택배함 주변에 잠복했다. 몇 시간 뒤 한 남성이 택배함에 접근해 물건을 꺼냈다. 그를 덮친 수사팀은 그가 마약사범이 아니라 퀵서비스 배달기사임을 알고 협조를 부탁했다.

배달기사는 자신에게 물건 배달을 주문한 피의자와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피의자가 지정한 장소로 이동했다. 기사를 따라간 수사팀은 몸을 숨기기 위해 근처 오토바이 수리점에 들어갔다. 점주의 협조 아래 수리점 사무실에 은신한 수사팀은 창문 너머로 기사의 동정을 살피며 잠복했다. 얼마 뒤 피의자가 나타나 배달기사로부터 물건을 넘겨받았다. 그 순간 수사팀은 그를 덮쳐 검거했다. '

■ “킁킁…” 1초 만에 마약 찾아내는 탐지견 39마리

「 마약과의 전쟁엔 관세청이 보유한 탐지견 39마리의 활약도 상당하다. 관세청은 2019년~2023년 4월 마약류 3258건을 적발했는데 탐지견이 이 중 558건(17.1%)을 잡아냈다.

탐지견은 사냥개로 유명한 스프링어 스패니얼과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사람의 1만배를 넘는 후각으로 1초 만에 마약 여부를 판단한다고 한다. 마약을 적발하면 핸들러(탐지조사요원)가 보상으로 공놀이를 해준다. 1마리 가격이 1000만원에 달한다. 평균 연령은 4.4세다. 8세 전후에 은퇴한 뒤 국민에 입양돼 반려견으로 여생을 보낸다.

관세청 탐지견의 능력이 입소문이 나면서 태국이 지난해 탐지견 기증을 요청했다. 관세청은 두 살배기 래브라도 리트리버 수컷 2마리를 기증했다. 태국은 한국 외에도 2개국에 탐지견 기증을 요청했으나 한국만이 응답해 태국 정부가 감사를 표했다는 후문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1987년 미국 관세청으로부터 기증받은 폭발물 탐지견 6마리를 마약 탐지견으로 전환해 운영한 한국이 36년 만에 외국에 탐지견을 원조하는 공여국으로 성장했다”고 했다.

글=강찬호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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