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임화를 향한 오해, 여기서 풀고 갑시다
[하성환 기자]
▲ <청년 임화>(사실과 가치, 2023) 책 표지 <청년 임화>는 한국문학사에서 밀봉되고 금기시된 임화를 역사 사실에 입각하여 복원한 문예비평서이다. |
ⓒ 김상천 |
임화의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동지이자 절친 김남천은 "예술 운동의 우수한 운전수"로 임화를 찬양했다. 조동일은 임화의 시를 평가할 수 없다고 비평을 포기했고 유종호는 임화의 시가 실패했다고 혹평했다. 해방공간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문예비평가 김동석은 임화를 '병든 지식인'으로 혹평하며 가혹할 정도로 폄훼했다.
정말 임화는 한국 문학사에서 어떤 인물이었을까? 늘샘 김상천은 오랜 기간 자료를 모으고 논구한 역작 <청년 임화>에서 임화야말로 '조선 민족문화 건설의 총사령관‛이자 오늘날 '조선적인' K-문화의 정신적 뿌리임을 역설한다.
20대 청년 임화(1908-1953)가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심취해 발표한 '네거리의 순이'(1929),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1929), '양말 속의 편지'(1930) 등 단편 서사시는 1930년 전후로 전개된 '혁명적 노조 운동'을 배경으로 발표된 작품들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가혹한 착취와 이에 맞선 조선 민중이 처한 현실을 단편서사시 형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 김상천은 이를 노동쟁의 현장을 충실히 담아낸 '쟁의 서사'라는 독창적인 용어로 별칭했다. 이는 스물한두 살 청년 임화를 문단에서 일약 주목받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프로 문학 작품들이다.
"동경에서는 벚꽃이 삼월 초에 피지만 경성에서는 사월 하순에 피고, 내지에서는 밀감이 열리지만 조선에서는 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경성의 벚꽃을 삼월 초에 피우려 한들 불가능한 것이다. (중략) 결국 조선 문학은 우리 본래의 독특한 방식의 소산이다. 사람들은 객관적으로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주관적으로는 다른 환경을 체험한다. (중략)이 체험이 이른바 '우리만의 현실'이고 이 현실 속에서 전혀 새로운 인간이 형성되매, 그런 사람 가운데서 또한 새로운 사고방식이나 정감, 독특한 양식이 생겨난다."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을 때 임화는 최남선의 국수주의와 이병도의 실증 사학으로 위장한 식민사학을 비판하며 조선학 운동에 열정을 바쳤다. 오늘날 <한국사> 교과서엔 단 한 줄도 언급돼 있지 않지만 임화와 외우 김태준이 연구하고 출간한 <원본 춘향전>, <조선민요선>, <조선전래동요선>, <조선연극사>, <조선소설사>, <고려가사>, <청구영언>을 비롯해 수많은 조선학 관련 출판물들이 바로 그것을 입증한다.
임화는 <문학의 논리>(1940)를 통해 탁월한 문예비평가로서도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나아가 임화는 30년대 치열하게 전개된 한글맞춤법 논쟁에서 '자연음'(박승빈, 최남선)과 한글운동파(주시경, 이극로, 최현배)의 '이상음'을 "조선어학회류의 관념론"이라 비판하며 민중의 생활언어인 '현실음'(홍기문, 임화)을 역설했다. '작장면',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이 맞다는 논리이다. 다시 말해 임화는 "조선 문학은 조선 민중의 언어 위에 성립할 수 있다"며 조선다운 주체성을 강조했다.
임화의 민중 언어 사상은 "존재(생활)가 의식(언어)보다 우선"이라는 임화의 현실주의 언어사상이 반영된 모습으로 '풀'(1968)의 시인 김수영으로 계승되었다. 김수영은 자신이 흠모하고 존경했던 임화의 언어사상을 이어받아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민중의 생활이 바뀌면 자연히 언어가 바뀐다"고 강조했다. 현실주의 언어관을 피력한 임화의 언어사상을 두고 작가 김상천은 러시아의 언어철학자 바흐친에 비견될 만한 언어사상가라고 극찬했다.
<청년 임화>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한국 문학사에서 철두철미 밀봉된 임화를 역사 사실적으로 논구한 숙작(熟作)이다. 이전에 출간된 <네거리의 예술가들>(2021), <철학자 김수영>(2022)과 함께 반쪽짜리 한국 문학사를 온전한 모습으로 정립하는 데 주춧돌이 될 문예비평서임을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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