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때 만든 영화 초청돼 놀라" 순창 학생들의 유쾌한 도전
[이선필 기자]
▲ 영화 <갑자기 생긴 가게>에서 '첫차'를 연출한 박서진 감독. |
ⓒ 박서진 제공 |
이 중 전라북도 순창 출신 박서진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여균동 감독이 주축이 된 '사회적협동조합 우리영화만들자'에서 영화 캠프를 주최했고, 박서진 감독을 비롯해 지역 학생들이 지난 2020년 2월 1일부터 한 달간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인 <갑자기 생긴 가게>는 총 세 편의 단편 <사물의 말> <첫차> <시계>가 모인 옴니버스 영화다.
재기발랄한 상상력
두 번째 에피소드인 <첫차>를 연출했고, <갑자기 생긴 가게>의 대표 감독을 맡은 박서진 감독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고, 이제 고3이 됐다. 말 그대로 동네에 갑자기 생긴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에 신비한 힘이 있다는 상상에서 비롯된 작품을 두고 박 감독은 "비록 전체 감독으로 인터뷰를 제가 하지만 구성원들이 다 노력한 결과로 비키에서 상영될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이런 기회를 갖게 도와준 순창군과 여균동 감독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박서진 감독의 <첫차>는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학생이 가게에서 반지를 구한 뒤 사람들의 첫사랑 상황이 눈에 보이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선생님이 사랑하는 대상을 알게 된 주인공이 첫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박서진 감독이 직접 서진 역도 맡아 연기했다.
"유튜브 쇼츠(1분 이내의 짧은 영상)를 보다가 첫사랑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하는 첫사랑의 정의를 담은 영상이었는데 그걸 보고 전 첫사랑을 어떻게 정의할까 궁금증이 생겨서 지금의 작품을 만들게 됐다. 첫차에 첫사랑을 부여한 이유는 (3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생각인데, 첫차라는 게 이른 시간 처음 오는 차잖나. 첫사랑도 나이가 몇 살이든 사랑에 미숙할 때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첫차를 놓쳤어도 다음 차가 오니까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듯 사랑도 다음에 오지 않는 게 아니기에 절망할 필요없다는 생각이었다."
제법 성숙한 정의를 품고 있던 박서진은 함께 팀이 된 학생들과 지금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사물의 말이 들리게 하는 알약을 소재로 한 <사물의 말> 팀, 귀농 청소년의 어려움을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통해 그려낸 <시계> 팀이 한 달간 여러 아이디어를 나누며 지금의 영화 구성을 택하게 됐다고 한다.
▲ 영화 <갑자기 생긴 가게> 촬영 당시 현장 모습. |
ⓒ 박서진 제공 |
▲ 영화 <갑자기 생긴 가게> 촬영 당시 현장 모습. |
ⓒ 박서진 제공 |
영화에 나오는 동네 주민, 부모님 등 여러 인물은 대부분 여균동 감독의 지인이거나 캠프 참가자들의 지인이었다. 박서진 감독은 "시나리오 대로 영상이 촬영되는 걸 볼 때 순간순간 보람이 있었고, 전체 완성본을 보았을 때 정말 보람이 컸다"며 "촬영 때 한 할머니께서 랩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제가 부탁드렸을 때 랩을 연습하시고 발랄하게 해주시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일화를 전했다.
이른 나이에 영화 연출과 촬영을 경험했다고 해서 영화 쪽에 꿈이 있거나 진로를 정한 건 아니었다. 다만 박서진 감독은 "영화 캠프로 사람들을 만나며 내 생각을 발전시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할 수 있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며 의미를 짚었다.
"또래 친구들을 만나 오랜 시간 붙어 있으면서 아이디어를 짜낼 기회가 흔치 않잖나.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얻었다. 중2 때 만든 영화가 지금 초청이 돼서 놀라기도 했는데 역사와 전통이 깊고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하는 비키에서 큰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게 영광스럽다.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던 언니가 미디어과로 진로를 정하는 걸 보며 자연스럽게 영상에 흥미가 있던 때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유튜브를 보며 혼자 그림을 영상처럼 이어붙이는 걸 해보기도 했다.
엄마를 통해 영화 캠프에 참여했는데 솔직히 처음엔 영상 편집을 더 깊이 배우자는 생각이었다. 근데 영화라는 게 전 과정에 참여하는 거잖나. 시나리오도 써보고, 예상치 못한 걸 배우면서 더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지금은 고3인 만큼 학업에 집중하고, 대학에 가면 경영학과에 가고 싶다. 영화 캠프가 정말 도움이 됐던 게 사람을 만나며 내 생각을 발전시키는 걸 제가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했다. 그래서 나중에 전공도 마케팅 쪽으로 하고 싶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같은 로맨스물을 좋아한다는 박서진 감독은 대학에 가서도 동아리 형태든 영화 관련 경험을 쭉 이어 가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쇼츠나 릴스 같은 짧은 영상에 익숙한 세대라지만, 그는 "짧은 영상이 재미만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엄청 깊은 고민을 통해 나오는 것인 만큼 전체를 드러낸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며 "그 고민의 결과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나름 영화의 존재 의미를 두고 생각한 걸 덧붙였다. 또한 함께 작업에 참여한 친구들에게도 다시금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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