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몰래 지하실 오간 가장…밤마다 포장한 수상한 택배 정체
지난 2월 16일 경기도 평택항. 중국에서 온 한 국제우편물이 세관 직원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메이크업 파운데이션’이라 적힌 붉은색 비닐로 포장된 우편물이었다. 수신인은 3주 전 인천공항본부세관이 마약류 반입 정황을 포착한 김모(48)씨였다. 세관 직원은 이 우편물에도 마약류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포장지를 벗겨내고 두툼한 은빛 비닐 뭉치를 도려내자 연미색 가루 100g이 쏟아졌다. 하지만 기존에 적발된 다른 마약류와는 형태가 달랐다.
흰색 가루의 정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밀 검사를 거치고서야 드러났다. 마취제로 개발됐지만, 현재는 의료용 사용이 금지된 향정신성의약품 베노사이클리딘(Benocyclidine)이었다. 미국에서 투약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체를 훼손하면서 주목받았던 펜사이클리딘(Phencyclidine)의 유사체였다. 10㎎을 섭취하면 환각·마비 증상이 오고 그 이상 섭취하면 혼수상태에 놓이는 등 부작용이 강해 높은 등급의 향정신성의약품로 분류되지만, 그간 국내에서 적발된 적은 없었다.
인천공항본부세관 마약조사과는 우편물에 기재된 사업장 주소와 개인통관고유부호등을 토대로 김씨의 소재를 특정했다. 지난 2월 말 김씨의 사업장, 차량 등을 압수수색해 LSD(182장)와 케타민, 대마초, 대마제품 등 마약류 923g을 발견했다. 조사결과 김씨는 지난 1월~3월 독일,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13회에 걸쳐 베노사이클리딘 등 마약류 5종을 들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다른 사람 명의로 임대한 사업장 지하에 마약류를 보관했는데 낮엔 가족들과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했고 주로 밤에 가족들 몰래 작업실로 가 마약류를 포장한 뒤 던지기 수법으로 유통했다고 한다. 타인의 개인통관고유부호를 도용하는 등 방법으로 단속을 피하려 했지만 덜미를 잡혔다. 김씨는 세관 조사에서 “상선이 시키는 대로 마약류를 들여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인천공항본부세관은 김씨를 특정범죄가중법(향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송치했고 검찰은 김씨의 공범 여부 등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
관세청이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5월 세관 단속에서 먀약류 273건(중량 약 272㎏)이 적발됐다. 전체 마약밀수 적발 건수의 95%가 인천공항본부세관에 집중됐다. 관세청은 지난 4월 인천공항본부세관 내 국제우편·특송·여행자 통합관리조직을 만들었다. 기존엔 인천공항본부세관은 특송화물과 여행자를 관리하고 별도기관인 우편세관이 국제우편을 관리했는데 이를 합친 것이다. 국제공조를 전담하는 마약 단속요원도 지정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베노사이클리딘은 물론 펜사이클리딘도 국내에서 적발된 적이 거의 없는 마약류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신종마약 반입 등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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