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위해 목숨 걸고 싸운다는 글, 왜 1면에 실렸나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2023. 7. 1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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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1948년 커피예찬론, 알뜰살뜰한 커피맛

[이길상 기자]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커피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 헤밍웨이 커피
역사 속에는 커피를 좋아한 위인 이야기가 넘친다. 대부분 서양의 정치인이나 문화예술인이다. 이들이 커피를 좋아했다는 증거는 주로 하루에 마신 커피의 양이 엄청났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대표적인 몇 사람을 거론하면 정치인 나폴레옹, 링컨, 아이젠하워, 문인 발자크, 루소, 헤밍웨이, 랭보, 음악가 베토벤, 바흐, 화가 고흐 등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고종황제, 이상, 이효석, 천경자 등이 커피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이 커피를 싫어하는 이유는 손에 꼽을 몇 개 정도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수십, 수백 가지가 있다. 어찌 보면 사람 수만큼 많은 것이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이기에 커피를 좋아하는 공통의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과 북에 대립적인 정권이 수립되고, 전쟁으로 달려가던 1940년대 후반의 우울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커피를 마셨다. 당시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추측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커피를 많이 마셨고, 더러는 사랑했다.

당시 커피를 좋아했던 인물 중에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인물이 하나 있다. 언론인 김재경이다. 그가 커피를 대하는 태도는 아주 흥미로웠다. 김재경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와 좋아하는 정도를 명료하고 강렬하게 묘사한 사람은 동서고금에 없을지도 모른다.

경상북도 의성 출신 김재경은 중국 베이징대학 문과를 졸업한 후 현지 생활을 하다 해방과 함께 귀국하였다. 김재경은 일간지였던 <현대일보> 기자가 되었다. <현대일보>는 1946년 3월에 박치우를 발행 및 편집인으로, 이태준을 주필로 하여 창간한 좌익신문이었다. 이태준의 '불사조'를 연재한 신문이다.

그러나 미군정에 반대하는 논조로 인해 1946년 9월 6일 미군 헌병의 수색을 당한 후에 불과 6개월 만에 무기정간되었고, 발행권은 미군정에 의해 대한독립청년단의 서상천에게 넘어갔다. 해방 이후에도 우익 계열의 신문으로 계속 간행되었다. 김재경은 기자를 거쳐 편집부장, 그리고 편집국장을 지냈다.

정신노동자의 휴식을 돕는 음료
 
 1948년 10월 7일 자 <현대일보>에 실린 '다방수필: 커피의 감칠맛'
ⓒ 국립중앙도서관
편집부장이던 김재경은 1948년 10월 7일 자 <현대일보>에 '다방수필: 커피의 감칠맛'이란 글을 실었다. 자칭 '신문쟁이' 김재경은 이 수필에서 자신이 커피를 즐기는 이유와 태도를 매우 재미있고 명쾌하게 써 내려갔다.

커피가 보건위생상으로 해로운지 이로운지는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였다. 김재경은 '신문쟁이'를 냉정한 이지적 비판력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시비를 가리는 정신노동자로 규정하였다.

김재경이 보기에 자신과 같은 정신노동자로서 일을 마치고 나서 그럴듯한 다방을 찾아가서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육체와 정신을 한꺼번에 쉬어가며 커피 한잔 마시는 재미를 모른다면 불쌍한 사람, 가엾은 인생이었다. 김재경이 커피를 마시는 첫 번째 이유는 커피가 정신노동자의 휴식을 돕는 음료였기 때문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맛이었다. 김재경은 커피가 주는 재미를 그 맛에서 찾았다. 미지근한 듯하면서도 따뜻한 맛, 좀 털털한 듯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커피의 향취(香臭), 커피의 신비력이었다.

이 매력적인 맛, 위대한 감칠맛 때문에 김재경은 스스로를 "커피의 노예" "커피의 포로"라고 고백하였다. 그에게 자고 일어나서 입안이 텁텁할 때, 밥 먹고 나서 속이 트직할 때, 원고를 쓰려고 기사 내용을 구상할 때 마시는 커피 맛은 매력적이었다.

그의 비유를 따르자면 담배 맛이나 술 맛쯤으로 이 커피 맛을 따라잡는 것은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었다. 담배나 술이 맨발로 뛰어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김재경이 느낀 커피 맛이었다. 커피당 김재경의 시선에서 담배나 술을 커피와 비교하는 것은 "어림없는 수작"에 불과하였다.

한잔 커피가 지닌 "알뜰살뜰한 맛"을 알고 있는 김재경은 만사를 무릅쓰고라도 커피를 마셨다. 어느 정도였을까?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커피를 많이 마셔 "모가지가 열두 토막으로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름에 입고 다니는 겨울 양복을 잡혀서라도," "단 한 벌 밖에 없는 마누라 치마를 몰래 훔쳐다 팔아서라도," 이 커피 한 잔 값 50원은 매일 준비해 둘 작정이었다.

자신의 커피 사랑을 몇 가지 일상사와 비유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이렇게 정성껏 지냈다면 자신이 벌써 큰 효자로 이름이 났을 것이고, 부를 쌓는데 커피 마실 때만큼 재미를 느꼈으면 벌써 장안의 갑부가 되었을 것이었다.

젊은 시절에 여자 꽁무니를 무던히 쫓아다녔지만 이 커피 맛에 반하듯이 홀딱 반해보지는 못했다. 그런 자신이 지금은 여자가 아니라 커피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거의 "미치광이"처럼 커피에 반한 김재경은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천 놈이 천 소리 하고, 백 놈이 백 소리를 해도 커피 맛은 좋더라. 만일에 커피를 나쁘다고 욕하는 놈이 있다면 나는 커피의 존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걸고 싸우리라. 고금의 충신들이 위국진충(爲國盡忠)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하듯이 나는 일사보(一死報)커피차일배(茶一杯)하리라.
 
김재경은 서울 종로 2가에 있던 용궁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 글을 썼다. 동서고금에 커피의 맛과 매력 앞에 이렇게 솔직했고 용감했던 인물이 있었을까 싶다.
커피당, 무직문화인, 커피병 환자
 
 1950년 1월 10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거리에 범람하는 수입품의 대부분 알맹이는 조잡한 일본제"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당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을 부르는 명칭도 다양했다. 술 좋아하는 주당에 빗대어 '커피당'이라고 불렀고, 직업은 없음에도 서구 문화인을 흉내 낸다는 점에서 '무직문화인'이라고도 불렀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벽화 모양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빗대어 '커피병 환자'라고도 불렀다.

김재경을 닮은 커피당이 여기저기 넘쳐나던 시대였다. 이런 사회상을 보고 <경향신문>은 '다방홍수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도하였다. 커피 수입이 금지된 신생 독립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문제는 커피값이었다. 1948년에 50원 하던 커피 한 잔 가격이 1949년에는 100원을 넘어섰고, 1950년 초에는 200원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에서 커피당의 비명이 들렸다. 미군 철수 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커피도 끊겼고, 커피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수입 금지 품목에 올라 있었기에 커피 가격이 높은 것은 당연하였다.

수입이 금지되어 있는데 어떻게 시내 수백 개의 다방에는 커피가 넘칠까? <경향신문>은 1950년 1월 10일 자에서 당시의 사치품 밀수입 루트를 보도하였다. 많은 종류의 일본 상품이 홍콩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일본 상표를 붙이면 한국 사람들이 잘 사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 상표를 붙인다는 것이었다. 이 신문은 "40년 동안 우리를 착취하던 일본인들은 이제 다시 우리들의 정신과 생활을 좀먹는 사치품을 우리에게 팔아먹고 너털웃음을 웃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수입이 금지된 커피의 경우에는 무슨 사회사업단체나 교회를 앞세워 선물로 위장하여 들여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게 일본을 통해 들어온 커피는 비싼 값에 팔렸고, 번 돈으로 다시 일본에서 커피 재료를 들여왔다. 일본인들의 너털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일부 신문에서는 외화 낭비를 들어 커피 발매 금지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커피당 뒤에는 일본인들과 함께 너털웃음을 짓던 조선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70여 년 전에 들리던 일본인들의 너털웃음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하여 입안이 텁텁하다. 커피가 당기는 시절이다.

(유튜브 '커피히스토리' 운영자, 교육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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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현대일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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