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수술 후 처방전은 ‘교회 3번 가기’… 육체와 영혼 함께 치료

정홍준 2023. 7. 1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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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적 신경외과 전문의
부산 척시원병원 장의성 원장
장의성 부산 척시원병원 원장이 지난달 29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의술을 통한 하나님의 일터 사역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부산 동구 척시원병원에는 우리말을 유창하게 말하는 대만 국적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다. 부산 사투리까지 척척 해내는 말솜씨가 외국인이 아닌 소박한 옆집 아저씨 같다. 그의 책상에는 의료 서적보다 성경책과 신앙서적이 더 많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진료와 수술을 집도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의사란 직업에 항상 감사하고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는 장의성(63·부산 호산나교회 안수집사) 원장을 지난달 29일 병원에서 만났다.

장 원장은 어린 시절 얘기부터 꺼냈다. 부친은 중국 산둥 출신으로 6·25전쟁 전 한국으로 피난 와 장 원장의 모친을 만나 가정을 이뤘다. 장 원장은 “어린 시절은 가정불화와 불우한 환경 속에서 ‘왜 사는지’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살았고 ‘고려 사람’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으며 억척같이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밤 아버지가 귀가하는 발소리에 가슴을 졸이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울컥했다. 장 원장은 부산화교중학교 3학년 때 목회자 아들이었던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녔고 세례도 받았다. 17살에 서울한성화교고등학교로 전학했는데 당시 그의 부친은 그가 식사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너희 밥 먹여주는데 누구한테 기도하냐”며 꾸짖었다고 한다.

장 원장은 고3 시절 이런 아버지 곁을 떠나고 싶어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부산대 의대에 합격 후 아버지의 첫 마디는 축하와 격려가 아닌 의심으로 가득 찬 얼굴로 “얼마 썼냐”였다. 당시는 부정부패가 난무했던 시절. 부친은 그런 사회적 비리를 염두에 두고 꺼낸 말이었지만 장 병원장에게는 평생 잊지 못하는 아버지의 어두운 모습이었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장 원장의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질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 탓에 ‘하나님 아버지’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순탄한 신앙생활을 잇지 못했다. 신앙은 흔들렸고 교회도 등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의사 일이 너무 힘들어 교회를 찾았다. 그때 간 곳이 한성화교교회였다. 이때 도움을 준 지인과는 지금까지 연락하며 의형제처럼 지낸다. 그의 아내 조미경(62) 집사도 20여년간 새벽기도를 다니며 장 원장 가정을 위해 기도했던 사람이었다.

장 원장은 서울 부산 포항 상하이 등지의 병원에서 13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는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던 2015년 부산 척시원병원 원장으로 부임한 후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다. 환자들을 보는 인식과 생각이 많아 달라졌다.

그는 “그동안 제가 받은 상처보다 제가 준 상처가 많았음을 깨닫고 아버지와 모든 친구, 선후배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내려놓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환자들에게도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환자들에게는 치료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다. 또 개인 신앙문제도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가 항상 환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질문이 있다 “신앙 있으세요?”

장 원장은 신앙이 없는 환자들에게 지역교회를 소개해주고 있다. 교회를 찾아간 환자(가운데)가 보내준 인증사진. 오른쪽은 서수관 부산 양정교회 목사.


장 원장은 어느 날 75세 여자분이 찾아와 “살려주이소” 하며 자신을 붙잡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이처럼 간절히 붙잡아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는 수술 후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살아나셨으니 제 처방전 받으세요.” 장 원장은 환자의 주소지에 가까운 교회를 소개시켜 주었고 ‘이 교회에 3번 가기’라는 그만의 특별한 처방전을 써줬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환자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답했고 환자는 해당 교회에 출석해 인증 사진까지 찍어 보냈다. 장 원장은 환자들이 수술 결과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교회 3번 가기’에 순응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 원장은 환자들이 보내 준 여러 장의 인증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혼 구원의 기쁨이 있다”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방의 작은 교회 목사님은 직접 병원을 찾아와 ‘성도를 보내줘 고맙다’고 감사 인사까지 하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필리핀으로 의료선교 비전트립을 떠난다. 벌써 세 번째다. 장 원장은 “늘 주님이 동행하시는 것을 믿으며,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는 그 신앙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장 원장은 병원 내 신우회 조직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 모든 직원이 하나님을 믿고 같은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꿈꾼다. 이 꿈을 위해 성경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중보기도학교 성경탐구 성경강해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등 과정을 이수했고 제자훈련과 사역훈련 등의 훈련도 마친 상태다.

장 원장은 “환자들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그들의 영혼 구원에도 힘쓸 생각”이라며 “‘신앙 있으세요?’ ‘교회 3번 가기’라는 꼬리표가 붙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명의보다는 환자들의 육체와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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