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국책사업… 또 밀린 주민들

박성영 2023. 7. 1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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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고속도로까지 세운 극단의 정쟁


대형 국책사업이 정쟁과 진영논리, 지역주의 갈등 속에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정권마다 반복되고 있다.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내고 제기된 의혹들을 해소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싸움을 키워 사업을 더욱 꼬이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발생한 사회적·경제적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됐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일 사업 중단을 선언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여야 정쟁에 의해 멈춰선 대표적 국책사업으로 기록될 처지에 놓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유력하게 검토되던 고속도로 노선 종점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특혜 의혹을 제기한 게 발단이 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특혜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도 “김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을 말릴 방법이 없다”며 사업 중단이라는 강수를 뒀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민주당이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멈추고 사과하지 않으면 사업을 재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김 여사 일가 땅을 종점으로 하는 노선이 아닌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던 원안대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맞서는 중이다.

여야가 서로 물러서지 않으면서 2008년부터 해당 사업을 추진해온 양평군민들만 애를 태우고 있다.

갈등 조율 대신 확전 부추긴 정치권

여야의 ‘강대강’ 대치 속에 국책사업이 엎어질 위기에 처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방부는 우리나라 수출입 물량의 대부분이 제주 해역을 지난다는 점을 근거로 1993년부터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2007년부터 기지 건설 사업이 추진됐다.

그러나 사업은 ‘제주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군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는 반미단체와 ‘제주도 환경이 파괴된다’는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정치권도 논란에 가세했다. 2011년 이명박정부가 기지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당시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이 사업이 ‘친미’ 행보라며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 이에 여당은 “노무현정부 때 사업을 시작해 놓고는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말을 바꿨다”고 반격했다.

반대시위 등으로 공사는 14개월가량 중단됐고, 정부는 약 275억원의 공사지연배상금을 시공사에 물어줘야 했다. 결국 대법원이 2012년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적법하다는 판단을 내린 뒤에야 공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제주해군기지는 사업이 추진된 지 9년 만인 2016년에야 완공됐다.

게티이미지뱅크


2003년부터 추진된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지율스님과 환경단체 등이 “터널 공사로 천성산 습지 및 도롱뇽 서식지가 파괴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터널을 뚫으면 천성산의 생태계 자체가 파괴된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지율스님은 100일간 단식 투쟁을 하는 등 강경하게 사업에 반대했다. 2005년 여야 의원 100여명이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촉구 결의안’에 서명했고, 터널 공사는 일시 중단됐다.

공사가 수차례 중단된 끝에 터널은 2010년이 돼서야 개통됐다. 환경부는 최근 사후환경영향조사 결과 공사 후 도롱뇽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년 걸린 동남권 신공항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된 사례도 있다. 내년부터 공사가 시작될 예정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2002년 김해국제공항에서 중국 민항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동남권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신공항 건설 검토를 지시하면서 동남권 신공항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시 부산 울산 대구 김해 등이 신공항 유치에 적극 나섰지만, 서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 논의는 더디게 진행됐다.

이후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으로 후보지가 압축됐다. 그러나 과도한 유치 경쟁 속에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과 밀양을 지지하는 대구·경북·경남 사이의 갈등이 고조됐다. 결국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신공항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기에 이르렀다.

2016년 박근혜정부는 신공항 건설 대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김해신공항’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논란이 이어지면서 검증위원회가 구성됐고, 검증위는 2020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야는 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둔 2021년에야 가덕도에 신공항을 설치하는 특별법을 합의 처리했다. 정치권이 이해관계 조율에 계속 실패하면서 사업 논의에만 2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격화된 여야 갈등이 국책사업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어떤 이슈든 남 탓만 하기 위해 ‘물타기’를 반복하고 서로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양당이) 각자 물러나면 무너진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책사업 추진에 있어 여야가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국책사업은 1~2년 사이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여야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공동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조정하고 타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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