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복싱 나선 전직 권투선수, 12년 지나도 회자되는 이유

양형석 2023. 7. 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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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휴 잭맨 주연의 로봇복싱영화 <리얼 스틸>

[양형석 기자]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린 시절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로봇들의 싸움은 언제나 만화에서만 볼 수 있었고 이를 '실사'로 보기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러던 2007년 마이클 베이 감독이 정의의 로봇 오토봇과 악의 로봇 디셉티콘이 싸우는 실사 로봇영화 <트랜스포머>를 만들었다. 실질적인 첫 실사 로봇액션영화였던 <트랜스포머>는 세계적으로 7억 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트랜스포머>의 등장과 함께 실사 로봇영화는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니게 됐고 <트랜스포머>는 지난 6월에 개봉한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까지 총 7편이 제작됐다. 국내에선 <트랜스포머>의 아류 취급을 받았지만 또 다른 로봇액션영화 <퍼시픽 림>도 속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8년 원신연 감독이 < 로보트 태권V >의 실사영화를 준비했다가 최종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로봇영화는 소재의 특성상 중·장년층이나 여성 관객들이 보기엔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태생적 한계'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2011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는 액션의 스케일은 <트랜스포머>에 다소 미치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성장과 관계회복,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주제인 '아메리칸 드림'까지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로 휴 잭맨 주연의 로봇복싱 액션영화 <리얼 스틸>이었다.
 
 2011년 국내에서 <리얼 스틸>보다 많은 관객을 모은 '외화'는 단 네 밖에 없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세계 관객들이 사랑하는 영원한 '울버린'

1968년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난 휴 잭맨은 호주에서 드라마와 뮤지컬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고 1999년 영화 <어스킨빌 킹스>에 출연하면서 영화에 데뷔했다. 그리고 2000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에서 울버린 역에 캐스팅되며 단숨에 유명세를 얻었다. 당초 울버린 역은 러셀 크로우와 더그레이 스콧이 유력했는데 두 배우가 각각 <글레디에이터>와 <미션 임파서블2>에 캐스팅되면서 운 좋게 무명에 가까웠던 휴 잭맨에게 기회가 왔다.

<엑스맨>을 통해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린 휴 잭맨은 2004년 <미이라> 시리즈를 만든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반헬싱>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엑스맨-최후의 전쟁>이 개봉한 2006년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프레스티지>에서 크리스찬 베일, 스칼렛 요한슨, 마이클 케인 등과 연기호흡을 맞췄다. 다만 <엑스맨> 시리즈가 끝난 후엔 한동안 흥행작이 나오지 않아 작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엑스맨>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20세기 폭스에서는 인기캐릭터 울버린의 단독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8년 동안 <엑스맨 탄생: 울버린>과 <더 울버린> <로건>으로 이어진 '울버린 3부작'은 세 편 합쳐 14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휴 잭맨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그리고 휴 잭맨이 2011년 <엑스맨 탄생: 울버린>과 <더 울버린> 사이에 출연했던 영화가 바로 로봇액션영화 <리얼 스틸>이었다.

휴 잭맨이 고물로봇으로 로봇복싱에 출전하는 전직 권투선수 찰리 켄튼을 연기한 <리얼 스틸>은 1억 1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3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휴 잭맨은 2012년에도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러셀 크로우,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함께 4억 4200만 달러의 흥행을 견인했고 <레미제라블>을 통해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휴 잭맨은 2017년 근대 서커스의 창시자인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에 출연해 뮤지컬배우 출신다운 뛰어난 연기와 노래실력을 뽐내며 4억 3400만 달러의 흥행을 이끌었다. 같은 해 <로건>에서 숨을 거두며 16년 넘게 함께 했던 울버린이라는 대표 캐릭터와 작별하는 듯했던 휴 잭맨은 내년 개봉 예정인 <데드풀3>를 통해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유쾌한 울버린'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트랜스포머>보다 높은 평가 받은 로봇영화
 
 휴 잭맨(왼쪽)은 레전드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의 자문을 받아 전직복서 찰리 켄튼을 연기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 브에나비스타영화(주)
 
<리얼 스틸>은 인간 대신 로봇이 복싱을 하는 2020년 근 미래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2020년은 로봇복싱이 아닌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세계를 덮쳤던 시기다. <리얼 스틸>은 한때 잘 나가는 복서였지만 슬럼프를 겪고 몰락해 로봇복싱으로 간신히 먹고 사는 찰리(휴 잭맨 분)가 헤어진 아내가 남긴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 분)와 버려진 고물로봇 아톰을 만나 잃었던 부성애와 꿈을 찾아가는 영화다.

<리얼 스틸>은 '본진'인 북미에서 8546만 달러의 흥행성적에 그치면서 제작비조차 회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 좋은 영화라는 소문이 돌면서 전국 357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선전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리얼 스틸>은 로봇복싱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아버지와 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그리고 톰 크루즈 못지 않은 대표적인 '친한파 배우' 휴 잭맨의 높은 국내 인지도가 더해지면서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으로 이어졌다. 

<리얼 스틸>은 미국의 영화정보사이트 IMDb에서도 평점 7.0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적지 않은 관객들이 <리얼 스틸>을 <트랜스포머>보다 좋은 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스케일 큰 로봇액션으로만 승부를 걸어야 했던 <트랜스포머>와 달리 <리얼 스틸>은 등장인물들의 여러 이야기가 포함될 요소가 많은 영화다. 개봉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속편에 대한 기대를 하는 관객들이 남아있는 이유다.

영화 속에서 전 세계 챔피언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 붙였을 만큼 촉망 받았던 전직 복서 찰리 역을 맡은 휴 잭맨은 복서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 실제 고강도의 복싱훈련을 받았다. 실제로 <리얼 스틸>에서 복싱자문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왼쪽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어록으로 유명한 5체급 세계 챔피언 '슈거' 레이 레너드였다. 극 중 찰리의 멋진 복싱자세는 레너드의 자문을 받아 만든 노력의 결과였다는 뜻이다.

<리얼 스틸>을 연출한 캐나다 출신의 숀 레비 감독은 <박물관이 살아있다> 3부작을 연출하며 SF와 드라마, 코미디를 적절하게 섞을 줄 아는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를 끝낸 후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제작과 연출에 참여했다. 2011년 <리얼 스틸>에서 휴 잭맨, 2021년 <프리 가이>에서 라이언 레이놀즈와 호흡을 맞춘 레비 감독은 내년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데드풀3>를 선보일 예정이다.

배짱과 쇼맨십 겸비한 아들 맥스
 
 휴 잭맨의 아들 맥스를 연기한 다코타 고요(왼쪽)는 2014년을 끝으로 영화활동을 접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 브에나비스타영화(주)
 
찰리와 그의 옛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맥스 역은 <토르: 천둥의 신>에서 토르의 아역을 연기했던 다코타 고요가 맡았다. 맥스는 자신의 양육권을 팔려 했던 찰리를 크게 원망하지만 고물 처리장의 낭떠러지에서 찰리의 도움으로 살아난 후 아톰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찰리와 정이 든다. 맥스는 경기에서 승리한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이크를 잡고 챔피언 제우스에게 도전을 할 정도로 나이답지 않은 배짱과 쇼맨십을 겸비한 소년이다.

어린 시절부터 찰리와 함께 자란 친구이자 찰리에게 복싱을 가르친 코치의 딸 베일리 역은 <앤트맨> 시리즈의 와스프로 유명한 캐나다 배우 에반젤린 릴리가 맡았다. 베일리는 돈만 생기면 로봇복싱으로 탕진해 버리는 찰리를 원망하다가도 맥스를 만난 찰리가 아톰과 함께 승승장구하며 철이 들자 찰리와 맥스, 아톰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베일리는 러브라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리얼 스틸>에서 그나마 히로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2대 캡틴 아메리카'이자 팔콘으로 유명한 앤서니 마키는 MCU에 합류하기 3년 전, <리얼 스틸>에서 찰리의 친구이자 내기를 주선하는 집단의 리더 핀을 연기했다. 핀은 찰리와 친구처럼 지내다가도 돈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냉정하게 대한다. 핀은 아톰과 제우스의 경기를 앞두고 제우스의 1라운드 승리에 10만 달러를 건 리키(케빈 듀랜드 분)로부터 모욕을 당한다. 하지만 핀은 1라운드가 끝난 후 리키를 끌고 가며 곧바로 자신이 받은 수모를 되갚아준다.

< 007 어나더데이 >에 출연했던 릭윤의 동생이자 한국계 배우 칼윤은 로봇복싱 챔피언 제우스를 제작한 천재 로봇 기술자 탁 마시도 역으로 출연했다. 제우스 팀의 실질적인 리더로 마지막 아톰과의 경기에서 제우스가 에너지 고갈로 고전하자 직접 나서서 제우스를 수동으로 조종한다. 하지만 이미 기세가 오른 아톰의 공격을 막지 못했고 판정으로 승리한 후에도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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