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시장 작고 진입 쉬워 경쟁 치열...‘하나만 터져라’ NO, 브랜드 다각화 必
전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지는 동안에도 현저히 작은 내수 시장은 K뷰티에 늘 약점으로 작용했다. 한국 시장은 규모는 작은데 경쟁은 치열하다 보니 소위 ‘대박’ 제품이 나와도 실적이 엄청 좋아지기 어려운 구조다. 이렇다 보니 K뷰티 업체들은 흔히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이후 중국, 미국, 일본 수출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전략을 세우고는 한다.
비슷한 제품 너무 많아 차별화 안 돼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쌓는 과정에서 국내 업체들은 몇 차례 위기를 겪는다. 랄라블라와 롭스가 철수한 헬스앤뷰티(H&B) 시장에서는 올리브영이 사실상 오프라인 유통을 독점하고 있고, 온라인 플랫폼은 온라인대로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결국 브랜드 대부분이 가격을 내려 판매하거나 광고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어진다. 공 대표는 “이런 국내 시장 여건 탓에 많은 뷰티 업체가 제 가격에 제품을 팔지 못하고 브랜딩에 실패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뷰티 시장 경쟁이 유독 치열한 배경에는 낮은 진입장벽도 한몫했다. OEM·ODM 회사들이 제품 R&D부터 생산까지 전적으로 담당하면서 마케팅과 판매 역할만 맡는 브랜드 업체가 많아진 영향이다. 조소정 애널리스트는 “특히 최근에는 SNS가 활성화되면서 콘셉트 기획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화장품 브랜드를 내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업계 진입장벽이 낮아지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브랜드와 업체가 나타났고, 마케팅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고 진단했다.
화장품업계에서 적잖게 발생하는 ‘베끼기’ 논란도 K뷰티에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화장품 성분·품질이 상향평준화를 이뤘다고는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차별화도 쉽지만은 않다. 또 한 브랜드 신상품이 히트를 치면, 다른 브랜드가 유사한 제품을 내놓는 것이 유행이 됐다. 예컨대 시카 성분을 함유한 제품이 잘 팔리면 경쟁 브랜드도 비슷한 시카 함유 제품을 선보이거나, 스틱밤이 유행하면 브랜드 콘셉트만 바꿔 비슷한 제품을 신제품이라고 내놓는 식이다. 베끼기가 정도를 넘어섰다며 기업 간 법적 공방을 통해 다툼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작은 내수 시장과 치열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아래 베끼기가 성행하는 분위기가 약점이라면,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중저가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의 인기 양극화 탓에 한국 화장품이 외면받고 있는 것은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이 지난 5월 26일부터 시작한 6·18 쇼핑 축제 사전 판매에서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나스’가 190만달러의 누적 매출을 거두며 화장품 분야 1위를 차지했다. 맥, 입생로랑 뷰티, 에스티로더, 랑콤 등 유명 브랜드도 매출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브랜드 중에서는 중저가 화장품 제조 업체 프로야가 만든 차이탕이 유일하게 6위를 차지했다. 티몰은 화장품 판매 비중이 높아 중국 화장품 시장의 가늠자로 꼽힌다.
반면 우리나라 대표 수출 화장품인 LG생활건강의 ‘후’나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요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한국 브랜드는 중국 매출 의존도가 높으면서도 코로나19발(發) 국가 봉쇄, 우리나라와 중국 정부 간 정치적 긴장 관계 영향을 크게 받은 탓에 최근 중국 시장에서의 위상이 바닥이다. 박현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내 럭셔리 뷰티 시장은 로레알그룹이 독과점하는 형태가 지속되고 매스티지 시장은 중국 브랜드의 장악력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중국 시장 내 한국 브랜드의 입지 회복이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K’ 버리고 철저한 현지 연구 필요
다만 한국 주력 시장이 점차 중국에서 전 세계 다른 국가로 옮겨 가고 있는 점은 십분 활용해볼 만하다. 미국은 전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이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은 인당 화장품 소비액 증가 추세가 본격화하는 중이다. 하누리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이들 국가에서 한국 화장품 브랜드 점유율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10%를 웃돌기 시작했다”며 “여기에 드라마, 영화, 엔터테인먼트 등 한류 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후광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고 전망했다.
스킨케어 제품에 쏠려 있던 K뷰티 시장에서 ‘클리오’ ‘아이패밀리에스씨’ ‘에이블씨엔씨’ 등 색조에 강한 브랜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반가운 일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에서 해외로 팔린 화장품 수출액은 스킨케어 제품이 6억6308만달러인 데 반해 색조 화장품은 1억3313만달러를 기록했다. 색조 화장품 수출액이 스킨케어 제품 수출액의 20% 수준에 그친다. 바꿔 생각하면 아직 성장 가능성이 많은 셈이다. 박현진 애널리스트는 “색조 OEM·ODM 수요가 증가하면서 ‘씨앤씨인터내셔널’ 같은 신규 강자도 나오고 있다”며 “해외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색조 관련 기업이 많아지는 현상은 화장품 시장 체질이 개선 중이라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K뷰티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아이러니하게도 ‘K’를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대형 브랜드 업체들은 한류에 기대 ‘한국 화장품’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그 결과 한중 관계가 악화된 이후부터는 자사 고유 브랜드 이미지보다 ‘한국’을 강조했던 브랜드 대부분이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조소정 애널리스트는 “국가 이미지를 강조하기보다는 브랜드 자체 파워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정 브랜드 내에서 제품을 다각화하는 데 ‘올인’하기보다는 브랜드를 여러 개로 확장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라는 조언도 나왔다. 하누리 애널리스트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해외 시장에서 고전한 이유는 설화수, 후 브랜드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며 “로레알그룹과 에스티로더가 산하에 수십여 개 메가 브랜드를 보유했듯, 적극적인 브랜드 인수합병을 개진해봄직하다“고 말했다.
중국이나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제2, 제3의 시장을 개척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국, 일본, 아세아 국가를 넘어 유럽, 중동, 러시아 지역도 적극적으로 공략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철저한 현지화는 필수다. 예컨대 무슬림이 많은 국가에서는 할랄 인증을 마친 제품을 공급하고, 미국에서는 인종의 다양성을 고려한 제품을 기획하는 식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과거 중국에서 먹히던, 대형 유통사를 통해 물량을 최대한 많이 밀어넣고 ‘어디든 한 군데만 터져라’ 식의 유통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조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결국 K뷰티 브랜드의 과제는 ‘오래 살아남을 브랜드’를 만드는 것인데 물량을 소화 못해 재고를 털어내고, 가격을 내리기 시작한 브랜드는 재기하기 힘들다는 진단이다. 공 대표는 “K뷰티 고유의 혁신성, 트렌디함을 잃지 않되 현지 시장을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며 “천천히, 견고하게 성장한 브랜드가 유니콘 브랜드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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