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만들어지는 동안 위험한 화재 감시는 우리가 합니다"

메밀 2023. 7. 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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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거제 대우조선 화재 감시원 지세포님 인터뷰

[메밀]

울산 석유화학단지 내 거듭된 폭발 및 화재사고, 대전 타이어공장 화재사고 등 2023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잇따른 산업현장 화재와 그로 인한 인명 사고가 거듭되면서 2017년 3월부터는 화재위험작업 시에 화재감시자 배치를 의무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접·용단 현장의 화재신고만 한 해에 1000건이 넘는다.

수많은 불꽃 속에서 쇳덩어리가 모양을 잡고 자리를 찾아가는 동안, 그 곁에는 현장에서 화재 위험을 감시하고 화재 발생 시 사업장 내 노동자의 대피를 유도하는 화재감시원이 있다. 거제지역 조선소 화재감시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세포' 님을 만나 화재감시원 노동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일터인 조선소도 사랑하게 됐어요"
 
 용접 작업 근처에서 업무 중인 화재감시원.
ⓒ 고여사
 
-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 이름보다 지세포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닉네임 '지세포'로 저를 소개할까 해요. 부산 사람인데 거제에 온 지는 20년이 됐어요. 여러 동네를 거쳐 지세포(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 왔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지세포를 사랑하면서 거제도도 사랑하게 되었고,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일터인 조선소도 사랑하게 됐어요. 화재감시 일을 한 지는 햇수로 5년 차입니다."

- 반갑습니다! 조선소, 그리고 조선소 화재감시원의 일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요. 먼저 하루 일과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는 아침 일찍 시작해요. 집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7시 55분쯤 체조를 하고 8시 정각에 아침 조회에 들어가요. 8시가 조금 넘어 조회가 끝나면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돼요.

조회에서 들은 업무배치대로 작업구역을 돌며 화재감시업무를 해요. 한 작업구간에만 있는 건 아니고, 화기를 사용하는 구간들을 위험한 정도에 따라 돌아가며 감시해요. 150에서 300미터까지 길이의 배 전체를 횡으로 네다섯 블록으로 나누는데, 블록마다 밑에서 올라갈 수 있는 구멍이 있어요. 그걸 창이라고 해요. 반장이 전화해서 어디로 가라고 하면 그 구간으로 가서 일해요. 작업 상황에 따라 그 창 안에만 하루 종일 있을 때도 있어요. 보통은 취부작업(가용접 작업)에 우선 배정해요.

소화기 위치를 점검하고, 혹시 전선이 땅에 끌리지는 않은지, 용접·용단 현장에서 가연성 자재가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보고, 그런 자재가 있으면 치우고, 일정 반경에 안전띠를 둘러치고, 그런 일이 다 화재감시원이 하는 일이죠. 소방관의 선행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애초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처리하고 관찰하는 일을 하니까요. 화기작업이 많은 조선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직군이죠. 조선소의 정식 퇴근시간은 5시이고, 통상 6시에 끝나는데, 화기업무가 이어지면 일을 더 해야 할 때도 있어요."
 
 조선소에는 늘 화재 위험이 있기 때문에 화재감시원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 고여사
 
- 화재감시원의 일터를 좀 더 자세히 떠올려 보게 되네요. 조선소에서는 화재가 얼마나 발생하나요?

"화기작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작은 불은 매일 일어나요. 그렇지만 현장에 있는 화재감시원뿐만 아니라 주변에 계시는 작업자분들이 초기 진압을 굉장히 신속하게 해요. 처음에는 정말 무서웠어요. 쇠도, 불도 막 이렇게 날아다니고, 경황이 없더라고요. 업무 첫날, 제가 보던 곳에 불이 나기도 했습니다."

- 화재사고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화재감시원의 책임은 정말 막중하네요. 동시에 매뉴얼과 현장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화재가 처음부터 크게 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화재감시원은 소화기를 가까이 비치하거나 휴대용 소화기를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 되는 거예요. 그것도 안 된다면 불이 났을 때 내 위치에서 제일 동선이 짧은 지점에 소화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돼요. 작업하다 만약 불이 나면 작업자를 데리고 어디로 대피해야 되는지도 항상 확인하고 생각해야 하고요. 화재감시원의 제일 중요한 책임 중 하나는 내가 보는 작업자의 안전이니까요.

불 작업을 하는 모든 작업자 주위에는 화재감시원을 배치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직원 감원을 할 때 1순위로 잘려야 되는 사람들이 화재감시원이었대요. 그런데 2017년에 법으로 화재감시원을 의무 배치하도록 정해지면서 이제 안정권에 들어간 거죠. 2008년에 이천의 물류창고에서 화재사고로 사망자만 40명이 발생했고, 대책 수립과 배치 의무화가 된 이후인 2020년에도 같은 사고로 38명이 사망했어요.

규제가 너무 느슨하거나, 현장에서 규제를 따르지 않은 상태로 화재를 방지하거나 초기에 발견하고 대처할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혼류작업을 하기도 하고, 작업자들에게 비산 방지 등의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었던 사고로 알고 있어요."

"조선소에선 아무리 일을 잘해도 긴장을 늦추면 안 돼요"

- 여성 화재감시원으로 일하며 폭언이나 차별 등의 폭력에 노출되지는 않나요?

"개개인에게 성별로 인한 폭언을 하거나 하는 부분은 제가 느끼기에는 많이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어느 현장이든 있는 성차별적인 언행이 있기든 하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제가 느끼는 더 큰 차별은 정규직과 하청 간의 차별이에요.

저희가 하는 일이 용접이나 취부처럼 다른 불 작업하시는 분들보다는 그래도 훨씬 수월한 편이에요. 그래서 주변에서는 화재감시로 들어왔다고 하면 쉬운 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말 들으면 솔직히 기분이 안 좋죠. 현장 안전관리자들은 다 직영인데, 직영이라서 하청 업체 직원들을 무시하고 갑질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안전관리자는 규정 미준수 사항이 있을 때 시정사항을 고지하고 잘 되었는지 체크하는데, 어떤 분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사진 찍어 간 다음 시정 요구서를 회사로 날려요. 그러면 누가 언제 어떻게 뭘 잘못했는지를 요구서로 알게 되는 거죠. 자신의 권한을 그렇게 권력으로 사용하는 게 저는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런데 다른 직영분들 작업하시는데 화재감시자가 거의 없고 그렇기도 하거든요. 일이 제대로 되게 하는 데 정말 필요한 게 뭔가 생각하게 됩니다."

- 화재감시업무로 인해 초래할 수 있는 직업병이나 건강상의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야외 작업이다 보니 피부가 엄청 타요. 뜨거운 불빛에 가까이 있으면 피부가 엄청 건조해지고 화상을 입기도 해요. 그리고 용접이나 용단을 하다보면 흄이라는 금속연기분진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게 사람한테 엄청 안 좋아요. 마스크를 아무리 좋은 걸 써도 다 새까매요. 마스크 벗었을 때 그 안에 시꺼먼 얼굴 보면 참 안됐다 싶어요. 자잘하게 다치는 일도 많아요. 비계와 온갖 파이프 곁을 지나다니다가 부딪히면 어김없이 멍이 들죠. 그래서 조선소에서는 아무리 일을 잘해도 긴장을 늦추면 안 돼요.

그리고 현장에 화장실이 많지 않아요. 배 양쪽으로 한 두 개씩 있거든요. 그래서 화장실 가까운 곳으로 배정받으면 제일 좋아요. 화장실 한 곳에 남자 두 칸, 여자 한 칸이에요. 화장실 수도 적은데 너무 위생적이지가 않으니까 불편한 게 있어요. 그런데 남자분들이 자기 급하다고 여자화장실에 그냥 막 들어가고 그러거든요. 제가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 문을 열고 남자분이 나오면 좀 그래요."

- 정말 고생 많으셔요. 마지막 질문으로 조선소 노동자로, 또 화재감시원으로 일하는 것은 지세포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이 일을 하니까 몸이 고되기는 하지만 마음은 편해요. 그전에 일하던 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거든요. 화재감시원 일을 하고 나서는 일을 하는 게 재미있어요.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신나요. 제 개인 상황이 좀 힘들 때에도 여기서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하다 보면 그 순간에는 그런 것도 잊히고요.

용접·용단할 때는 불꽃이 어마어마하게 튀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참 아름답기도 해요. 특히 겨울에는 해가 빨리 지잖아요. 6시만 넘어가도 어둡거든요. 깜깜한 허공에서 불티가 흐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불꽃쇼가 따로 없어요. 사실 저는 그걸 보면서 문득문득 희열을 느껴요. 어쩌면 그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만 남을 수 있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게 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잘 맞는 직업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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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메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7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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