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빠듯한 일정 쪼개 회동…러와는 온도차, ARF 외교방정식

정진우 2023. 7. 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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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긴장 해소, 러시아의 역할 촉구, 북한을 향한 최대 압박.

박진 장관은 13~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이같은 외교 기조를 선명히 드러냈다.

박 장관은 14일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의 하이라이트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별도의 한·중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다. 이번 회담은 양국이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에 따른 긴장 관계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에서 열렸다.


일정 쪼개 대면한 한·중…관계 진전에 공감대


회담은 당초 13일로 예정됐지만 일정 상의 이유로 무산됐고, 결국 박 장관과 왕 위원은 이날 ARF가 진행되는 도중 가까스로 회동했다. 빠듯한 일정 속 시간을 쪼개 회담에 나선 것 자체가 양국의 대화·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중 갈등 국면이 일부 해소되고 협력 강화로 나아갈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3일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는 박진 외교부 장고나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공동취재단

실제 박 장관과 왕 부장은 이날 회담에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 정상 간 상호 방문을 포함해 양국 교류 활성화에도 뜻을 모았다. 왕 위원은 지난 10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자리에서도 “중·한 관계는 정체돼선 안 되고 퇴보는 더더욱 안 된다. 양국 관계가 광활한 발전 전망을 열어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는데, 이같은 기조가 공식 회담을 통해 한층 선명히 드러난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공력을 집중했던 ‘한·미 동맹 강화→한·일 관계 개선→한·미·일 공조 강화’에 이어 ‘한·중 관계 재정립’을 핵심 외교 과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박진 강조한 "북핵 공조" 메시지, 아세안도 호응


반면 박 장관은 핵·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북한에 대해선 기존의 강경 대응에서 한발 더 나아간 ‘최대 압박’ 기조를 드러냈다. 특히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개최 전날인 지난 12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것은 국제사회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도발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아세안 국가 외교장관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박진(왼쪽 다섯째) 외교부 장관. 공동취재단

박 장관은 지난 13일 일본·인도·호주와의 양자 회담에서 북핵 공조를 핵심 의제로 다루는 등 모든 회담과 회의에서 북핵 공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과 아세안 국가 외교장관들은 그간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통상 ‘우려’를 표명하는 선에서 대응 수위를 조절하던 것과 달리 이번 회의 기간엔 “규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한국의 공조 요청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장관은 이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서도 “북한의 행태 변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단결해야 한다”며 “북한의 핵 개발 의지보다 EAS 차원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더 확고함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각국의 북핵 공조 의지를 확인한 뒤 이날 북한에 대한 추가 독자 제재를 단행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0번째인 이번 독자제재엔 정경택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개인 4명과 칠성무역회사 등 기관 3곳을 제재 대상으로 신규 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라브로프 향해 '북한 감싸기' 우회 압박


14일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박진 외교부 장고나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뉴스1
이번 회의 기간 한·러는 별도 외교장관 회담을 하지 않았다. 다만 박 장관은 지난 13일 저녁 리셉션장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한국이 내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임기를 시작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러시아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안보리에서 한국과 긴밀히 소통하며 건설적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국 간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러시아에 북핵 문제와 관련한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는 의도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박 장관이 “안보리에서의 건설적 역할”을 언급한 건 러시아가 비토(veto·거부)권을 행사하며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제재를 막아서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압박성 메시지에 해당한다.

실제 안보리는 지난해 5월 이후 줄곧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른 추가 대북제재 결의와 의장 성명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러의 반대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북한의 ICBM 발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안보리 공개회의 역시 빈손으로 끝났다. 제프리 드로렌티스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중·러를 겨냥해 “2개 이사국의 반대로 안보리가 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자카르타=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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