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프랑스인들이 단체로 나오시마를 찾는 이유…지추미술관

2023. 7. 1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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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애호가들이 일본 나오시마(直島) 여행을 꿈꾸는 것은 지추미술관을 보기 위해서다. 지중(地中)의 일본어 발음이 ‘지추’다. 말 그대로 땅속에 미술관을 조성했다. 이 세상 모든 미술관은 지상에 건물을 지어 만드는데, 나오시마에서만큼은 미술관이 지표 밑으로 들어갔다.

지추미술관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성인 2100엔.

하늘에서 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 전경. 사진=지추미술관

관람객들은 예약번호를 보여주고 티켓을 받는다. 지추미술관 화살표를 따라 아스팔트 깔린 2차선 도로를 건넌다. 아스팔트길 왼쪽에 아담한 연못이 보인다. 노랑꽃창포 등이 연못가에 피어 있다. 아기자기한 연못이다. 크기는 작지만 어떤 신비로운 기운이 어른거린다. 팅커벨 요정이 금방이라도 눈앞에서 붕붕 날아다닐 것 같다.

이 연못 이름은 ‘지추의 정원’이다. 정원을 이리저리 감상하는 데 어떤 느낌이 전해진다. 지베르니(giverny) 연못의 축소판이구나!

클로드 모네(1840~1926)는 1883년 파리 북서쪽 지베르니로 이사해 연못이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자포니즘(Japonism)에 매료된 모네는 정원을 일본풍으로 꾸몄다. 아치형 목조다리도 놓고 연못에 수련도 심었다.

지추미술관 입구에 조성된 모네 연못. 사진=조성관 작가

지추미술관 입구로 가는 길목에 왜 ‘지추의 정원’을 조성했을까. 미술관 감상을 위한 예열(豫熱)이다. 오전 10시 무렵, 연못이 시작하는 아래쪽에서 포즈를 취하면 사진이 가장 자연스럽게 잘 나온다. 인생 사진을 건질 수도 있다.

연못에서 나와 몇걸음 옮기면 야트막한 언덕길이 나온다. 길 왼쪽에 노출콘크리트 벽이 세워져 있다. 地中美術館. 그 앞에 차단 가로막이 내려져 있고. 예약 시간이 되면 직원이 나와 차단 가로막을 들고 입장권을 확인하며 차례대로 입장시킨다.

지추미술관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4년 개관했다. 안도 타다오(1941~)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장소’라는 개념으로 미술관을 설계했다. 지추미술관에 작품을 전시 중인 아티스트는 세 명. 관람순서대로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나는 여기에 한 사람을 더 포함한다. 안도 타다오. 지추미술관은 안도의 노출콘크리트로 설계되었다. 노출 콘크리트 미학이 집약된 곳이 지추미술관이다.

노출콘크리트 터널을 통해 지추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 관람객. 사진=조성관 작가

언덕길을 오르면 노출콘크리트 벽에 뚫린 직사각형 출입구가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신비한 노출 콘크리트의 세계가 기다린다. 관람객은 길쭉한 노출 콘크리트 터널을 지나간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안내등 하나 없는 직선의 회색 터널. 25미터쯤이나 될까. 관람객들은 이 터널을 걸으며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회색은 퇴색한 은색이다.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은 작업실을 팩토리로 칭했다. 워홀은 팩토리 내부를 알루미늄 호일로 감쌌다. 은빛은 모든 걸 소멸시켜준다고 워홀은 생각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콘크리트일뿐인데도 회색 터널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망자(亡者)의 세계로 들어갈 때 이런 기분일까. 이집트 피라미드 내부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베이징의 명13릉 묘지 속으로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다.

노출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지추미술관 중정. 사진=조성관 작가

노출 콘크리트 벽을 손끝으로 붓질을 하듯 쓸어본다. 매끈한 대리석을 만지는 것 같다. 콘크리트의 물성에서 어떻게 이런 질감이 느껴질까. 관람객들은 여기서 안도 타다오의 천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터널이 끝날 때쯤 노출콘트리는 살짝 틈을 열어준다. 그곳으로 자연광이 쏟아진다.

콘크리트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서 관람객들은 직사각형 콘크리트 정원과 만난다. 마음 놓고 햇볕을 호흡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지하 2층으로 내려간다. 도슨트가 지금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어달라고 말한다.

신발을 벗고 봐야 하는 모네의 작품

첫 번째로 만나는 작품은 모네다. 미술관 도슨트는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으라고 안내한다. 관람객들은 말없이 슬리퍼로 갈아신는다. 모네 미술품을 접하는데, 이렇게까지. 순간, 경건해진다. 대웅전에 들어가면서 옷깃을 여미고 신발을 벗는 불자의 모습이 스친다. 모네 작품을 영접하려면 이 정도의 예(禮)는 갖춰야 한다는 뜻인가.

모네 작품은 모두 다섯 점. 역시 자연광이 스며들게 설계했다. 인공적인 불빛은 없다. 전면에 보이는 가장 큰 그림이 ‘수련 연못’이다. 나머지 그림들도 수련 시리즈다. 지베르니 ‘물의 정원’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 다가간다. 다시 멀리 본다. 부분적인 붓질은 무질서하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보면 자연의 질서와 마이크로코즘(소우주)이 느껴진다.

다섯 점의 수련 연못 시리즈를 찬찬히 감상하다 보니 파리 오랑주리미술관 꼭대기 층에서 보았던 수련 프레스코가 떠올랐다.

순간, 어떤 생각이 연쇄적으로 스친다. 지추미술관에 모네 작품이 없다면, 세계의 예술애호가들이 나오시마를 찾을까. 프랑스인들이 왜 단체로 작은 섬 나오시마를 찾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제임스 터렐과 월터 드 마리아만 가지고 이토록 많은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모네가 있으니 터렐과 마리아도 빛나는 것이다. 19세기 인상파와 21세기 현대미술의 조화. 그렇다면 지추미술관은 어떻게 클로드 모네의 수련 시리즈 5개 작품을 소장하고, 영구 전시할 수 있었을까.

모네 관을 나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네는 인상파 화가 중 고흐와 함께 자포니즘에 열광한 아티스트다. 얼마나 일본미술을 좋아했으면 자기 아내에게 기모노를 입히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을까. 아마도 오랑주리 미술관이 ‘수련 연못’ 시리즈 5점을 나오시마의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한 데는 클로드 모네의 일본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빛으로 새로운 경험을 창조한 제임스 터렐

제임스 터렐의 오픈 스카이(Open Sky).사진=조성관 작가

두 번째 아티스트는 미국 LA 출신의 제임스 터렐(1943~)이다. 빛과 공간만으로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창조해낸 아티스트. 모네 방을 나와 도슨트를 따라간다. 천장이 정사각형으로 뚫린 빈 공간이 보인다. '오픈 스카이'다. 몇몇 관람객들이 앉아 정사각형 하늘을 바라본다. 정사각형 하늘은 단 한 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고 시시각각 변한다. 하늘은 지금까지 무심코 보던 그 창공이 아니다. 창공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관람객들은 신발을 벗고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긴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잠시 계단 위에 있는 직사각형 공간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필설로 형언하기 힘든 어떤 기운이 공간에 서려 있다. 이어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간다. 직사각형 안에는 또 다른 3차원의 공간이 전개된다. 관람객들은 조심조심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청각을 닫으니 시각이 열린다. 동시에 몰입의 소용돌이에 빨려든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적 세계로 들어선 것 같다.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빛의 세계 앞에서 인간의 지각은 한없이 왜소해진다. 터렐은 예술 감상을 뛰어넘었다. 이것은 종교적 체험이다.

월터 드 마리아는 사계절을 구체에 담아

다시 터렐 방을 나와 도슨트를 따라 한 층을 더 내려간다. 이제 다시 노출콘크리트 미학을 대면하는 시간이다.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삼각형 중정이 나타난다.

월터 드 마리아(1935~2013)의 ‘시간/영원/시간 없음’. 계단이 20여개 보인다. 그 위에 직경 2.2m의 검정색 구체(球體)가 놓여있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의 제단에 놓인 검은 공 같다. 그 검정색 볼 위로 직사각형 빛이 떨어진다. 그 빛은 무정형(無定形)이다. 시간에 따라 대기의 흐름에 따라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서 있는 계단의 위치에 따라, 관람객의 눈높이에 따라 구체에 반사되는 모양이 변한다. 검정색 구체는 거울처럼 자연을 반사한다. 관람객들은 자신이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비치는 구체에 감탄한다. 마리아가 창조한 빛·시간·공간의 예술에 소리 없는 탄성을 지른다. 관람객은 방관자가 아니라 작품의 주연으로 당당하게 참여한다. 내가 보는 것을 내가 관찰하는 진귀한 경험이다.

한 시간 반의 투어를 마치고 미술관 카페에서 발아래 펼쳐진 세토 내해(內海)를 내려다본다. 섬 위에 미술관을 지으면서 산의 형세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은 타다오의 창조적 설계. 모네, 터렐, 마리아, 그리고 타다오. 네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은 ‘빛’이었다.

수련(睡蓮)은 햇살이 비치는 낮에만 꽃봉오리가 열리는 수중식물이다.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빛이고,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것도 빛이다.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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