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 그 이후... 택배노조가 여전히 싸우는 이유
[성상민]
2000년대 이후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되면서 택배는 한국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정착했다. 2020년과 함께 찾아온 코로나19의 유행은 이전부터 증가하던 택배 물동량을 더욱 늘리는 촉진제가 되었다.
하지만 택배 산업이 성장했다는 것이 자동으로 택배 운송 노동자의 처우 개선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윤만을 위한 극한의 경쟁체계는 무거운 물품을 운반하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많이', '빨리', '오래'를 더욱 강요해왔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지만, 절대다수의 노동자가 '개인사업자'라는 굴레에 묶여 있기에 주 52시간 상한제의 적용을 받기는커녕 예방과 개선을 요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2017년 출범한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며 주 5일제를 비롯한 법적 노동 시간 준수, 택배 노동자의 분류 작업 제외, 작업 인력 증원 등을 요구해왔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물류 증가라는 명목으로 과로로 내몰린 수십 명의 택배 노동자가 사망한 비극 속,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도 점차 수면 위로 올랐다.
이러한 국면에서 택배노조는 2021년 1월과 6월, 두 차례의 사회적 합의를 체결했다. 같은 시기 계류 상태였던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택배 노동자의 권익 증진을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되었다.
▲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한선범 정책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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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 22명의 집단 과로사, 사회적 합의의 계기가 되다
먼저, 2021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계기를 물어보았다.
"2020년 택배 노동자들의 연속적인 과로사가 큰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물량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설이나 추석 같이 명절 시기가 도래했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물량이 마구 쏟아졌다. 결국 노조 집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22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이전에도 택배노조는 노조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법적 노동 시간 준수를 꾸준히 원청과 택배 대리점에 요구해왔다. 당시 택배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주 60시간은 기본, 때에 따라서는 70시간을 가볍게 넘기는 일도 허다했다. 거기에 택배 노동자들이 무급으로 택배 물품의 분류 작업을 해야 하는 문제가 점점 심각해졌다. 처음에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 작업을 떠맡게 될 때는 그래도 1시간이면 분류를 마칠 수 있었지만, 택배 물량이 시간이 지날수록 폭증하다 보니 분류 작업 시간도 점차 길어져 4시간이나 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이런 과로 상황에서 택배 노동자 집단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택배노조는 분류 작업 폐지를 비롯한 노동 시간 단축을 과로사 방지의 핵심적인 사안으로 주장을 하게 되었다. 택배노조의 제안으로 그해 7월 진보정당과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후 정부나 당시 집권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움직이면서 2021년 두 차례의 사회적 합의를 가지게 되었다."
택배노조는 어떻게 사회적 합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다. 2017년 택배노조가 결성된 이후 CJ대한통운과 같은 원청 기업에 계속 교섭을 요구했지만, 원청은 자신들이 직접적인 고용주가 아니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택배 노동자들은 각각의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있으니, 교섭도 대리점과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대리점들도 교섭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원청이 지시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지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권한은 자신들에게 없다는 이유였다. 원청과 대리점이 교섭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상황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2020년 과로사 대책위가 결성된 후에도 원청은 자신들도 화주나 소비자와의 관계가 있어서 어렵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택배사들의 가장 큰 화주는 대형 온라인 쇼핑몰이다. 정기적으로 어떤 택배사와 계약을 맺을지를 입찰을 통해 정한다. 택배사들은 최대한 예산을 낮춰 대형 건수를 따오려고 하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택배 노동자들의 낮은 처우로 이어지게 되는 식이다. 택배노조나 과로사 대책위의 노동 환경 개선 요구에 택배사는 계속 택배 요금을 인상해야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물건을 주문하는 소비자는 물론 화주들도 요금 인상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택배노조에서 판단하기에도 분명 택배 요금이 과당 경쟁 등으로 터무니없이 낮은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정부에서도 문제 해결에 나서려는 자세를 보였던 만큼, 원청과 대리점은 물론 화주, 소비자, 그리고 정부까지 다 끌어모아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2차례의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었던 과정도 들어보았다.
"2021년 1월과 6월, 두 차례에 나눠서 합의가 진행되었다. 합의를 두 차례 진행하게 된 것은 1차 합의 이후 택배 노동에 대한 실태 조사를 외부에 맡기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차 합의에서 충분하게 논의하기 어려웠던 내용을 채우는 형태로 2차 합의를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합의를 통해 택배 분류 전담 인력의 투입 기준, 적정 노동 시간 마련, 명절 등 성수기 물량 처리 대책, 표준계약서 도입 등 여러 가지를 논의할 수 있었다. 여론의 압박이 있던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니 택배사나 대리점은 물론 화주들도 합의 테이블의 결정 사항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당시 택배 산업을 아우르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정부에서 추진하던 상황이라, 합의 내용 중 표준계약서와 같은 사항은 해당 법에 반영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합의를 넘는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 이후, 문제가 나아졌는지 등에 대한 노조의 평가를 들어보았다.
"분명 사회적 합의 이후 과로사는 많이 감소했다. 그러나 완전히 문제가 개선된 것은 아니다. 현재 택배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주 55시간에서 60시간 근무한다. 아무리 적게 일해도 60시간 넘게 일해야 했던 상황보다야 나아졌지만, 여전히 법에서 규정한 노동 시간 상한은 훨씬 넘기고 있다. 분류 전담 인력 고용도 완벽하지 않다.
합의에서는 2022년 1월부터 택배 노동자들의 분류 작업 투입을 완전히 중단하자고 했는데 이를 준수한 사업장은 약 30%밖에 되지 않았다. 합의를 조금도 준수하지 않은 곳은 20%에 달했다. 우리가 주장했던 택배 노동자 주 5일제를 관철하지 못하고 시범 사업으로만 실시하고 끝나게 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합의할 때는 당장 주 5일제를 관철하지 못 하더라도, 시범 사업을 통해 주 5일제의 필요성을 확산하려고 했다. 이 시범 사업 결과를 토대로 추후 노사정이 다시 모여 논의하자고 했지만, 노사정 회의는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2022년 1월부터 두 달가량 CJ대한통운 본사 농성 및 파업 투쟁에 들어갔다.
"택배 노동 표준계약서가 법으로 의무가 된 상황에서, 각 택배사가 정부에 표준계약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그런데 CJ대한통운이 제출한 표준계약서가 문제였다. 별도로 부속 합의서를 붙일 수 있다고 표준계약서에 명시한 것이다. 그 부속합의서에는 계속 택배노조가 문제로 지적했던 주 6일 근무나 당일 배송 실시와 같은 사항이 버젓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CJ대한통운은 다른 택배사들과 다르게, 자신들은 휠소터(택배 자동 분류기)를 이미 설치하고 있어 택배 노동을 어느 정도 개선하고 있다면서 택배 요금 인상분을 노조와 제대로 협의하지도 않고 회사가 임의로 사용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결국 투쟁으로 이를 무산시키기는 했으나, CJ대한통운의 문제는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의 사회적 합의를 돌아보며, 한계와 앞으로의 과제를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사회적 합의 이후 택배노조 조합원이 2000명에서 7200명까지 늘어났다. 앞으로는 이렇게 키운 힘을 바탕으로 원청과 직접적인 교섭을 요구하려 한다. 사회적 합의는 결국 여론이 형성되어야만 가능한 하나의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마구 확산하는 상황에서, 연속적인 택배 노동자들의 죽음이 여론을 크게 움직이며 사회적 합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사안이 이런 강한 여론을 낳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2021년 두 차례 합의의 아쉬운 점처럼 사회적 합의가 낳을 수 있는 성과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 현장의 택배 노동자들 이 노조가 힘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하고, 그렇게 노조의 힘을 키워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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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성상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7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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