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고 나발이고 소용없다!" 경북 극한폭우 속 어르신의 외침 [보그(Vogue) 춘양]

김은아 2023. 7. 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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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할퀴고 간 봉화군 춘양면, 주민들 공포에 덜덜... "수십년 살았어도 이런 비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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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기자]

장마보다는 이제 '우기'라는 말이 더 적합한 기후를 겪고 있다. 밤사이 양철지붕을 두들겨 패기라도 하듯 요란했던 폭우는 내가 사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 언저리를 사정없이 할퀴어놓았다.

오래된 흙집에 한 겹 지붕이 받쳐주는 곳에서 서식하는 나는 이 곳에서 때론 낭만을 느끼기도 하지만 가끔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바로 어젯밤(14일)이 그랬다. 잔잔히 내리는 비는 음악소리처럼 아름답고 밤에 들을만하지만, 119 진화대 호수의 물줄기 같은 소리는 두려움과 사뭇 공포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본 밤이다.
 
▲ 토사로 뒤덮힌 거리 뒷마을 솥골이 무너져 토사가 타고 내려왔다.
ⓒ 김은아
 
 토사로 뒤덮힌 거리
ⓒ 김은아
 
▲ 도로에 뒹굴어다니는 부산물들 밤사이 산이 무너지며 토사와 나뭇가지들이 떠밀려 내려왔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이다.
ⓒ 김은아
 
주말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밤새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며 뒤척거리다 새벽 5시에 밖으로 나가보았다. 딴 세상이다. 도로에는 온갖 토사와 나뭇가지들이 떠밀려 와 있었고, 뒷마을 솥골 산이 무너지면서 산허리가 터지고 급기야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부산물로 토사를 도로 바닥에 거인의 한 움큼만큼 남겨놓고 말이다.

1톤 트럭마저도 길을 가지 못하고 멈춰서버렸고, 어르신들은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며 보험회사에 전화를 대신해달라고 급히 도움을 청한다. 난생 처음 보는 이 풍경에 정신도 아찔하고... 이게 말로만 듣던 재난인가 싶은 생각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급하게 보험처리를 하는 중 어르신들은 대야며 물동이를 가지고 나와 흙을 퍼냈고, 모두들 떠내려가는 하천을 보며 멍하니 바라만 보고 계셨다.

"수십 년 살았어도 이런 비는 처음이니더."
 
▲ 지반붕괴 우리 마을 안쪽 다리가 있는 도로의 지반이 붕괴됐다.
ⓒ 김은아
 
▲ 넘실대는 운곡천 춘양면 운곡천이 넘실댄다. 바다가 따로 없다. 거센 물줄기에 휩쓸리면 누구나도 예외가 없겠구나 싶은 파도다.
ⓒ 김은아
 
여기 안 살아본 나도 이런 비는 처음이다. 운곡천이 넘실대는 것이 금방이라도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집어삼킬 태세다. 재난방송이 흘러나오고 저지대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마을회관으로 이동하신다. 비상상황이라 출근길을 독촉해봤지만, 길이 막혔다. 도로가 완전 침수돼 원천 봉쇄된 것이다.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차에서 내린다. 우리 직원들이다. 모두들 비상이라 상황근무차 나왔다가 발만 동동 구르고 상황대기로 귀가했다.

도로에 있을리 없는 나뭇가지, 나무껍데기, 잎사귀 등이 낯설다.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이곳은 면소재지인데 말이다. 낮은 지대인 마을 안쪽 다리와 도로는 붕괴됐다. 어르신들이 다들 많이 놀라신 눈치다.

"어디를 가려고 옷 입고 나서나?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붙어 있어라. 큰일 난다. 회사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다. 이럴 때 돌아다니면 큰일이다. 알겠나. 어서 집에 들어가라!"

앞집 용이네 어르신들이 다그치듯 말씀하신다. 걱정되고 염려되니 그렇다. 다들 밤새 못 주무셨는지 눈이 충혈돼 있다. 새벽부터 비설거지를 했으니 오죽하랴.

나도 도로가 막혀서 아무데도 움직일 수가 없다. 본가라도 가면 좋으련만 발도 마음도 묶였다. 회사도 걱정이고, 나도, 동료들도 걱정이다. 오늘 밤 또 폭우가 심해지면 근처 어르신 댁으로 피난 갈 준비를 마쳤다. 동료들과는 소식을 공유하고 '무탈하게 살아서 만나자'며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두려움과 긴장이 그리 쉽게 가시지가 않는다.

하천의 물줄기가 바다의 파도 같다. 그 누가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신이 창조한 자연의 순리 앞에 한없이 작아진 인간의 모습을 다시금 마주한다.

산도 무너지고 땅도 무너지는데 작은 화초들은 잘 버티고 있어 보인다. 이 무슨 조화인고 싶다. 크다고 강한 것도 아니고 작다고 약한 것도 아니다. 인생살이 모두 그러한 것인가? 생각이 깊어진다.
 
▲ 마당이 물에 잠겼다 종아리만큼 물이 가득찼다. 옆집 강씨할매는 밖에 나오질 못해 발만 동동구르신다. 어서 복구되기를 바랄뿐이다. 물을 아무리 퍼내도 다시 차오르는 물앞에 장사가 없다.
ⓒ 김은아
 
▲ 생존 중, 큰금매화 꼿꼿하게 고고하게 자태를 내보이며 군계일학처럼 서있다.
ⓒ 김은아
 
자작자작 비가 젖어들고 있지만, 봉화의 실종 사고와 인재 소식은 계속 속보로 나오고 있다. 이 비가 어서 지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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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비가 와도 눈보라가 쳐도 우리 삶은 지속됩니다. 피어야 할 꽃은 피고, 나비들도 비 사이를 피해 날아다니며 길고양이들도 이 비를 피해 끼니를 찾아다닙니다. 살아내고 살아가는 이 삶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지는 폭우 속의 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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