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국과 멀어질 결심…"체제의 라이벌" 교역도 줄인다
독일이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필수 파트너이자 경제적 경쟁자, 체제의 라이벌’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對) 중국 전략’을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그간 독일은 중국과 거리두기에 들어간 유럽연합(EU)과 달리, 중국과 밀착하며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전략을 통해 EU의 대중 전략인 ‘디리스킹(위험 제거)’에 대한 지지를 명확히 밝히고, 친중(親中) 정책을 펼쳤던 ‘메르켈 시대’와의 결별을 공식화했다.
독일 연립정부는 이날 내각 회의를 통해 독일 최초의 ‘포괄적 대중 전략’을 의결했다. 앞서 올라프 숄츠 총리는 2021년 사회민주당·녹색당·자유민주당과 함께 ‘신호등 연정’을 구성하며 종합적인 내용의 중국 전략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연정 내 시각 차이로 수개월간 격론을 거치며 장기간 지연되다 이날 최종 승인됐다. 독일 외무부가 작성한 64쪽 분량(독일어 버전)의 이 전략 문서는 향후 중국과 관계를 맺는데 기본 원칙으로 적용된다.
"中과 디리스킹, EU와 밀착"
이날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MERICS)에서 중국 전략에 대해 직접 설명하며 “중국은 변했고, 중국에 대한 독일의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면서 “독일은 중국과 디커플링(분리)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제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독일 기업에게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교역 대상 다양화와 공급망 다각화를 주문하며 “중국 시장에 의존하는 기업은 앞으로 더 커지는 위험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지정학적 위기 발생 시 뒤따르는 위험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기업을 구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기업들이 호시절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따르고, 위기가 오면 국가의 ‘강한 팔’에 의지하려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외무부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경제적 측면에선 수천억 유로에 달하는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는 유지하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는 크게 줄이는 게 주요 목표다. 외교적으로는 중국을 체제 라이벌로 인식하며, 중국이 일당독재 체제의 이익에 의거해 국제질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하는 것을 우려한다는 시각을 담았다. 중국은 인권상황을 상대화하는 등 규칙에 기반한 질서의 근원을 흔들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또 중국 정보기관의 첩보 활동과 방해 공작 등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U와는 더욱 강하게 밀착한다. 독일은 EU 파트너들과 협력해 중국 투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독일의 대중 투자를 검토하는 메커니즘 도입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중국이 EU의 개별 회원국에 대해 적대적 조치를 단행하면, 독일은 EU와 공동 대응할 것이라고도 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추진했던 EU의 대중 투자 협정에 대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 문서는 오늘날 중국과 그 의도에 대한 냉정하고 통렬한 견해를 제시했고, 양국 무역이 꽃피웠던 메르켈 전 총리의 시대와의 단절을 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의 친중 정책에 일급 장례식"
앞서 메르켈 전 총리는 독일의 수출 산업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중국에 유화적인 노선을 견지해 ‘유럽에서 가장 중국에 우호적인 지도자’로 불렸다. 특히 인권 등 이념적 가치보다 경제 등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며 16년 집권기 내내 친중 정책을 이어갔다.
이 결과 중국은 지난해까지 7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교역량은 사상 최대인 3000억 유로(약 426조원)에 달했다. 로디엄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21년 중국에 유입된 해외투자액(FDI)의 43%를 독일이 차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특히 유럽의 대중 투자액 중 절반이 독일에서 이뤄지며, 독일 제조업의 절반은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3연임을 시작하면서 독일의 불안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만약 중국의 실제로 대만 침공을 감행할 경우, 글로벌 공급망 혼란 및 독일 기업의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차단 가능성 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날 베어보크 장관이 대중 전략을 설명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독일의 에너지 대란을 되새기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코 후리타오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개전 1년 여 만에 위기 관리의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게 됐다”면서 “이는 독일의 외교 정책을 재조정하는 큰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공공정책연구소의 설립자 토르스텐 베너 역시 “이번 중국 전략은 중국을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로 바라본 메르켈의 망상에 대한 일급 장례식”이라고 전했다.
獨기업 "대중 투자 늘릴 것"
다만 독일 정부의 중국 전략의 실효성은 대중 투자를 늘리고 있는 독일 기업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렸다. 그간 독일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숄츠 내각의 구상과 달리 대중 투자를 늘려왔다. 지난 1월 독일의 자동차부품 기업 보쉬는 중국에 10억 달러(약 1조2600억원) 규모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엔 독일 종합화학회사 바스프(100억 유로, 약 14조원), 폭스바겐(24억 유로, 약 3조4000억원), BMW(100억 위안, 약 1조8000억 원) 등이 줄줄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다.
폭스바겐의 중국 책임자인 랄프 브랜드스타터는 “중국은 역동적인 성장 시장이자 핵심 기술 혁신 동인”이라며 “폭스바겐과 독일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매우 중요한 곳으로, 대중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NYT에 전했다.
한편 이날 베를린 주재 중국 대사관은 독일의 ‘새 중국 전략’에 대해 “독일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기를 희망한다”면서 “중국은 독일의 라이벌이 아닌 파트너”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념적 편견과 경쟁 불안에 기반한 디리스킹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인위적으로 위험을 키울 뿐”이라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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