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가격 인상에 '약국 원정'까지…약국은 "마진 없이 판다"
직장인 이모(32·경기 고양)씨는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회사 앞 약국을 찾았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작년에만 해도 2500원이었던 판피린 한 상자(20mL씩 5병) 가격이 3500원까지 올라서다. 이씨는 “조금 떨어진 다른 약국에 전화를 해보니 3000원에 파는 곳이 있어 그곳에서 구매했다. 점심 식비 걱정만 했는데, 약값을 보니 물가가 오른 걸 실감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고객에게 나눠줄 에너지 드링크를 매달 주문해오던 은행원 김모(31·서울 은평)씨도 고민이 커졌다. 에너지 드링크 한 박스당 3630원 정도였던 가격이 지난 5월부터 4180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한 달에 20박스를 주문했던 걸 기준으로 하면 1만1000원을 더 내야 한다. 김씨는 “고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것인데, 가격이 싼 다른 제품으로 바꿔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1년 사이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부 일반의약품의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15일 통계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감기약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0.65(2020년=100)로 전년 동월대비 17.3% 증가했다. 이어 ▶한방약 8.1% ▶소염진통제 7.4% ▶비타민제 5.3% ▶진통제 5.2% 순으로 증가율이 높았다. 같은 달 한국의 소비자 물가상승률(2.7%)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감기약 가격이 유독 뛴 건 지난해 가을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가 동시 유행하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반면 감기약 원료 수급 불안정으로 공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까스활 1000원→1200원, 판피린·우황청심원도 ↑
제품별로 보면 동아제약은 지난해 10월 감기약 ‘판피린’ 가격을 12.5% 올렸고, 올해 3월에는 구강청결제 ‘가그린’ 가격을 14% 인상했다. ‘국민 소화제’로 불리는 동화약품의 ‘까스활명수’는 이달부터 공급가가 15% 인상됐다. 편의점용 제품인 '까스활'은 이미 지난 3월 1000원에서 1200원으로 20% 올랐다. 광동제약은 우황청심원과 쌍화탕, 비타500 가격을 연달아 인상했다.
제약업계는 수년간의 팬데믹 상황과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의약품 제조 원가와 유통 비용이 상승해 가격 인상을 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3~4년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가 원부자재와 인건비, 물류비 등 제반 비용 상승으로 부득이하게 공급가를 인상한 것”이라며 “모두가 힘들었던 팬데믹 시즌에 인상을 자제하다가 더는 미룰 수 없어 올리는 업체들이 많아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약국 “소비자 눈치 보여 판매가 올리기 어렵다”
그나마 창고가 있는 약국들은 재고가 남아 있어 3~4개월은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소규모 약국들은 당장 높아진 가격으로 물건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 대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소비자한테 몇백원 올려받기가 모호한 부분이 있어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면서 “마진이 거의 없다 보니 상비약을 잘 안 들여놓게 된다”라고 말했다.
약국마다 판매 가격이 다르다 보니, 몇달 치 약을 한꺼번이 사려는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가격이 싼 곳을 찾아 이른바 '약국 원정'에 나서기도 한다.
당분간 일반의약품 약값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약값 조정을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의 경우 비급여 의약품을 제외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매달 고시하는 ‘약제급여목록표 및 급여상한금액표’에서 가격이 정해진다.
그러나 일반의약품은 보건당국의 가격 규제가 따로 없어 제약사에서 공급가를 인상하면 소비자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 다만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가공식품 가격 통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 보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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