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증원만이 답 vs 늘려도 소용없다… 의대 정원 확대, 18년째 논의 중

신은진 기자 2023. 7.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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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전쟁]① 의사 수 논란의 역사
2006년 이후 의대 정원은 고정돼있다. 적정 의사 인력 추계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차는 18년째 좁혀지지 않고 있다. /뉴시스 제공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13일부터 대규모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19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하는 이들은 '무면허 불법의료를 근절하기 위한 의사인력 확충', 즉 의대정원 확대를 7대 요구 사항 중 하나로 내세웠다. 의대 정원 확충 문제는 18년째 승자도 패자도 없는 오랜 의료계 현안이기도 하다. 어째서 의대 정원은 18년째 논의만 하는 걸까? 헬스조선이 의대 정원 조정을 둘러싼 지난 18년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의약분업 영향, 3058명으로 의대 정원 '첫 감원'
현재 의대정원은 3058명이다. 의대정원이 3058명이 된 건 2000년 의약분업의 결과물이다. 의약분업으로 조제권에 약사에게 완전히 넘어가고, 수익 감소 등이 예상되자 의료계는 대규모 총파업을 시행해 의료대란이 발생했다. 의료대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의료계와 협상을 통해 의대정원 감축을 결정했다. 의료계는 90년대 초반부터 의사인력 과잉, 신설 의대 교육 부실이 우려된다며 꾸준히 의대정원 감원을 요구해 온 상태였다.

2000년 당시 의대 정원은 3507명(정원 3253명, 정원 외 140명, 학사편입 114명)이었는데 정부가 의료계의 의견을 수용함에 따라 의대정원 10% 감축이 결정됐고, 의대정원은 2006년 총 3058명까지 줄었다. 건국 이래 첫 의과대학 정원 감축이었다.

당시 정부가 의료계의 의대 정원 감축을 요구를 수용했을 때는 비교적 감축 근거가 분명했다. 대한의사협회가 2006년 발간한 '주요국가의 의사수급현황과 시사점'을 보면, 우리나라는 의사공급 과잉 가능성이 있었다.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1985~2003년 의사인력 증가율을 비교한 결과에서 우리나라 의사인력 증가율은 126%로 비교국 중 가장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미국은 29%, 영국은 57%, 일본은 27%, 독일은 10%와 큰 차이를 보였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의사인력이 매우 부족해 기존 의대정원을 빠르게 늘렸고, 1990년대 이후엔 의대 신설을 통해 의사인력을 증원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후반 신설 의대의 교육부실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있는 것부터 활용하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남의대 폐지, '공공 의대'와 얽히기 시작한 의대 정원
의대 정원 감원 이후 의대 정원은 논쟁거리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장기복무 군의관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국방의학대학원 설립 추진(2009년), 의사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지방의대 정원 확대 논의(2009년) 등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의료계 반발로 무산되면서 의대 정원은 그대로 유지되는 듯했다.

의대 정원 논란이 다시 불거진 건 서남의대 폐쇄였다. 2014년부터 부실교육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서남의대는 2017년 본격적인 폐교 수순에 들어갔고, 2018년 2월 최종 폐쇄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기반으로 공공의대를 설립, 의사 정원 확대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공공의대를 설립하더라도 증원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대 국회 내내 정부와 여당은 증원 없는 공공의대라도 설립하려 애를 썼으나 무산됐다. 당시 대한의사협회장이던 최대집 전 의협 회장은 "의대 정원 증원 등과 함께 공공의대 설립 추진할 경우, 강력한 실력 행사를 할 것"이라고 정부에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20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공공의대 설립은 무산됐으나 이때부터 의대 정원 확대는 공공 의료 문제와 본격적으로 엮여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는 2010년대 중반부터 의사 수 부족론이 등장한 영향도 컸다. 2016년 'OECD 국가의 의사 수 비교' 자료 분석 결과에선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89명으로, 멕시코와 함께 꼴찌 수준이었다. 당시 OECD 회원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평균은 3.3명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의사까지 포함한 통계였음에도 1000명당 의사 수가 서울은 2.82명이지만, 세종 0.76명으로 집계되는 등 지역별 격차가 커 공공성 차원에서 의대 정원 확대 주장에 힘이 실렸다.

복지부도 연구용역을 통해 '의료취약지 및 공공의료기관 필요인력'을 추계한 결과, 최소 1103명에서 최대 2206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연간 120명에서 150명의 공공의사 양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공공의대를 통한 의대 정원 확대에 실패하자 정부는 대안으로 2019년 공중보건장학제도를 시범사업 형태로 부활시켰다. 공중보건장학생제도는 면허 취득 후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서 2~5년 의무 복무하는 조건으로 의대생 또는 간호대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의대 공중보건장학생은 매년 추가모집을 해야할 만큼 호응도가 낮다. 올해 상반기에 선발된 공중보건장학생도 의대생은 2명(총 34명)뿐이다. 의대생 지원 자체가 낮은 탓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정상적인 의료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보건의료노조 제공

◇코로나19가 불 붙인 의대 정원 확대
한동안 잠잠했던 의대 정원 조정에 불을 붙인 건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의사 인력 부족을 사실상 전 국민이 체감하면서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특히 지역 및 공공의료 분야 종사 의사인력 부족 문제가 두드러지면서 정부와 여당은 공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정부는 당정 협의를 통해 중증·필수진료과목 의사 양성 계획과 함께 공공의대와 별도의 의대 신설을 검토했고, 2022년부터 향후 10년간 의대 정원을 총 4000명 늘린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발표했다.

근거는 확실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당시,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1명이었으나 경북은 1.4명, 충남은 1.5명에 불과했다. 또한 우리나라 전문의 10만 명 중 감염내과전문의는 277명, 소아외과 전문의는 전국에 50명이 되지 않았다. 13일 총파업에 돌입한 보건의료노조의 요구도 여기에 기인한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의대 정원 확대는 불투명해졌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2020년 여름, 의료계는 의대생과 전공의까지 참여한 총파업을 강행했다. 의협은 "의사의 수가 문제였다면 의사 수는 지난 십여 년간 매년 3000여 명씩 배출되고 있기에 이미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로 이러한 문제들이 해소된다고 생각하는 건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결국 정부는 백기를 들었다. 그해 9월 정부와 의협은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대 정원 등 논의를 재개하기로 '9.4 의정합의'를 했다.

◇엔데믹 시작, 막 오른 의대 정원 확대 전쟁
9.4 의정합의에 따라 사회적거리두기 종료 등 코로나19 엔데믹 선언과 함께 의대 정원 논의가 시작됐다. 정부와 의료계는 9.4 합의 이후에도 수차례 회의를 통해 적정 의사인력을 추계, 그에 따른 의대 정원을 결정하겠다고 합의했다. 이제는 '얼마나' 늘리느냐가 쟁점이 됐다.

일단 의대 정원 조정에 합의가 이뤄졌으니 이전보다 수월한 결론을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적정 의사인력'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는 물론, 전문가들간 추계도 큰 차이를 보여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 6월 말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개최된 의사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 포럼에선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권정현 박사는 저출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인구고령화로 인해 의료수요가 증가, 2050년까지 2만 2000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 배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2030년까지 의대 정원의 5%를 증원해야 2050년까지 필요한 의사 인력이 배출된다고 분석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출신 고려대 보건대학원 신영석 연구교수는 의사 진료량과 의료이용증감률의 시나리오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만, 예방의학과를 제외한 모든 진료영역에서 의사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계했다고 밝혔다. 신 교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의사 1인당 업무량 수준이 유지될 경우, 2035년에 국내 의사 수는 9654명으로 2만5300명의 의사가 부족하다.

반면, 의료계는 국내 의사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봤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인구 감소 추이와 의사 증가율을 고려할 때 2047년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했다. 그는 의사 수를 늘려도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기피하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봉식 원장은 소아청소년과 진료체계 붕괴와 응급의료체계 재정립, 전공의 수련 교육 과정 개편을 통한 필수의료 인력 확보, 인구사회학적 변화에 따른 전공의 정원 조정 등을 통한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정원 확대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수차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일관되게 의대생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양측의 변함없는 주장은 18년째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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