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초등학교 4학년 아이와 처음으로 퀴어축제 함께 간 날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임은희 기자]
7월 1일 토요일, "심심한데 명동이나 갈까?" 둘째 아이와 명동으로 걸어가는데 평소보다 훨씬 많은 경찰들이 있었다. 검색하니 퀴어문화축제와 반대집회가 동시에 열린단다. 다시 집으로 갈 것인지 고민하는데 아이가 말했다.
"어차피 경찰도 많은데 괜찮지 않을까? 둘 다 구경하는 거 어때?"
▲ 2023년 7월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 콘서트 제목에는 '청소년'이 들어가 있었지만 집회 성격은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애 반대, 퀴어문화축제 반대였다. |
ⓒ 임은희 |
퀴어반대집회 참가자들은 도서관과 시민청의 공공 편의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했고 주변 상권으로 이동도 자유로웠다. 서울도서관은 이동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와 공공생리대를 갖추고 있는 데다가 휴식 공간도 충분했다.
▲ 2023년 7월 1일 퀴어반대를 위한 행진 새문안로에서 세종대로 방면으로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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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입구부터 청계천 베를린광장까지 이어지는 차도의 일부가 축제장소였다. 요즘 집회는 참가자보다 경찰이 더 많다는 특징이 있는데 퀴어문화축제는 놀랍게도(?) 참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서울시는 차도에 집회를 허락했지만 그늘과 쉼터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펜스 밖으로 나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단 하나의 틈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이성애자고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이지만 단순히 퀴어문화축제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차별받는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 2023년 7월 1일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 메인무대 콘서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명동 쪽에서 행사를 지켜봤다. 을지로 입구역 명동방향 출구 주변에서 수십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관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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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학, 고등학교의 성소수자 학생들을 위한 모임, 사랑하는 자녀들의 취향을 존중하기 위해 모인 성소수자부모모임도 있었다. 제도권에서 공립학교를 보내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학교밖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위한 모임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시에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이유가 '청소년 관련 행사'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것이었는데 공교육 밖의 청소년들의 인권과 심리상담까지 생각하는 축제를 단순히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불허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구글과 이케아 같은 글로벌 기업 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입장이라고만 생각했던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단체에도 성소수자 모임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OECD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부스가 많았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행복한 나라라서 성소수자들을 끌어안은 것일까 아니면 성소수자들을 끌어안아서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일까. 아이에게는 차마 들려줄 수 없는 생각을 하며 축제 행사장에 허락된 나머지 하나의 출입구를 향해 걸었다.
▲ 2023년 7월 1일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출입구 을지로 2가에 1개, 청계천 베를린 광장에 1개 이렇게 총 2개 였고 행사장 전체를 펜스로 둘러 이동을 제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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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는 작은 키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지금도 1학년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처음으로 자신보다 키가 작은 어른들을 본 아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키가 작아도 해외여행 다니며 즐겁게 살 수 있네?"
광화문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를 구경했지만 퀴어문화축제만큼 장애인이나 외국인이 많았던 축제는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인상깊었다. 축제 장소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괜찮다', '존중', '연대', '평등', '화합', '사랑', '안전'이었다.
아이는 내년 여름에도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쉴 곳이 턱없이 부족한 차도가 아니라 충분히 넓고 안전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면 좋을 것 같단다. 쉼터와 공공편의시설 사용이 자유롭고 주변상권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 축제가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들도 주민등록번호가 있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낸다. 소득분위에 해당하는 정당한 세금을 내고도 공공 인프라를 누릴 수 없다는 점은 부당한 일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의무는 다하고 권리는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하다.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부분을 문제삼아 비난하거나 공공서비스 접근권을 제한하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딸의 질문
"내가 저 버스에 타고 있었어."
옆에 건장한 체격의 청년 4명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기동경찰버스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20XX년에 내가 저 버스에 타고 있었잖아. 그때는 보고만 있었는데 이제 축제에 참여하네."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 정체성을 숨겨야 하며 언제라도 들킬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개인이 짊어진 고민의 무게는 염두에 두지 않고 죄인으로만 생각하는 사회를 상상했다. 성소수자라면 마음이 힘들 것이고 바라보는 입장이라면 소수 집단에 속하게 되어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할까 불안해하며 살아갈 것 같은데 한국은 어떤 사회일까.
퀴어문화축제와 반대집회의 충돌을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반대집회의 자극적인 문구를 보며 근무 중이라면 마음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또 어떻고. 다양성 교육을 하며 성소수자를 배제한 다양성만 이야기한다면 그 교육은 모순일 것이다. 학교에서 차별을 가르치지 않아도 청소년들은 차별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한문을 지나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무지개 타투를 팔에 한 사람도 햇빛가리개로 부채질을 하는 기독교 집회 참석자도, 휴식 중인 경찰도,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들고 천천히 걷는 나도 모두 같은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마르코 복음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쓰여있거든.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악이라면 이웃에 동성애자가 살면 나는 미워해야 하는 거야? 그 사람은 이웃인 나를 사랑해도?"
"나도 나중에 고등학교에 다닐 텐데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동성애자라면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없애야 하는 거야?"
"우리반 쌤은 결혼도 안 하고 아기도 없어. 그럼 동성애자처럼 아기를 안 낳는 우리쌤도 죄인이야? 10년차의 진짜 훌륭한 선생님인데?"
아이는 수많은 질문을 했지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하나의 성경 말씀을 두고도 해석이 서로 다르잖아. 우린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외치는 목사님도 만났고 동성애자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수녀님도 만났어. 네가 생각할 때 더 많이 웃고 다정했던 사람, 행복해보이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봐. 엄마는 답을 줄 수 없어. 하지만 엄마랑 약속해. 남자를 사랑해도, 여자를 사랑해도 엄마가 네 연인까지 아낌없이 사랑할 테니까, 숨기지 말고 우리 함께 행복하자. 알았지?"
다름을 틀림으로, 차이를 차별로 규정하는 사회보다는 소수자가 될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으면 한다. 누구라도 자신이 선택한 삶 안에서 존중받을 권리, 사랑할 권리 정도는 갖고 살면 좋겠다.
나는 이성애자라 동성애자의 삶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이 이성애자들에 의해 함부로 정죄당하진 않았으면 한다. 내 아이들이 비주류의 삶을 선택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도록 만인의 평등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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