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불안 이어지자 결국 "총파업 중단"...일부 병원 장기화 우려도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총파업을 이어온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파업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파업에 따른 환자 불편이 커지는데다, 노조가 요구해 온 사안에 대한 정부의 협의 의지를 봤다는 게 이유다. 다만 병원마다 개별 파업은 이어갈 여지를 남겼다.
보건의료노조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틀간의 산별 총파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나순자 노조위원장은 “14일 오후 5시부터 산별 총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교섭ㆍ현장 파업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나 위원장은 “2일간의 투쟁으로 노조 요구의 정당성과 사회적 공감대를 확인했다”며 “환자들이 겪는 안전 문제와 불편,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파업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파업 기간 정부와 노조 대화가 성실히 진행됐고, 미세하게 남은 쟁점이 단순히 '언제 시행한다 안 한다' 확정하기 어려운 정책 의제라는 걸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노조는 이후 정부가 의료 인력 대란과 필수 공공 의료 붕괴 극복 등을 위한 해법 마련을 회피하거나 소홀히 하면 2차 산별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의 결정에 따라 전국 대부분 병원에선 일단 파업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날 오후부터 각 병원별로 노사 간 현장 교섭이 시작됐다. 서울사립대 병원들은 임금 인상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파업으로 중단됐던 수술ㆍ진료 일정을 어떻게 정상화할지도 논의한다. 국립암센터는 이미 오는 17일부터 진료ㆍ수술이 전면 정상화된다고 14일 밝혔다. 암센터는 지난 12일 밤 심야 협상을 이어간 끝에 노조원 대거 이탈을 막았다. 원래 1000명 넘는 노조원이 파업하려 했지만 간부급 등 150여명만 파업에 참여했다.
다만 앞서 예정된 수술 일정을 모두 미루고 병원을 비우는 등 강한 조치에 나섰던 부산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 노조는 파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또 주말 동안 각 병원별로 노사 협의를 진행한 결과에 따라 파업을 이어가는 병원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
노조의 이날 브리핑은 당초 오후 5시로 계획돼 있다가 30분 정도 늦춰졌다. 나 위원장은 “내부에서 산별 총파업을 중단하는 것이 맞느냐는 반발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주까지 파업을 이어가면 파업에 들어오는 인원도 많아질 거고 환자들 피해도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설득했다”고 했다.
간호법안 통과가 무산된 게 총파업의 동력이 됐다는 점도 인정했다. 나 위원장은 “우리의 요구는 간호법과는 무관하다”면서도 “간호법이 무산되면서 조합원의 65%를 차지하는 현장 간호사들의 배신감 분노가 쌓여있고, 실질적으로 파업에 영향이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까지도 파업에 참여한 병원들에서는 환자 불편이 불거졌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뇌동맥류 시술을 받기 위해 지난 13일 입원 예정이었던 40대 A씨는 시술이 갑자기 2주 밀렸다고 했다. 병원에서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이유로 들었다. A씨는 “병원에선 당장 터지는건 아니니 2주 뒤 시술 받아도 문제없다고 설명했지만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라며 “병원을 옮기려 해도 예약이 쉽지 않고 처음부터 검사 받아야 하니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암 환자와 보호자들이 모인 한 온라인 카페에는 같은 병원에서 항암 치료받는 가족이 지난 13일 2차 병원 전원을 권유받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1년 항암 중 항암 약 부작용으로 폐가 안 좋아져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는데 2차 병원 갈 정도로 괜찮아졌다고 퇴원하고 2차 병원 소개해준다고 한다”라고 했다. 그는 “암 환자가 괜찮을 리가 있냐고 했더니 그래도 무조건 2차 병원 가라고 한다”라며 “칼만 안 들었지 강도란 다른 게 뭐냐”라고 하소연했다. 충청 지역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암 환자의 가족은 “2차 항암 한지 오늘 5일째이고, 당뇨, 투석 환자인데 중증으로 분류됐다”라며 “그런데도 의료파업으로 오늘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전원시켜준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글쓴이는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부정맥까지 앓고 있는 고위험군 환자인데도 병원 문을 나서야 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이러한 의료 공백이 노조가 총파업 중단 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노조 정책연구원장은 "파업을 다음 주까지 이어가면 환자들 피해로 엄청난 압박을 받아야 했을 것"이라며 "정부·여당이 대안을 낼 때까지 압박을 계속 받으며 파업을 지속할 때 얻을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 끝에 나 위원장은 "이틀간 피해 보신 환자분,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복지부는 노조 발표 직후 "총파업 종료를 결정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각 병원에서도 조속히 노사협상을 타결해서 의료 공백이 없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과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앞으로도 충실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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