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사랑하는 사람이 대리운전을 한다면

2023. 7. 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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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종종 가진다.

나의 책을 읽은 학생들에게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나도 내가 대리운전을 할 것이라고 상상해 본 일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부모님이 오늘 밤부터 대리운전을 나간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될까요?" 걱정이 된다거나 가슴이 아프다거나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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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걱정된다" 혹은 "한심하다"
나도 내 부모도, 당신도 당신 부모도
부끄럽지 않게 노동한다는 게 중요

고등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종종 가진다. 나의 책을 읽은 학생들에게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리운전을 하며 쓴 ‘대리사회’라는 책도 다룬다. 나는 언젠가 스스로를 대리인간으로 규정했다. 나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원래부터 나의 것이었다고 믿고 대신 수행하며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됐고, 해야 할 일을 찾던 중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이 떠올랐다. 대리운전을 처음 시작할 때는 두려움과 설렘이 절반씩이었다. 해 보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험한 일이라는 인식이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대리운전을 시작하던 첫날 아내에게 나 일 다녀올게, 하고 나가려는데 그가 나에게 말했다. "니가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든 그냥 지켜봤지만 이건 안 돼. 밤에 운전해야 하고, 옆에 술 취한 사람도 있고, 잠도 못 잘 거 아냐. 위험하니까 하지 마. 돈을 벌어야 하면 내가 나가서 다른 일을 해 볼게." 나는 그에게 답했다. "아냐, 이걸 꼭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잘 다녀올 테니까 먼저 자." 그때 그가 나를 걱정해 주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 있다.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니 세상 편히 잠들어 있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내가 대리운전을 할 것이라고 상상해 본 일이 없다. 나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런 힘든 일을 하지는 않겠지, 하고 믿었다. 만약 내 가족이 운전을 다녀오겠다고 하면, 나의 반응도 비슷했을 것이다. 나가지 말라고까지는 안 했을지 모르지만 보내두고는 잠도 잘 못 자며 이런저런 걱정을 했을 게 분명하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부모님이 오늘 밤부터 대리운전을 나간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될까요?" 걱정이 된다거나 가슴이 아프다거나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다. "한심할 것 같아요. 그게 뭐하는 거예요." 오늘은 이런 말을 들었다. "왜 그런 일이나 하고 있나 싶을 것 같아요." 답을 정하고 물어본 건 아니었으나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했을까. 그 언젠가도 오늘도 나는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고 웃고는, 나의 말을 계속해 나갔다.

그들의 모습은 사실 20년 전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일반사회 교사는 제대로 수업을 듣지 않는 우리를 보고는 한숨을 푹 쉬며,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노동자가 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에 그가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친구와 함께 저 선생님은 왜 우리한테 저런 악담을 하느냐고 말했다. 그 선생님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노동이란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불편한 단어라 여겼고 그래서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하고 말았다.

그 두 학생에게 사실 말해 주고프다. 나는 한 사람의 부모로 부끄럽지 않게 노동하고 있고 나의 부모님도 그랬고, 너희의 부모님도 아마 그럴 것이고, 너희도 언젠가 그런 부모가 될 것이라고. 그러나 그들이 얄미울 일도 없다. 내가 20년이 지나 그 사회 교사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그들도 나의 나이가 되어 그 순간을 문득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도 그런 날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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