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에 박수, 야당 의원에 야유... '오염수 걱정' 제주도의 민심 [수산봉수 제주살이]

이봉수 2023. 7. 1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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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봉수 제주살이] 핵오염수 저지 2차 제주범도민대회에서 벌어진 일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진정한 미디어와 인문학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내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 <편집자말>

[이봉수 기자]

지난 12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2차 제주범도민대회'에서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집회 참여자 300여 명이 가장 냉담한 반응을 보인 연사는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시갑)이었다. 연사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열렬히 환호하던 청중들은 송 의원이 소개되자, 누가 선동한 것도 아닌데, 환호도 박수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송 의원이 미안해 하면서도 당 차원에서 저지 투쟁에 앞장서겠다고 각오를 밝히자 청중 가운데서 "지금까지 뭐했냐" "민주당 내려와라"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송 의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안 그래도 곧 내려가겠다"면서 한동안 연설을 이어가다가 하단했다.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이들
 
▲ 연단에 오른 해녀들 해녀들이 전래의 잠녀복을 입고 연단에 올라가 발언을 하고 있다. ⓒ 이봉수

이날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집단은 해녀들이었다. 대개 70대로 보이는 이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우리를 마지막 해녀로 만들지 마라!'는 펼침막을 들고 전래의 잠녀 복장을 한 채 입장해 카메라 플래시가 집중됐다. 고산리 해녀 대표로 나온 장순덕(72)씨는 일본과 한국 정부를 비판하면서 후손을 위해 바다를 깨끗하게 보존하자고 호소했다.

"아무것도 없이 한평생 물질해서 살아왔는데 오염수를 바다에 뿌리면 어떡합니까? 그 물이 좋다면 공업용수로 쓰든 식수로 쓰든 자기 나라에서 처리해야지 왜 깨끗한 바다를 오염시킵니까? 우리만 죽습니까? (…) 오늘도 저는 물질을 갔다 왔습니다. 짠물을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라 파도가 치면 그 물을 먹을 수밖에 없고 우리가 피해를 보면 그 해녀 밑에 저희 후손들이 있습니다. 깨끗한 바다를 후손에게 물려줍시다."

"민주당이 '한다'가 아니라 '했다'는 말 듣고 싶다"

대회가 열린 날 조승환 해양수산부장관은 제주시 구좌읍 한 넙치양식장을 방문해 '방사능 검사 안전필증'을 발부했다. 정부여당의 기만적 태도에 제주민의 분노가 훨씬 크지만, 제1야당을 향한 도민의 분노도 상당히 크다. 그 사실은 현장발언 시간에 발언권을 얻은 한 고등학생(17, 정근효)의 말에서 드러난다. 

"민주당 한 거 없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핵오염수 투기저지를 하겠다는 건지 윤석열 정부를 끌어내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진보정당과 청소년들이 (핵오염수 투기) 이야기할 때 '민심'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국민이 (거의) 다 반대하고 있으니까 내년 총선에서 의석수 더 얻겠다고 나오는 거 아닙니까? (…) 국민을 위하는 게 진정 무엇인지, 이거 당신들 돈으로 당신들이 주최해야 하는 겁니다. 언제까지 '한다'는 얘기나 할 겁니까? '했습니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 진보정당 시위참여자 진보당, 녹색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 당원들은 숫자가 적었지만 깃발과 조끼로 소속을 밝히고 끝까지 집회와 시위를 함께했다.
ⓒ 이봉수
 
사실 송재호 의원은 제주도 출신 세 의원 가운데 그나마 유일하게 2차 범도민대회에 처음 참석했다가 '봉변'에 가까운 냉대를 한몸에 받았다. 송 의원은 지난 8일 '어촌계 및 해녀 현장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대책위원장인 위성곤 의원(서귀포시)은 범도민대회 당일 일본에서 입헌민주당 아베 도모코 의원과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제주시을 지역구 출신인 김한규 의원은 범도민대회가 열리던 시각에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회 사회를 맡은 채호진 전국농민회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은 "민중의 삶 문제를 정치인들이 해결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3일 1차 범도민대회에는 제주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 셋이 모두 불참했다. 당시 한경면 고산리에서 왔다는 한 해녀는 인터뷰에서 "명색이 범도민대회인데 국회의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며 "그래도 선거철 되면 또 표 달라고 할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다음 대회에는 오겠지"라며 야당을 향한 기대감을 아주 버리지는 않았다.

2차 범도민대회에 참여한 이길주 제주대 철학과 강사는 제주 출신이면서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이 핵오염수 바다 투기와 관련한 자국민의 반대 의사를 적극 수렴하기는커녕 과거에 한 말까지 뒤집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때는 원희룡을 큰 정치인으로 키우려던 제주민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제주도지사이던 2020년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이미 일본과 미국의 입김이 워낙 센 기구"라며 "원자력기구가 안전하다고 그랬지만 상대방 주장을 넙죽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단 한 방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지난 4월 4일 대정부질문에서는 "정부의 의사결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답변했다.

원희룡 장관과 김한규 의원은 제주도에서 '엘리트 정치인'으로 각광받아 왔다. 원희룡은 고교를 졸업한 뒤 제주를 떠났다. 그러나 제주도민 상당수는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 법대 수석, 사법시험 수석이라는 학력 그리고 검사와 한나라당 3선의원(양천구) 경력을 쌓은 그를 제주의 대표 정치인으로 키우려 했다. 현재 오영훈 도지사와 국회의원 셋 모두 민주당인 사실이 보여주듯 반보수 성향이 강한 제주도민들이 그를 두번이나 도지사로 뽑아준 이유다.
 
▲ 원희룡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 백지화, 정치 생명 걸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를 가진 뒤 소통관에서 브리핑 하던 중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 백지화, 정치 생명 걸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른쪽은 김정재 국민의힘 국토위 간사.
ⓒ 남소연
 
그런데 그는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을 맡더니 제주도민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핵오염수 방류에 동조했다. 한때 노동운동을 한 그가 건설노동자에게 '건폭' 프레임을 씌우는 데 앞장서고 건설노동자 양회동씨의 죽음에도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또 양평-서울 고속도로 구간이 수도권 최악의 상습정체지역임을 잘 아는 교통 주무장관이면서도 고속도로 건설을 백지화했다.

민의와 진실을 외면한 '배신의 정치'

원희룡 장관의 화려한 변신은 모두 '배신'이라는 열쇠말로 설명될 수 있다. 민의와 진실, 주민의 이해관계와 대의명분은 그의 출세가도에 걸림돌이 되면 '상습적 배신'을 해왔기 때문이다. 몇몇 진보논객이 지적했듯이 그는 초강경 보수 이미지로 '윤석열 이후'를 노리고 있는 듯하다. 잇단 경선 실패와 윤석열의 성공신화가 배신의 유혹에 빠지게 만든 걸까? 한나라당 합류 명분이던 '합리적 보수'는 이제 거추장스러운 훈장이 됐다.

김한규 의원 역시 고교를 졸업하고 제주를 떠났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기업 인수합병 등의 일을 하다가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땄다. 

그는 민주당 입당 후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 의해 법률대변인으로 발탁됐고 문재인 대통령 말기에는 이철희 정무수석에 의해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이철희는 지난봄 제주시을 지역구 보궐선거 때 제주에 와서 "지금 여당의 원희룡으로 성장할 인물이 제주도에 왔다"고 추켜세웠다.

지난 6일 김한규 의원은 원희룡 장관을 겨냥해 "체급이 한참 위인 이재명 대표님께 자꾸 붙자 하지 마시고 제주시을로 오셔서 저랑 한판 붙으시죠"라는 글을 사회관계망에 남겼다. 원 장관이 이재명 대표에게 "민주당 간판 걸고 한판 붙자"고 한 말을 치받은 것이다. 거물 정치인과 대결 구도를 만들어 체급을 올리려 한다는 점에서 둘의 정치 행태는 다소 비슷한 데가 있다.

'이미지 분칠용' 인재 영입의 파탄

우리나라 정치인 성장 과정은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린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기초 자치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인지도를 높이고 경력을 쌓아 점차 중앙 정치인으로 커간다. 우리처럼 거물 정치인이 자신의 '이미지 분칠용'으로 민중의 삶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이른바 '전문가'를 영입하는 사례는 드물다. 
 
▲ 핵오염수 저지 거리시위 제주시청 앞에서 범도민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해녀들을 선두로 이도광장까지 시위를 했다.
ⓒ 이봉수
 
전략공천으로 충원된 정치인들은 서울에서 위만 바라보면서 선거 때 말고는 자기를 뽑아준 지역민을 업신여기게 된다. 경조사와 동창회 같은 사적 모임에 뻔질나게 얼굴을 내밀라는 뜻이 아니다. 지역 여론을 정치에 반영하고 지역민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라는 것이다. 국가적 현안이 논의되는 정치 집회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것은 정치인의 직무유기다. 정치인이 시위대 맨 앞에 서는 모습은 유럽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지역 집회를 경시하는 엘리트 정치의 모순은 한국에 유별난 서울중심주의에 의해 확대된다. 정책 결정에 관한 한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에 가깝다. 대부분 정치인이 당선되면 서울에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은 탈식민지의 한 단면이다. 학자들은 지방 엘리트의 탈출 현상을 '탈지역화' '탈영토화' 등으로 설명한다.

중앙정치 움직이는 힘, 지역공동체에 있다

중요한 건 중앙정치를 움직이는 힘도 지역공동체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미국의 흑백차별 철폐운동이 노예해방을 주도했던 북부가 아니라 남부에서 성과를 거둔 이유가 뭘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북부에는 없는 흑인공동체가 남부에는 탄탄하게 구축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에서 민중항쟁이 그렇게 잦고 치열했던 이유도 지역민의 의사를 중앙정부에 전달할 통로가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 파견한 목민관이 학정을 저질러도 출륙금지령에 묶여 억울한 사정을 전할 길이 막혀 있었다. 제주 출신 정치인마저 고향을 외면한다면 왕조시절과 무엇이 다르랴.

김한규 의원은 2차 범도민대회에 본인이 참석하는 대신 '제주시을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쓴 장대 깃발을 보냈다. 모든 깃발이 시가행진에 나서는데 민주당 깃발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깃발은 나부끼는데... 왼쪽 앞에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깃발, 오른쪽 뒤편에 제주시을 지역구 깃발이 나부끼고 있지만 이들은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다. ⓒ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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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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