꿋꿋하게 시골 소매점 운영하던 엄마가 무너진 까닭

전미경 2023. 7. 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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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비대면 운영이 이루어져... 왜 불편함은 소비자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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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키오스크
ⓒ 언스플래쉬
중국집에 갔다가 주문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대학생 딸이 와서 무인 주문기로 주문해서 놀랐다는 K 얘기를 들었다. 시골도 키오스크가 들어섰다는 얘기다. 누구를 위한 편의인지는 모르지만 사회가 달라지고 있다. 사람을 대면하던 시대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급속한 변화를 따라가기 벅찰 때가 있다.      

나 역시 나름 컴퓨터에 익숙하다고 생각하지만, 샌드위치 주문을 할 때 기계 앞에 서는 것보다 주인에게 직접 주문하는 것이 편하다. 그럼에도 무인 주문에 적응해야 하는 것을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주인에게 다른 메뉴를 물어보면 무인 주문기를 가리킨다. 설명보다는 무인 주문기에서 살펴보라는 뜻이다. 포기하고 그냥 돌아선다.

소매점의 담배 주문까지 기계가 대체하다니 

소매점을 하는 엄마는 요즘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 담배 주문 방식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담배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KT&G가 기존 찾아가는 서비스로 직접 방문하여 담배를 주문하고 보급하던 방식을 변경했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 주문하거나, 혹은 콜센터를 이용해 주문을 하면 택배로 받는 방식이다. 스마트폰 앱과 콜센터 병행은 안된다. 엄마는 만약을 대비해 두 가지 다 하고 싶었으나 택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좀 더 수월한 콜센터 주문을 하기로 했다. 영어로 된 담배 이름과 종류도 많아 비대면은 확실히 신경 쓰인다.

처음 시행하는 날 엄마는 오전부터 분주했다. 콜센터에서 전화가 안 온다며 걱정했다. "때가 되면 오겠지요." 걱정 말라며 나는 안일한 태도롤 보였다. 전화를 끊고 났지만 엄마가 괜히 그런 걱정하는 사람은 아닌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콜센터를 알아내 어렵게 통화를 시도했다.

상담 결과 지역 지점과 서울 콜센터와의 업무 착오로 콜 주문 소매점으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랴부랴 등록을 하고 무사히 주문을 마칠 수 있었다. 대금도 기존 통장이 아닌 새로운 가상번호를 부여받아 정확한 금액을 입금해야만 한다. 엄마는 오랫동안 해오던 방식이 바뀌자 힘들어하셨다. 게다가 콜센터의 긴 안내 멘트를 듣고 메뉴 버튼 누르는 것도 버거워하셨다.

그럼에도 '못하겠다'가 아닌 "옛날엔 잘했는데 이젠 좀 잘 안되네"라고 하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 나이가 들어서 그래. 세상이 변하는 걸 어떡해 적응해야지"라고 했다. '이제 가게 접어'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 걸 감안하면 다행이지만 나이 탓을 왜 했을까 급 후회가 밀려왔다. 늙었다고 사회생활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사실 시골이라 엄마가 하는 소매점이 가능한지 모른다. 도시엔 소매점이 아닌 편의점이 장악한 지 오래다. 도시는 편의점 과잉이 문제라면 시골은 물건을 공급해 주는 도매상들이 없어 문제다. 젊은 도매상들은 초반 열정만큼 오래가지 못했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몇몇 도매상들도 엄마와 같이 늙어가는 오래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면 엄마는 정말 가게를 접어야 할지 모른다.

엄마는 그들이 오랫동안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물건을 끊임없이 구매한다. 가끔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주마다 한 번씩 들리는 도매상들을 절대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빈손이 되면 더 이상 방문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렴한 물건을 파는 뜨내기 대신 조금 비싸더라도 고정 도매상들의 물건을 사는 이유도 바로 도매상들의 유지를 위해서다(언젠가 기사에 뜨내기 물건을 왜 안 사느냐는 항의성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는 것

세상에 갑과 을이 있다면 엄마 소매점은 늘 '을'이다. 한 번도 '갑'일 때가 없다. 물건을 공급하는 도매상들이 귀해서 '을'처럼 힘들고, 물건을 파는 소비자들에게는 원래 '을'이다. 도매상들이 귀하다 보니 어떤 이유로 작정하고 물건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곤욕을 치른다.

농사철 간식으로 필요한 빵과 우유를 공급해 주지 않아 초코파이와 베지밀로 대체 판매하느라 힘든 적이 있었다. 담배처럼 독과점 제품을 판매하는 큰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원하는 만큼 담배를 공급받지 못할 때가 있어 살 때조차 '을'이다. 심지어 외국산 담배를 판매하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국산 담배만 취급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외국산과 경쟁하는 국산 담배 홍보를 위해 편의점, 대형 판매점에 잘 보이려 애쓰는 것을 볼 때면 확연한 차이를 느낀다.

그런 면에서 시골 작은 소매점은 가게를 유지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힘들다. 긴 세월 동안 많은 가게가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엄마는 남았다. KT&G가 옛날 '전매청'이란 이름을 달았을 땐 더 힘들었다. 보급소에 직접 가서 담배를 받았다. 자가용도 택시도 없던 때라 굉장히 불편했다. 그 큰 짐을 이고 다녔다.

엄마는 이제 옛날과 다른 방식의 불편함을 겪고 있다. 편리함이란 이름으로 무장하고 나타난 비대면 주문. 식당, 일반 비대면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독과점 대기업 KT&G는 당사의 어떤 편리와 이익을 위해 소매점을 상대로 불편한 비대면 주문 방법을 택한 것일까. 대기업에서 찾아가는 서비스를 중지하고 택배를 이용한 영업 방식으로 변경한 것을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이유일까. 소매점으로서 6월 26일 KT&G 홈페이지 고객상담 문의를 남겼는데 2주가 넘도록 답변 없이 '대기'로 있다. 답답해서 전화 시도를 했지만 고객센터만 나온다. 어디든 챗봇이 등장하고 고객센터가 직원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불편한 건 나만인 걸까.

"엄마, 만약 담배뿐 아니라 앞으로 모든 물건을 다 무인 주문으로 하고 택배로 받는다면 어떻게 할 거야?" 엄마는 한동안 말씀이 없었다. 그리곤 "그땐 못하지 뭐"라고 하셨다.

엄마는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에도 꿋꿋이 가게를 지켜왔다. 가게를 그만두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이유여야 한다. 비대면 무인 주문에 밀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면 마음이 아픈 일이 된다. 무인점포가 늘고 무인주문 기계가 등장하면서 빠르게 사람을 대체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는 것이 아직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더 좋은 내일을 상상하는' 대기업만큼은 서둘러 사람을 기계로 대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시 대형 점포에 쏟는 열정까진 아니더라도 작은 소매점에게 관심을 준다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시골이 살아야 도시도 미래가 있다. 문득, 먼 미래엔 무엇이든 택배로 배달되는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더 좋은 내일이 아닌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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