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보잘것없지만 부럽던 엘살바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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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홍수 시대다.
차량이 많이 지나는 사거리마다 내걸린 현수막 중에 각종 법사, 무속인 광고가 유난히 많아진 게 눈에 띈다.
우리나라와 엘살바도르의 첫 인연이 이렇게 시작됐다.
보잘것없으나 독립국이기에 부러웠던 엘살바도르는 지금 우리에게 훌륭한 커피 원두를 공급하는 나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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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홍수 시대다. 차량이 많이 지나는 사거리마다 내걸린 현수막 중에 각종 법사, 무속인 광고가 유난히 많아진 게 눈에 띈다. 불안한 시대에 느끼는 시민들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드는 광고 현상이다. 개인의 운명,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1948년 초 우리 국민 사이에는 통일을 향한 임시정부가 수립될 것이냐, 분단으로 향할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극심했다. 누구도 민족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1946년 봄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 이후 좌우 대립은 격화됐고, 통일의 희망은 점점 멀게 느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1947년 10월 미국이 주도한 국제연합 총회에 조선 문제가 제소됐고 남한만의 총선거와 외국 군대 철수, 그리고 이를 감시할 유엔위원단 파견이 결정됐다. 우리나라 신문들은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유엔위원단은 9개국으로 구성됐다.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들은 이들 국가 중 누구나 인정할 만한 캐나다, 중국, 프랑스, 호주를 제외한 다섯 나라를 흥미롭게 소개했다. 먼저 우크라이나가 관심을 끌었다. 16개 소비에트연방의 하나임에도 별개의 국가로 인정받아 위원단에 참여했다. 75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와 힘든 전쟁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미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1946년 7월에 독립을 승인받은 필리핀이었다. 필리핀의 독립과 위원단 참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1941년에 독립이 선언된 국가로 지역 산물인 석유의 이동 경로에 있던 시리아도 위원단의 하나였다. 당시 신문에서 장차 석유자원 쟁탈전의 한 지대가 될 나라로 묘사했던 시리아는 예상대로 국제 관계의 희생양이 됐다. 인도는 오랜 영국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1947년 8월 자치령의 지위를 얻은 상태에서 위원단에 참여했다. 분단을 눈앞에 둔 조선 민족에게는 부러운 나라였고, 당시 신문은 앞으로 우리나라와 “더욱 밀접해 갈 것으로 보이는” 나라로 묘사했다.
위원단에는 조선 사람들에게 꽤 낯설고 먼 나라가 하나 있었다.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작은 나라, 넓이는 조선의 경상남북도 크기, 인구는 불과 190만명 정도의 엘살바도르였다. 당시 신문은 엘살바도르를 “물산이래야 커피가 주요 생산품”인 “보잘것없는 나라”로 표현했다. “보잘것없는 나라”라고 했지만 독립국이라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와 엘살바도르의 첫 인연이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의 부러움을 샀던 우크라이나와 시리아는 현재 전쟁 혹은 내전의 고통 속에 있고, 필리핀은 여전히 혼란하고 불안정하다. 인도는 오랜 빈곤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지만 해결 과제가 많은 나라다. 보잘것없으나 독립국이기에 부러웠던 엘살바도르는 지금 우리에게 훌륭한 커피 원두를 공급하는 나라가 됐다.
알기 어려운 것이 나라의 미래다. 75년 후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로 남아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법사도 무당도 결코 알 수 없는 미래이기에 두렵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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