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소리에 나와보니 집 절반 날아가"...악몽의 예천 산사태 현장[영상]
“거센 바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쾅, 쾅, 쾅 하는 굉음이 들렸어요. 놀라서 뛰쳐 나와보니 집 절반이 날아가 있었습니다.”
15일 오전 5시 16분쯤 산사태가 발생해 집 5채가 쓸려내려 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경로당에서 만난 이근섭(64)씨는 이렇게 말하며 떨리는 두 손을 움켜쥐었다. 이씨는 “다급하게 나와보니 집 마당에 있던 농기계 등이 모두 쓸려나간 상태였다”며 “동네가 토사로 뒤덮여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라고 말했다.
이씨가 망연자실하고 있을 무렵 아랫마을에서 주민들이 토사를 뚫고 길을 만들어 올라왔다고 한다. 이씨가 “여기 사람이 파묻힌 것 같다”고 하자, 주민 5~6명이 모여 손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주민 1명을 겨우 꺼냈지만, 사망했다. 주민 박인태(59)씨는 “혹시 다칠까 봐 손으로 흙을 파내면서 꺼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정신없이 구조하다 보니 오전 8시반쯤부터 소방대원이 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번 백석리 산사태로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효자면 백석리는 예천군청이 있는 시내를 지나 차로 30분 동안 산길을 올라가야 나오는 동네다. 간밤에 많은 비가 내려 산길 일부가 유실돼 119 신고를 받고도 현장에 바로 접근하지 못했다는 게 경북소방본부 설명이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계속 비가 내려 추가 산사태 우려가 있어 16일 오전에 수색작업을 재개할 방침이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5시 찾은 예천군 은풍면·효자면 일대 대부분 논은 물에 잠겨 있었고, 도로 일부가 유실됐으며 곳곳에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해있었다. 주민들은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물에 잠긴 논을 보면서 허탈해했다.
은풍면에서 축사 운영을 준비하던 박인태(57)씨는 “산사태로 축사가 모두 무너져 내렸다”면서 “아직 소를 들여오진 않았는데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장비 등이 전부 토사에 잠기면서 재산 피해가 3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산사태로 집이 무너진 상태였다. 박씨는 “지인 여동생이 거주 중이었는데, 귀농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상황에서 집이 무너져 숨졌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이날 오후 6시 기준 전국에서 22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실종, 13명이 다쳤다. 경북 지역에서는 사망 17명, 실종 9명, 부상 5명이며 이중에도 예천 지역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예천에서는 산사태로 등 4명이 실종되고 3명이 사망했으며 물에 휩쓸린 5명이 실종되는 등 모두 7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경북도에 따르면 현재 652가구 1003명이 집에서 나와 마을회관 등에 머물고 있다. 3303가구가 정전 피해를 봤으며 재산 피해는 사유시설 29건, 전통사찰 9건, 공공시설 68건이다. 농작물 피해는 1562.8㏊로 잠정 집계됐다. 지역 도로 39곳과 포항·울진∼울릉 항로가 전면 통제됐다.
예천군민들은 정부에 특별재난구역 지정을 호소하고 나섰다. 박씨는 “당장 수억 원의 재산피해가 나서 막막하다”면서 “특별재난구역을 지정해 빠르게 피해를 복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날 백석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며 “정부가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입을 모았다.
예천=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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