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도 잘나간다…인디 ‘전성시대’ 브랜드 파워보다 확고한 정체성 ‘승부’
과거 대기업이 장악했던 화장품 시장에서 ‘인디’ 브랜드 성장세가 매섭다. 중소형 업체들이 코로나19 영향으로 브랜드 파워보다 제품 성분이나 기능에 더욱 역량을 집중한 전략이 유효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비자 니즈는 더욱 세분화됐다. 온라인과 모바일 중심 소비로 빠르게 전환되며 소비자가 개인 피부 유형이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적극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제품 경쟁력이 뒤처진다면 더 이상 브랜드 파워만 갖고 밀어붙이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인디 브랜드가 차세대 K뷰티를 이끌 주자로 떠올랐다.
美·日·동남아 성과 ‘뚜렷’
최근 나타나는 K뷰티 성장세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 수출처가 확대됐다는 점이 눈에 띄는 변화다. 과거에는 국내 화장품 수출이 중국에 치우쳤지만, 최근에는 미국과 일본 등으로 향하는 수출이 크게 늘며 중국 의존도를 낮췄다.
해외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업체들 대부분이 인디 브랜드라는 점도 눈에 띈다. 최근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 중 하나인 조선미녀가 대표적이다. 다소 생소한 브랜드지만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구다이글로벌이 인수한 조선미녀는 인수 첫해인 2020년 매출 1억원으로 시작해 2021년 30억원, 지난해는 무려 4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겨냥한 만큼 해외 성과가 두드러진다. 대표 제품인 ‘맑은쌀선크림’은 미국을 포함해 해외에서 누적 판매량 500만개를 돌파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부터 피부 미용에 사용됐던 쌀 추출물이나 한방 원료를 현대인에 맞게 재해석해 해외 시장을 공략한 전략이 적중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매출이 증가하며 미국의 대표적인 뷰티 온라인 플랫폼 ‘소코글램’에도 입점했다.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미국 아마존에서 선크림 카테고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스알엑스 역시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내 인디 브랜드다. 미주 지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도 성과가 뚜렷하다. 동남아와 대만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에서 필리핀 스킨케어 부문 브랜드 매출 1위, 말레이시아 스킨케어 부문 브랜드 매출 2위에 올랐다. 그 외 아마존 내 평균 성장률 205%, 틱톡 브랜드 누적 조회 수 13억뷰 등의 수치가 코스알엑스의 글로벌 인기를 보여준다. 글로벌 성과를 바탕으로 실적도 대폭 확대됐다. 코스알엑스는 지난 2021년 매출 1233억원, 영업이익 226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실적도 훌륭하다는 평가다. 지난해는 매출 2043억원, 영업이익 510억원으로 2배가량 실적이 뛰었다.
썸바이미 역시 중국 의존에서 벗어난 K뷰티 성공 사례로 주목받는 인디 브랜드다.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할 만큼 해외 시장에서 강점을 보인다. 초기 동남아 시장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북미와 유럽, 일본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올해 미국 시장에서는 아마존을 통한 매출이 전년 대비 900% 성장했다. 대표 제품인 ‘미라클 토너’가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2018년 출시된 ‘미라클 토너’는 입소문을 타고 이른바 ‘여드름 토너’로 효과를 인정받으며 누적 판매 600만개를 돌파했다.
올리브인터내셔널의 뷰티 브랜드 밀크터치 역시 일본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 밀크터치의 ‘서양송악 데일리 앤 퀵 수딩 마스크’는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 큐텐(Qoo10) 전체·뷰티 카테고리에서 1위를 달성했다. 지난 2월에는 일본에서 2시간 만에 2000개 완판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첫 100억 클럽 90%가 ‘인디’
국내 1위 헬스·뷰티 소매 업체인 CJ올리브영은 인디 브랜드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올리브영 입점 브랜드 중 80% 이상이 인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올리브영에서 거두는 성과가 인디 브랜드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초기 3CE, 닥터자르트, 닥터지, 투쿨포스쿨, 마녀공장, 아이소이, 아비브, 클리오부터 최근 롬앤, 넘버즈인, 어뮤즈, 어노브, 데이지크, 라운드랩까지 수많은 인디 브랜드가 올리브영과 함께 성장했다.
올리브영 판매 데이터에서도 인디 브랜드 강세가 나타난다. 올리브영이 매년 매출 데이터를 분석해 당해 최고 인기 제품을 선정하는 ‘올리브영 어워즈’에서는 지난해 인디 브랜드가 대부분 부문을 휩쓸었다. 스킨케어·메이크업 10개 부문에서 아누아, 아이소이, 가히, 마녀공장, 라운드랩, 투쿨포스쿨, 롬앤, 필리밀리 등 8개 인디 브랜드가 각각의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올리브영 어워즈에서 수상한 브랜드 중에서는 이미 해외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곳도 여럿이다. 최근 상장한 마녀공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65개국에 진출한 마녀공장은 전체 매출(1018억원)의 절반 이상인 56%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특히 일본 시장에서 인기다. 지난해 마녀공장은 일본에서만 4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리브영 어워즈 2022’ 클렌징 부문 1위에 오른 대표 제품 ‘퓨어 클렌징 오일’은 누적 판매량이 400만병을 돌파했다. 립 메이크업 부문에서 1위에 오른 롬앤 역시 일본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브랜드다. 지난 4월에는 일본 로손 편의점 전문 브랜드 ‘앤드바이롬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구매해 사용할 수 있는 립, 마스카라 등 색조 브랜드다. 앤드바이롬앤은 총 25종 구성으로 일본 1만2000여개 로손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작은 크기와 합리적인 가격대를 강점으로 일본의 젊은 고객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평가다. 지난해 일본 매출이 296억원으로 국내 매출(294억원)을 앞지를 정도로 일본 시장 공략에 집중한다.
한편 올리브영에서 연매출 100억원을 처음 달성한 인디 브랜드가 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지난해 올리브영에서 연매출 100억원을 넘어선 브랜드 수는 2021년 대비 38% 증가했다. 지난해 올리브영에서 연매출 100억원을 처음으로 달성한 브랜드 21개 중 19개는 인디 브랜드다.
특히 넘버즈인, 어뮤즈, 데이지크, 어노브 등 브랜드는 입점 1년 만에 이룬 성과다. 올리브영 자체 브랜드(PB)인 웨이크메이크, 라운드어라운드, 컬러그램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오지우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올리브영과 함께 수많은 인디 브랜드가 성장한 점을 감안하면 최근 올리브영 내 인디 브랜드의 인기는 K뷰티가 여전히 경쟁력 갖추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양해진 소비자 니즈
성공 비결은 ‘정체성’
전문가들은 인디 브랜드의 성공 비결을 확고해진 정체성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클린 뷰티, 비건 뷰티, 더마코스메틱 등 정체성으로 글로벌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최근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매출 200억원을 넘긴 인디 브랜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매출 200억원을 돌파하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내 10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뷰티 플랫폼 화해(국내 최대 화장품 플랫폼)가 지난해 매출을 분석한 결과 듀이트리, 믹순, 웰라쥬, 이즈앤트리의 매출이 지난 1년간 평균 312% 증가했는데, 이들 모두 매출 200억~300억원 규모인 중소형 업체다.
업체별로 정체성이 뚜렷하다. 듀이트리는 ‘클린 뷰티’를 내세운다. 클린 뷰티란 안전한 성분을 통해 자연과 생태계를 지키는 제품이다. 저자극·친환경 스킨케어 브랜드 듀이트리는 클린 뷰티 철학을 바탕으로, 안전한 성분과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을 담은 스킨케어 제품을 만든다. 특히 제품 패키지에 소이 잉크(콩기름 잉크)를 활용하고 분리 배출이 용이하도록 리무버블 라벨을 적용하는 등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는 물론 중국과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 등에 진출한 상태다.
이즈앤트리 역시 클린 뷰티를 표방한다. 더 나아가 지난해부터는 ‘고기능성 그린 뷰티’를 강조하며, 국가를 가리지 않고 로컬 친환경 원료를 발굴하는 데 힘쓰고 있다. 화장품 배합 금지 원료 2000여개와 이즈앤트리만의 기준으로 선정한 100가지 유해 성분을 배제하고 피부에 꼭 필요한 원료만을 제품에 사용한다. 그 결과 지난해 ‘화해 뷰티 어워드’ 미백·주름 기능성 화장품 마스크·팩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올해 1분기에는 화해 쇼핑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800%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웰라쥬는 ‘더마코스메틱’을 앞세워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메디컬 에스테틱 기업 휴젤이 보유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탄생한 브랜드다. 더마코스메틱(Dermocosmetic)이란 화장품을 뜻하는 ‘코스메틱(Cosmetic)’과 피부 과학을 의미하는 ‘더마톨로지(Dermatology)’를 합성한 단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약국 화장품’으로 통용되는 제품군이다. 주로 심한 피부 문제를 가진 개인에게 선호도가 높다. 의약품과 화장품의 특성을 결합해 제조하며, 유의미한 피부 개선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 고객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일본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5월에는 일본 최대 백화점인 이세탄 백화점 신주쿠 본점에서 열린 ‘리틀 서울’ 팝업 스토어에 참여해 일본 MZ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밖에 ‘디어,클레어스’와 디어달리아도 특색 있는 정체성으로 국내외서 인기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위시컴퍼니의 대표 브랜드 ‘디어,클레어스’는 ‘균형 잡힌 삶’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꼭 필요한 제품만 선보인다는 모토를 갖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제품 수가 비교적 많지 않음에도, 국가별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으며 8종의 글로벌 밀리언셀러를 보유했다.
디어달리아는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는 ‘비건 뷰티’로 고객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비건 뷰티로도 충분히 고기능성 메이크업 제품들을 선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 결과, 화장품 본고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의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외에 클린 뷰티 브랜드 토리든과 비건 뷰티 브랜드 달바, 무지개맨션 등도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카 역시 국내 최초로 성(性)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 뉴트럴’을 표방하며 소비자 호응을 얻고 있다. 화해 관계자는 “소비자 니즈가 더욱 세분화되고 있는 뷰티 시장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국내 인디 브랜드의 제품 경쟁력은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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