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총리의 후쿠시마, 윤석열 대통령의 원전... 둘의 공통점

김성환 2023. 7. 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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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오염수 방류는 OK 해주고, 국내엔 새 원전 짓겠다 하고... 지금은 그럴 때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법안 및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과 관련해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노원병)이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13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법안심사소위에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관련 법안을 두고 여야간 격론이 벌어졌다. 정부·여당이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에 이어 신규원전 추가까지 공식화하면서, 발생할 폐기물의 양이 대폭 증가할 것이 자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국민적 분노가 높아진 이 시기에, 의견수렴 한 번 없이 원전 확대하기 위해 처분장을 빨리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국민을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고압적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원전 수명은 40년, 사용후 핵폐기물 저장은 10만년 이상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고리원전).
ⓒ 김보성
 
우리나라에는 2기의 원전이 영구 폐쇄됐고, 현재 25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가동원전 기준으로 세계 5위의 원전대국이다. 1978년 고리1호기가 가동된 후 원전은 산업화시대 우리나라의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이었다. 지금도 원전은 발전량의 30%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는 법이다. 원전은 인간 기술로는 해결 불가능한,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핵폐기물을 배출한다. 사용후핵연료가 내뿜는 높은 열과 방사선은 매우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데, 생명체에 무해한 자연방사능 수준까지 낮아지려면 최소 10만 년 이상이 필요하다.

이 시간 동안 인류 생활권 내에서의 안전한 관리는 불가능하므로, 지하 깊은 암반 밑으로 완전히 격리해야 한다는 게 현대 과학의 결론이다. 10만 년이란 시간은 지금부터 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했던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갈 만큼 긴 세월이다. 고준위 방폐물을 처분하기 위한 시간이 얼마나 까마득한지 알 수 있다. 값싼 전기를 40년 이용한 대가로,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은 그 2500배가 넘는 시간 동안 핵폐기물을 발밑에 묻고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전세계적으로도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이 실제 지어진 사례는 핀란드 한 곳뿐이다. 미국은 네바다 주 사막 한가운데 유카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사회적 논란이 일면서 2010년 이후 중단돼 사실상 취소 상태다. 프랑스는 30년째 삽 한 번 못 뜬 채, 국론만 분열됐다. 원전을 가동 중인 전세계 33개국 중 부지 확보까지 나아간 국가는 6개국뿐이며, 26개 국가는 최종처분장 부지선정조차 안됐다. 전세계 곳곳에 '화장실 없는 아파트'가 지어진 셈이다.

원전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목불인견

원전의 사용후 핵폐기물은 원전 건설시 마련해 둔 사용후핵연료 수조에 우선 보관하는데, 이미 국내 원전의 수조와 건식저장시설은 포화율이 70~80%가 넘는다. 수년 내 처분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돼 대부분의 원전이 2030년대 내에 멈춰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발생한 수십만 다발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영구처분장 건설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민주당이 2021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힘 역시 2022년 8월에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안을 두 건 발의했다.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인 사용후핵연료 해법에 국민의힘도 관심을 보인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제 버릇 남 못준다고 했던가. 그들의 숨겨진 복안이 드러났다. 여당이 발의한 2개 법안은 모두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한 법안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안은 영구처분장이 지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저장하는 부지내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의 설계수명까지로 제한했지만, 국민의힘 안은 설계수명을 넘어서 운영허가를 연장하는 만큼 저장시설을 무제한 늘려 짓는 것으로 돼 있다. 변기가 없으면 부엌에서라도 '볼 일'은 보겠다는 셈이다. 

게다가 최근 윤석열 정부는 내년에 수립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원전을 대폭 확대하겠다고까지 나섰다. 영구처분장 마련을 위한 법안 논의를 시작하는 시점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원전을 확대하는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은, 야당은 물론 국민 의견따위는 들을 생각도 없다는 안하무인의 태도다. 이런 와중에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며 고준위법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대국민 협박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후쿠시마 핵오염수와 윤석열 정부 원전확대 정책의 공통점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EC룸에서 열린 '제29차 에너지위원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이 장관은 "수요 증가에 대비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을 갖추기 위해 원전, 수소 등으로 새 공급 여력을 확충할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혀 신규원전 추진을 사실상 공식화 했다.
ⓒ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무단 방류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인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전부터 일본에 오염수 해양방류를 추천해 왔던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해양방류의 위험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은커녕 오염수 배출 당사자인 도쿄전력이 제공한 자료만 가지고 배출에 문제가 없다고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85%의 국민이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와중에, IAEA 보고서를 토대로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오염수 해양 방류에 사실상 동의해줬다. 오염수 문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몽니는 국민을 무시하고 추진 중인 국내 원전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론쯤은 가뿐히 무시해도 된다는 태도마저 비슷하다.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도 일언반구 반대 없이 '걸러내고, 희석해서 전혀 문제없다, 안전하다'는 일본의 입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정부여당의 논리대로라면, 정부는 굳이 뭐하러 국내에 방폐장을 만들자고 괜한 국민 갈등을 발생시키고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말인가? 일본처럼 우리도 정화 처리해서 바다에 나눠 버리면 될 일 아닌가?

물론 누구도 함부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지금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서 변기와 정화조를 어떻게 만들 건지 논의할 때지, 화장실이 없으니 주방에서 볼일 볼 방안을 고안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원전의 질서정연한 퇴진을 결정할 시기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생산현장(원자력공장)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전세계적으로도 원전산업은 퇴조의 기세가 완연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 개발에 619조 원이 투자됐는데, 동기간 원전 투자액은 재생에너지의 10% 수준인 64조 원에 불과했다. 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가 원전 중심의 에너지체계를 포기하고 재생에너지 보급에 국가적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바야흐로 이제는 재생에너지가 국가경쟁력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 RE100 캠페인이 일종의 국제 표준이 되면서 구글, 애플,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애플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하면서, 자사 제품뿐만 아니라 부품을 납품받는 파트너 업체들에까지 이 기준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애플을 가장 큰 고객으로 삼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서둘러 RE100 선언에 동참했지만, 국가적으로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며 재생에너지 공급을 지원하는 대만의 TSMC와 비교하면 '재생에너지 악마화'에 정부가 앞장서는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가혹한 경쟁 여건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원전을 더 짓겠다는 황당한 구상을 내놨다. 기업들마저 재생에너지를 확대해달라고 요청하는 마당에 윤석열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원전 확대만을 외치는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오염수 방류를 통해, 또한 고준위 폐기물 영구처분장을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원전 확대는 미래세대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최근 호주에서도 "원전은 너무 비싸고 느리기 때문에 탄소중립계획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넷제로(온실가스 순배출 0) 오스트레일리아]가 나온 바 있다.

우리 사회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은, 현 세대가 누린 풍요의 대가인 핵폐기물이 미래세대에 미칠 부담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지,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을 더 늘릴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원전의 질서정연한 퇴진을 결정할 시기다. 이미 우리가 활용 중인 원전은 최대한 안전하게 운용하되, 설계수명이 다한 노후원전은 무리한 수명연장 없이 폐쇄돼야 하며, 신규 원전 구상은 철회돼야 한다. 그것이 전제돼야만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확보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한발씩 접근해나갈 수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 김성환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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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성환씨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노원병, 전 민주당 탄소중립특별위원회 실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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