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넘치는데 車산업 전멸…호주, 동남아에 6700억 '통큰 원조'

임주리 2023. 7.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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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연합)에 6700억원에 달하는 ‘통 큰 원조’를 약속했다. 전기차·배터리 산업 기지로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협력해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노림수가 깔린 행보다.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이 13일(현지시간)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자카르타글로브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은 이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동남아시아와의 관계 강화는 경제·안보 측면에서 호주의 최우선 과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 내년까지 총 5억3000만 달러(약 6700억원)가량의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웡 장관은 또 “2040년까지의 ‘동남아 경제 협력 장기 전략’도 곧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는 지난 4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해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지고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데 이은 것이라 더욱 주목받았다.

지난 4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이 호주를 방문해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최대 리튬 생산국’이지만 자동차 산업 전멸


호주가 동남아시아에 부쩍 공을 들이는 건 미래 성장동력이 될 전기차·배터리 산업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의 절반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 생산국’ 호주는 배터리 소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을 꽉 쥐고는 있지만, 정작 가공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기차·배터리 산업을 키울 역량은 부족하다. 한때 포드·GM·도요타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호주에서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2016년 포드를 시작으로 줄줄이 철수해 자동차 제조업이 ‘전멸’했기 때문이다. 인구(2600만 명)가 적어 시장은 크지 않은데 임금이 너무 높았던 탓이다.

반면 동남아시아는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기지이자 소비시장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척 큰 지역이다. ‘전기차 핫플’로 떠오르고 있는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중·일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데다, 베트남까지 뛰어드는 등 앞으로 성장세는 더욱 가파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호주와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자동차 산업에서 ‘쓴맛’을 한번 본 호주 정부가 재빨리 동남아시아에 손을 내민 이유다.

인도네시아의 한 니켈 생산시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호주가 점찍은 나라는 배터리의 또 다른 핵심 원료인 니켈 1위 생산국 인도네시아다. 이 나라는 2040년까지 전 세계 배터리 생산국 5위 안에 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데, 그러려면 리튬이 필요하다. 두 나라가 기술·자본 협력을 통해 배터리 산업을 구축하면 글로벌 시장을 뒤흔들 파급력을 지니게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베트남에는 이미 진출해 있다. 앞서 지난 5월 호주 정부는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그룹의 배터리 자회사 빈에너지솔루션에 50만 달러(약 6억원)를 지원했다. 베트남의 ‘배터리 기술 개발과 지속가능한 생산 강화’를 목표로 아시아개발은행(ADB) 등과 함께 추진한 일이다. 빈그룹의 자동차 계열사 빈패스트에 전기차 인프라와 관련해 5000만 달러(약 630억원)를 투자한 데 이은 결정이었다.

호주 싱크탱크 로이연구소는 “호주가 자국 내에서 배터리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일은, 이미 자동차 산업이 붕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호주의 기회는 동남아시아와 손을 잡는 데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제·가공업에 더욱 투자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동남아와는 협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연구소 측은 “전기차·배터리에 쓰일 핵심 광물을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동남아에 정제·공급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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