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부는 후위공격 성공하면 '2점' 드립니다
[양형석 기자]
스포츠에서는 각 종목마다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멋진 기술들이 있다. 축구에서는 두 다리를 공중으로 띄운 후 몸을 뒤로 넘기면서 시도하는 슛이 나오면 관중들의 환호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8~90년대까지만 해도 이를 '오버헤드킥'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했는데 최근에는 '바이시클 킥'이나 '시저스 킥'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물론 농구에서는 매년 여러 리그에서 콘테스트까지 열리는 '덩크슛'이라는 멋진 기술이 있다.
배구에서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가장 멋진 기술은 역시 후위공격을 꼽을 수 있다. 후위에 있는 선수가 도움닫기 끝에 어택라인 뒤쪽에서 힘껏 날아올라 상대 코트를 향해 호쾌한 스파이크를 꽂아 넣는 후위공격은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팀의 사기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후위공격은 좋은 신장과 뛰어난 운동능력, 세터와의 호흡, 과감한 공격본능을 겸비한 선수만 구사할 수 있는 결코 쉽지 않은 기술이다.
배구는 성인을 기준으로 남자부(243cm)에 비해 여자부(224cm)의 네트 높이가 20cm나 낮지만 후위공격의 빈도는 남자부가 훨씬 높다. 아무래도 후위공격은 전위공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배구연맹에서는 V리그 출범 초기 리그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여자부의 후위공격 빈도를 늘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바로 여자부에서만 시행했던 '2점 후위공격 제도'였다.
▲ 정대영은 현대건설 시절이던 2005-2006 시즌 후위공격으로만 무려 300득점을 기록했다. |
ⓒ 한국배구연맹 |
대부분의 구기종목은 여자경기보다 남자경기의 인기가 더 높은 게 사실이다. 오는 20일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2023 여자월드컵의 열기는 작년 남자 선수들이 출전했던 카타르 월드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낮은 게 현실이다. 리그의 인기 역시 남자축구의 K리그가 여자축구의 WK리그보다 압도적으로 높고 야구의 경우엔 공식적으로 여자야구리그가 운영되기는커녕 아직 단 하나의 실업팀조차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배구는 다르다. 남자배구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20년 넘게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동안 여자배구는 2012 런던 올림픽과 2020 도쿄 올림픽에서 4강신화를 달성했다. 여기에 '배구여제'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이라는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배출되면서 여자배구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다. 실제로 2022-2023 시즌 V리그 여자부의 평균시청률(1.23%)은 남자부(0.62%)보다 2배 가까이 높았고 누적 관중 역시 더 많았다.
하지만 여자배구가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V리그 출범 전 실업배구 시대까지만 해도 여자배구는 남자배구에 비해 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비인기 종목'에 가까웠다. 경기가 같은 날에 열려도 많은 관중이 찾을 수 있는 프라임 타임은 언제나 남자부가 독차지했고 중계방송 역시 항상 남자부 경기 위주로 편성됐다. 그 시절 여자부 경기는 남자부의 '오픈경기' 같은 느낌을 줬던 게 사실이다.
여자부 경기가 남자부 경기에 비해 인기가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경기의 스피드와 파워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배구 팬들은 '여자부 경기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고 하지만 강한 스파이크와 화끈한 블로킹으로 경기 분위기가 수시로 바뀌는 남자부에 비해 지나치게 랠리가 긴 여자부는 아무래도 박진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V리그 출범을 앞둔 한국배구연맹은 여자부의 인기를 끌어 올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여자배구는 대부분의 플레이가 전위에서 이뤄졌다. 아무래도 여자선수들은 남자선수들에 비해 신장도 작고 운동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확률 낮은 후위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배구연맹에서는 여자부에 한해 V리그 원년부터 후위공격을 성공시키면 2점이 올라가는 규칙을 도입했다. 비록 2점 후위공격을 시행한 시즌은 단 네 시즌에 불과했지만 2점 후위공격 도입으로 인한 변화는 결코 적지 않았다.
▲ 황연주는 V리그 여자부에서 후위공격으로 1000득점을 돌파한 유일한 선수다. |
ⓒ 한국배구연맹 |
여자선수의 후위공격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장윤희나 김남순 같은 일부 선수만 구사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었다. 2000년대 들어 한유미(국가대표 코치)와 한송이(KGC인삼공사) 자매, 정대영(GS칼텍스 KIXX), 김민지처럼 피지컬과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종종 사용했지만 결코 주요 공격옵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위공격에 '2점'이라는 유혹이 더해지면서 각 구단에서는 경쟁적으로 후위공격을 적극 시도하기 시작했다.
2점 후위공격 제도로 인해 가장 많은 혜택을 본 팀은 단연 흥국생명이었다. 프로 원년부터 '백어택 여왕' 황연주(현대건설 힐스테이트)를 앞세워 가장 많은 후위공격을 시도한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가세한 2005-2006 시즌 무려 985회의 후위공격을 시도했다. 흥국생명은 V리그 원년부터 2점 후위공격 제도가 존재했던 마지막 시즌인 2007-2008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후위공격 시도와 성공, 성공률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2점 후위공격 제도는 단조로운 여자배구의 공격을 다변화시켜 리그의 흥미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시작됐지만 이는 오히려 모든 팀들이 후위공격에만 의존하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실제로 2005-2006 시즌에는 한 시즌에 300회 이상 후위공격을 시도한 선수가 무려 6명이나 있었다. 특히 정대영은 미들블로커 포지션임에도 후위에서 리베로와 교체되지 않았고 2005-2006 시즌에만 568회의 후위공격을 시도해 300득점을 올렸다.
결국 2점 후위공격은 선수들의 부상을 야기하고 특정구단에만 유리하다는 비판 속에서 네 시즌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실제로 GS칼텍스의 김민지나 한국도로공사의 임유진 등 각 구단의 주공격수들은 과도하게 후위공격을 시도하다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전성기가 일찍 저물었다. 이에 한국배구연맹은 2006-2007 시즌부터 세트당 2회로 2점 후위공격을 제한했고 2007-2008 시즌이 끝난 후에는 2점 후위공격을 완전히 폐지했다.
2022-2023 시즌 후위공격은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가 788회,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현대건설)가 648회, 옐레나 므라제노비치(흥국생명)가 576회 시도했을 정도로 외국인 선수의 전유물이 됐다. 한국의 전패로 막을 내린 지난 발리볼 네이션스리그에서도 한국은 많은 후위공격을 시도하지 못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2점 후위공격 제도가 살아있었다면 V리그는 국내 선수들이 더 많은 후위공격을 구사하는 리그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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